밀라노와 로스앤젤레스를 오가며 활동하는 디자이너 잠피에로 탈리아페리.
그가 한 젊은 아트 컬렉터 부부를 위해 설계한 펜트하우스는
이탈리아 모던 디자인의 깊이와 캘리포니아의 여유를 절묘하게 아우른다.




밀라노 중심에 자리한 이 집은 고전적인 유럽 스위트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결과물이다. 건축과 인테리어를 넘나드는 잠피에로 탈리아페리 Giampiero Tagliaferri는 거주자의 취향과 생활을 면밀히 읽어내고, 이를 바탕으로 도시의 기운을 공간 안에 녹여내는 방식을 즐긴다. 절제와 표현, 과시와 간결함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그의 디자인은 밀라노에서 다져온 미학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경험한 감각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지점에 서 있다. 럭셔리 아이웨어 브랜드 올리버 피플스 Oliver Peoples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경력을 쌓은 그는 독립 후 미노띠 Minotti와의 협업을 통해 가구 디자인 영역까지 확장하며 건축, 인테리어, 가구를 아우르는 총체적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의 출발점은 의뢰인의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이었다. 탈리아페리와 마찬가지로 두 도시를 오가며 활동하는 이 젊은 커플에게 집은 단순한 쉼터가 아닌 일과 취향, 교류가 함께 머무는 공간이어야만 했다. 이에 따라 탈리아페리는 공용 공간과 사적인 영역 사이의 흐름을 유연하게 연결해 각 공간이 독립적인 성격을 지니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맞춤 제작한 소파는 거실 중심에서 음악과 대화, 휴식을 위한 여러 장면을 유연하게 만들어주고, 유리와 크롬으로 제작된 벽난로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단단히지탱한다. 가구와 오브제는 이 집의 미학을 결정짓는 핵심이었다. 마리오 벨리니, 지오 폰티, 가에 아울렌티, 아프라 & 토비아 스카르파 등 20세기 거장들의 작품이 중심을 이루며, 피아 구이데티 크리파와지지 사바딘처럼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의 오브제가 의외성을 더한다. 벨벳 벽과 스테인리스 패널이 만나는 침실, 래커와 로즈우드로 구성된 계 단, 플루티드 글라스로 감싼 샤워 공간은 1970년대 모더니즘의 관능을 오늘의 생활 안에서 다시 부활시킨 모습이다.




탈리아페리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은 공간이 가진 ‘리듬’이었다. 거주자의 속도와 취향을 반영한 가구와 디테일, 이질적인 소재가 만들어내는 대화는 집을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디자이너와 클라이언트 모두 밀라노와 LA를 기반으로 한 이중적 삶을 공유하듯, 공간 역시 두 도시의 기운을 겹겹이 품으며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규모는 결코 크지 않지만, 모든 디테일은 치밀한 고민을 거쳤다. 작은 코너에서부터 소재와 작품 하나하나까지 세밀하게 연결되어, 집 전체가 하나의 완성도 높은 이야기처럼 흐른다. 두 도시를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는 부부에게 이곳은 거처 이상의 의미를 지니며,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균형을 되찾게 해주는 가장 섬세한 휴식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