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구분 없이 하나로 열린 작업실 사면의 양쪽으로 너른 창을 냈다.
창을 통해 바람이 제집처럼 드나들고 풍경은 액자가 되어 매일 다른 그림으로 걸린다.
경기도 이천의 원적산을 등에 지고 낮은 키로 서 있는 도예가 이능호의 작업실에 다다랐을 때, 나는 바삐 자맥질하던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 목물레에 흙을 올리고 형태를 만들기까지 작가는 어떤 시간 속을 걸어왔을까. 두들기고 또 두들겨 완성한 작품에는 기운이 가득 찬다. 빈 속은 작가의 에너지로 채워진다.
흙을 만지는 사람은 겸손해야 해요.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의 조은숙 대표가 얘기했다. 그녀의 갤러리가 그렇듯이 화법에서도 군더더기라고는 찾을 수 없다. 대화를 이어가려면 기민한 촉수로 몸통만 툭 던져진 한마디의 이면을 짚어내야 한다. 흙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질료, 그러니까 집에서 그릇까지 인간의 삶에 병치되어왔다. 그 신묘한 성질은 어떤 재료를 만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로 태어난다는 의미일 것이었다. 흙을 다루어, 불을 달래어 인간의 삶 가장 가까이에 기 器로 존재해온 흙은 도공이 몸을 낮추었을 때 비로소 가장 정직하고 순수한 낯을 드러낸다.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밀고 나간 흔적은 작품에 아로새겨진다. 노력과 땀으로 빚어낸 질박한 결과물은 오래 두고 볼수록 깊은 우물처럼 그 멋과 맛을 길어 올린다. 도예가 이능호의 작업이 적절한 예다.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감나무가 호위무사처럼 자리한 마당에 매일 아침 부지런히 단장해온 고운 자갈이 길을 냈고 거대한 오브제가 주인처럼 놓여 가을 햇살을 마중하고 있었다. 거대한 흙덩이와의 드잡이를 시작으로 수만, 수십만 번의 두들김으로 완성했을 오브제는 햇살에 반응하는 생물체처럼 따뜻한 온기를 품고 이방인의 손길을 허락했다. “이전의 작업이 무엇인가를 담는 기의 형태에 충실했다면 이번 작업은 추상적인 오브제성이 강하다고 할까요…. 개인적으로는 변화의 낙차가 매우 큰 작업입니다.”
1 조은숙 아트앤라이프스타일 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에 선보일 작품들. 2 시간의 결이 새겨진 도구들.
삶의 변곡점은 계획과 무관한 곳에서 등장한다. 도자기의 전, 즉 윗부분이 열린 작업을 해온 그가 어느 날 ‘닫힌’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라고 자문했는데 이 물음은 그에게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선물했다. “여름 내내 작업한 것들이 터지고 갈라졌어요. 거대한 오브제를 무사히 구워내는 방법을 찾느라 여름을 다 보냈지요.” 목물레라는 전통 방식과 가스 가마라는 현대적인 편리의 조화로 태어난 이 오브제의 태명은 ‘집’. 그러나 단어에서 연상되는 구체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해석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에 별도의 작품명을 부여하지 않았다.
↑ 무채색으로 가득 찬 작업실에 힘차게 자라난 알로카시아의 푸르름이 시선을 당긴다.
“대단한 목표를 가지고 작품을 추진하는 사람들도 있는 반면, 이 사람은 참 무심하게 편안하게 흘러가요.” 조소과를 졸업한 조각가이자 아내인 임은희 씨가 첨언하자 이능호는 발끈하기는커녕 조용히 부인했다. “흘러가긴 합니다. 그러나 보이는 것처럼 평화롭지는 않습니다. 작가의 목표에 충실해서 의도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 내 몸이 기억하도록 아끼지 않고 몸을 써서 반복하는 겁니다. 그렇게 몸의 기억으로 빚어낸 작품에 내가 갖고 있던 올바른 것과 믿고 있던 것이 드러나고 그 진정성으로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지요.”
↑ 은행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씨앗합. 무엇을 담든 용도는 사용자에게 달려 있다.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공예미술학과를 졸업하고 꾸렸던 첫 작업실에 이어 지금의 작업실은 두 번째. 결혼 자금으로 마련한 이곳을 부부는 온전히 두 사람의 힘으로 덧칠해 나갔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태어났고 성장했으며 작가로서 바이오그래피를 쌓아왔다. 아이들이 커감에 따라 과천으로 주거지를 분리했지만 이곳은 여전히 탄생의 성소다. 그는 작품을 낳고 뒷마당 창고에서는 길고양이가 들어와 새끼를 낳고 간다. 그가 만든 대형 어항에 살던 두 마리 붕어가 돌보는 이 없이도 산란까지 무사히 마친 것을 발견한 부부는 별도의 어항에 치어만 분리해 두었다. 난로 연통으로 들어온 다람쥐는 불을 때지 않은 난로에 새끼를 낳았다가 때가 되자 알아서 이소했다. 이능호도 몇 년 내로 이곳을 정리하고 이소를 결행할 참이다. 세 번째 작업실은 휴전선 아래 오지로 알려진 양구에 마련될 예정이다. 그러나 도예가 이능호에게 양구는 태토를 만날 수 있는 원토맥이 살아 있는 곳. 조선시대 가마터가 발견되며 오지로만 알던 양구와는 다른 얼굴이 드러났다. “왕실 도자기를 만들던 곳이지요. 아직 제 눈으로 원토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좋은 흙을 만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1 가을 햇살이 깊게 파고드는 작업실에서 이능호 작가. 2 투각 기술이 돋보이는 그릇은 과일을 담아도 좋지만 초를 켜면 불빛이 아련하게 새어나온다. 3 개인전을 앞두고 마무리 직업이 한창이다.
세종대왕 18대손인 이능호는 후손이자 도공으로서 자신의 시원을 찾아 삶의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양구를 택했다. 다루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백토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도 민낯으로 당당히 승부를 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원토가 있는 곳, 이능호에게는 그곳이 바로 양구였다. “보석을 보는 기분, 그 이상이죠. 그러나 원토를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방침이 있으니 그럼 제가 양구로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억양도, 표정도 변화 없이 조곤조곤하던 그가 불켜진 방처럼 밝아진 것은 그때였다. 확신 이상의 자신감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도자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양구 백토로 완성하겠다는 말에 3년 동안 버티던 고집이 꺾였어요.” 남편의 이유 있는 오지행에 아내는 자신의 취향은 사사로운 것인 양 접어두기로 했다.
방점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양구를 택했다. 다루기 까다롭기로 유명한 백토지만 화려한 장식 없이도 민낯으로 당당히 승부를 걸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원토가 있는 곳, 이능호에게는 그곳이 바로 양구였다. “보석을 보는 기분, 그 이상이죠. 그러나 원토를 외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방침이 있으니 그럼 제가 양구로 들어가겠다고 했어요.” 억양도, 표정도 변화 없이 조곤조곤하던 그가 불켜진 방처럼 밝아진 것은 그때였다. 확신 이상의 자신감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의 도자기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양구 백토로 완성하겠다는 말에 3년 동안 버티던 고집이 꺾였어요.” 남편의 이유 있는 오지행에 아내는 자신의 취향은 사사로운 것인 양 접어두기로 했다.
↑ 작업실 터에 있던 150년 된 농가에서 나온 폐목을 재사용한 선반. 20년 된 작업실과 작품의 조화가 편안하다.
이능호의 작업 중 외부 유출이 허용된 양구 백토로 만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공감각적인 따뜻함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을 만큼 만질수록 가까이 두고 싶어진다. 올 초에 방영된 <이영애의 만찬>에 등장한 그의 한식 반상기도 양구 백토를 사용한 것. 방송을 위해 무려 30인분 그릇을 만들고 방송에 함께 출연하기도 했으니 유명세를 이용하기도 하련만 도예가 이능호는 쉽사리 곁을 내주지 않는다. 작업에만 집중하고 싶은 그는 없던 근육을 만들어가면서 한길로 밀고 나가는 진중함으로 생활 자기에서 도자 예술까지 아우른다. 끝을 정하지 않고 달려가는 몰입은 육중한 흙덩이를 물레 위에 올려 온몸으로 달항아리를 빚어내던 선조의 땀방울과 닮았다. “대학에서 도자의 공예적인 실용성에 대한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러나 요즘은 정신적인 실용성, 말하자면 정서를 어루만지는 것의 가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도자 오브제를 하나 놓음으로써 얻게 되는 위안과 행복도 광의의 실용성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찰나의 속도전을 추앙하는 세태에서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간다. 그것이 거꾸로일지라도 그 용기와 기백, 의지를 응원하고 싶었다. 간결한 모양새에 함축된 시간의 가치를 켜켜이 읽고 싶게 만드는 작품은 흔히 만날 수 없으니까. 참빗으로 쓸어내린 머릿결처럼 고운 마당 위로 감나무 가지가 고개를 떨구었다. 붉게 타오르는 연시가 한창이었다. “인간이 먹을 것도 남겨주면 좋겠는데 말이에요.” 새들에게 모두 뺏길세라, 우리는 나무에서 이제 막 딴 감을 마당에 나란히 서서 먹었다. 지난 일 년을 인내해온 다디단 감동이 가을 한복판에서그리고 입안에서 소용돌이쳤다.
편집장 노은아 | 포토그래퍼 임태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