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어른들을 위한 동화

한번 들으면 절대 잊어버릴 수 없는 이름을 지닌 김참새 작가를 구기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색채가 넘실거리고 유쾌한 기운이 작업실에 감돌았다.

 

구기동 작업실에서 만난 김참새 작가.

 

갤러리 ERD에서 김참새 작가의 두 번째 개인전 <En moi, au fond de moi>가 열리고 있다. 친동생이 지어준 ‘참새’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그녀는 카카오톡, 스텔라 아르투아, 몰스킨 같은 브랜드와의 협업, 뮤지션의 아트워크, 컵이나 러그 같은 굿즈 제작 등 요즘 가장 바쁜 작가 중 한 명일 것이다. 셀러브리티들이 작품을 구입해 SNS에 올리면서 더욱 유명하진 김참새 작가는 남들처럼 미대 입시를 준비하다 한국 미술 제도와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고, 프랑스로 날아갔다. “다니던 작은 화실 대표님이 신문 기사를 주셨는데 아마 이우환 화가였던 것 같아요. 그가 한국 미술계에 염증을 느껴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는 내용이었어요. 이상하게 저에게 프랑스는 좀 따뜻한 느낌이었어요. 리옹이라는 곳으로 가서 언어 공부와 미대 준비를 했고, 낭시에 있는 국립대학교에 합격했죠.” 그녀의 전공은 파인 아트다. 그림은 물론 사운드, 조소, 설치 등 전방위로 모든 영역을 섭렵해야 했다. 졸업 작품의 합격 소식을 듣자마자 ‘이제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그녀는 전공과 맞지 않았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회사를 다니려고 이력서와 자소서를 준비하는 취준생이 되었다.

 

워킹 스페이스, 컬러, 색감,

컬러풀한 색채의 그림으로 둘러싸인 작업대.

 

빈티지가구, 아트워크

한두 개씩 구입한 빈티지 가구와 그녀의 작품이 잘 어울렸다.

 

“트위터를 통해 모집한 가수 정준일의 앨범 커버를 맡게 되면서 비슷한 일이 꾸준히 들어왔어요. 그러다 어느 매거진의 에디터가 연락을 해서 샤넬 부띠끄 작업과 패션 매거진의 일러스트를 하게 됐죠. 그게 개인 작업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였던 것 같아요.” 김참새 작가의 그림은 언뜻 보면 왠지 나도 그릴 수 있을 것처럼 단순하다.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고민한 색채와 표정, 생각을 담는 것이야말로 정말 어렵다. 그리는 대상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오거나 직관적인 것이 많은데 이는 털털하고 담백한 작가의 성향과도 같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4년이 좀 넘은 지금 그녀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프랑스 유학 시절의 그림은 어둡고 그로테스크했어요. 마음이 편해져서인지 지금은 작품이 정말 밝아졌죠. 가끔 밤에 작업을 하면 다시 유학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그림을 그리게 되지만요(웃음).” 바쁘게 활동하는 그녀는 의외로 단순한 일상을 즐긴다. 평창동의 집과 구기동 작업실을 오가고,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고, 작업실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녀가 생각하는 다음 행보가 궁금해졌다. “구체적으로 생각한 건 아니지만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제 작품이 한 단계 더 나아가려면 어떤 계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학부 때 했던 공부를 깊게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연말부터 내년까지의 일이 이미 진행 중인 김참새 작가에게 그런 시간이 허락될지는 모르지만 변화를 겪은 그녀의 다음 작품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개인 소장을 위해 남겨둔 작품들.

 

채색 도구, 물감, 파레트,파스텔, 크레용, 마카

작업실 곳곳에 놓인 다양한 채색 도구들.

 

김참새, 아티스트, 아트워크, 아트

김참새 작가의 작품은 단순하지만 이상하게도 감정이 느껴진다

 

남은 재료도 허투루 두지 않고 뭔가를 만들어 둔다.

 

 

소소한 소품에서도 느껴지는 김참새 작가의 스타일.

CREDIT

에디터

포토그래퍼

이예린

TAGS
세상과 미술의 매개체, 박여숙화랑

세상과 미술의 매개체, 박여숙화랑

세상과 미술의 매개체, 박여숙화랑

갤러리는 그저 그림을 걸고 파는 공간이 아니다. 작가와 그의 작업이 세상과 관계 맺도록 다리를 놓는 갤러리로 지난 40여 년간 역할해온 박여숙화랑이 청담동 시대를 끝내고 이태원 소월길에 새롭게 자리를 잡았다.

 

청담동 미술 거리, 박여숙, 박여숙 화랑, 이태원 소월길

청담동 미술 거리를 대표해온 박여숙 대표. 1983년에 개관한 박여숙화랑이 청담동을 떠나 이태원 소월길로 터전을 옮겼다.

 

신축한 박여숙화랑 건물의 담백하고 차분한 외관.

 

 

미술관이 비상업적인 전시 공간이라면, 갤러리는 미술 작품의 판매가 이뤄지는 상업적 공간이다. 그런 이유로 갤러리를 미술관에 비해 한 치 아래로 평가한다면 억울하다. 갤러리를 돈이 오가는 공간, 미술의 순수성보다 상업성에 주목하는 미술품 거래의 장소로만 보면 건강하고 풍성한 미술 생태계 조성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좋은 갤러리는 작가와 컬렉터, 관객, 평론가로 구성되는 미술이라는 유기체가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혈액과 같은 존재다. 작가가 작업에만 열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세상과 만날 수 있는 계기와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 모두 갤러리의 몫이다. 물론 이런 과정을 통해 갤러리 역시 성장한다. 가고시안, 화이트 큐브, 페로탱 등과 같은 세계적인 갤러리가 그렇게 전 세계 미술계의 핵을 이루는 작가들을 발굴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건축 잡지 <공간> 취재 기자와 짧은 큐레이팅 경험을 가진 젊은 여자가 겁도 없이 자기 이름을 걸고 1983년 문을 연 갤러리가 박여숙화랑이다.

 

찻집, 공예 갤러리, 수수담담

찻집이자 공예 갤러리로 활용될 공간 ‘수수담담’. 층고에 비해 가로로 긴 구조 때문에 아늑하고 편안하게 느껴진다.

 

“처음 화랑을 시작했을 당시만 해도 이름 있는 몇몇 작가에 의해서 미술계가 흘러갔어요. 새로운 작가, 좋은 작가가 많은데 왜 화랑에서 전시를 못하나 아쉬움이 있었죠. 제 나름대로 젊은 작가들을 끌어내서 화랑이 꾸준히밀어주고 컬렉터와 작가, 갤러리가 같이 성장하도록 해보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쉽지 않았죠. 갤러리는 기획도 좋아야 하지만,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작품 판매를 잘해야 해요. 제가 판매를 잘 못해서 힘들었어요. 상술이 부족했겠죠. 어떻게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아름다운 걸 발굴하고 알리는 일이 너무 좋기 때문에 지치지 않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끈기 있게.”

 

뷰잉룸, 박여숙화랑, 아트, 갤러리

사무 공간 옆에 별도로 마련된 뷰잉룸 Viewing Room.

 

컬렉션, 공예, 작품, 갤러리, 오피스 인테리어 스타일링

박 대표의 사무실 풍경. 공예 작품 컬렉션은 실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다.

 

맹랑한 도전이었지만 문화의 불모지 같았던 강남에서 40여 년 가까이 미술과 작가들의 곁을 지키며 박여숙화랑은 결국 대표적인 국내 갤러리 중 하나가 됐다. 작고한 김점선 작가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도, 지금은 ‘설악산 화가’로 불리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큰 주목을 받는 김종학 작가를 산중에서 끌어낸 것도 모두 박여숙화랑이었다. 일일이 언급할 수 없을 만큼 수 많은 국내외 작가들이 박여숙화랑을 거쳐갔다. 한창 국내 미술계가 호황을 누리던 2000년대 초중반에는 박여숙화랑이 기획하는 전시의 주목성 때문에 한동안 못 봤던 기자들도 박여숙화랑의 기자 간담회에 가면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곧이어 호황보다 더 무서운 기세로 세계 불황이 들이닥쳐 미술계를 위축시켰다. 박여숙화랑도 그 시절을 피해갈 수는 없었지만, 버텨냈다 . 청담동 화랑가의 대모로 불리던 박여숙 대표는 최근 길었던 청담동 시대를접고 이태원 소월길에 새 터전을 잡았다.

“여기가 좋아요. 남산도 좋고, 이태원의 역동적인 분위기도 좋고. 강남과 강북 어느 쪽에서도 오기 편한 것도 마음에 들어요. 아직 어색하긴 해요. 습관적으로 강남으로 갈 때가 있어요(웃음). ”

 

이태원, 조하나, 미궁의 표상, 전시회, 갤러리, 아트 워크

박여숙화랑의 이태원 시대는 공예 작업을 자주 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하나 작가의 <미궁의 표상>전이 현재 전시 중이다.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없는 정제된 공간 구성이 돋보이는 4층 규모의 화이트 신축 건물은 한결같은 커트 머리와 과장 없이 미니멀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박여숙 대표와 어딘가 닮아 있다. 전시 공간과 사무 공간 외에 찻집을 겸한 공예 전시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수수덤덤이라고 이름을 붙였어요. 수수하고 덤덤한 것이 한국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2015년 밀라노 트리엔날레 디자인 뮤지엄에서 한국 공예 전시 미술 감독을 했는데, 그때 타이틀이 ‘수수, 덤덤, 은은’ 이었어요. 거기에서 이름을 따왔죠. 국적 있는 미술을 표방하고 있어요. 1990년대부터 단색화를 유럽에 많이 알렸고, 회화를 당연히 계속 하겠지만 공예를 많이 소개하려고 해요. 가장 자신 있고, 알리고 싶은 분야예요. 전시 기획을 하면서 느낀 점이 공예 인구는 많은데 시장이 없고, 특히 갤러리스트가 드물어요. 실생활에서 쓸 수 있는 것을 널리 소개하는 기획을 하고 싶어요. 찻집을 통해 보급하고 쓰임새를 알리려고 합니다.”

 

박여숙 인터뷰

인터뷰 중인 박여숙 대표. 절제된 표현에 분명한 생각과 의지가 담긴 언어가 그의 지나온 시간을 짐작하게 한다.

 

지난 10월 10일부터 이전 기념 개관전이 열리고 있다. 조선 백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탁월한 미적 통찰을 통해 현대적으로 구현한 백자 작업을 선보이는 권대섭 작가의 전시다. 이번 전시에는 45cm가 넘는 대형 작품을 포함해 총 18점의 작품이 소개된다. 강건한 몸체와 오묘한 색감이 빚어내는 엄청난 존재감의 작품이지만, 완성도에 대한 작가의 집념과 고집 탓에 1년에 겨우 6점의 백자 항아리만이 완성된다. 지난 2015년과 2018년에는 벨기에 출신의 인테리어 디자이너이자 아트 컬렉터, 큐레이터인 악셀 베르보르트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면서 해외에서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그의 백자 시리즈는 미국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멕시코 국립박물관, 러시아 국립박물관과 방글라데시 국립박물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이번 전시는 11월 11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권대섭전, 백자, 악셀 베르보르트, 전시회, 항아리

박여숙화랑 이태원 이전 기념 개관전으로 열리고 있는 <권대섭 展>은 11월 11일까지 계속된다. 기술적인 부분은 물론이고 육체적으로도 작가의 투혼이 고스란히 담긴 18점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박여숙화랑 이전 기념 개관전 <권대섭 展>

일시 10월 10일부터 11월 11일까지
장소 용산구 소월로 38길 30-34 박여숙화랑
문의 02-549-7575

CREDIT

포토그래퍼

안종환

writer

이지연

TAGS
NOW CREATOR 과거를 디자인하다

NOW CREATOR 과거를 디자인하다

NOW CREATOR 과거를 디자인하다

빈티지 레트로 스타일이 주목을 받으면서 과거를 추억하게 하는 복고풍 인테리어가 인기를 끌고 있다. 그 당시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과거의 향수를, 10~20대에게는 낯선 매력으로 다가가기 때문일까.

 

 

레트로의 인기는 당분간 지속될 듯싶다. 조인혁 디자이너는 뛰어난 실력과 더불어 적절한 시기까지 맞아떨어져 주목해야 할 디자이너로 자리 잡았다. 그를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준 프릳츠와의 인연이 궁금했다. “프릳츠와는 TRVR의 정승민 대표님의 소개로 만났어요. 평소 한글 작업을 해본 적이 없는 제게 한글을 이용한 로고 디자인을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1990년대 레트로풍의 한국식 디자인을 요청하는 클라이언트가 늘어났죠.” 현재 ‘조인혁=레트로’라는 공식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이전에 다녔던 직장의 영향이 컸다. “처음부터 레트로 스타일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에요. 예전 직장이 미국 빈티지 스타일의 패션 회사이기도 했고 프릳츠와도 한글 작업을 진행하면서 그 당시 분위기를 연구하고 공부하다 보니 스타일이 더욱 확고해진 것 같아요.”

 

을지로3가 프로젝트, 신한카드

신한카드에서 주최한 ‘을지로3가 프로젝트’에 출품한 작업.

 

카린지, 디자인 포스터, 레트로

카린지의 대표 메뉴 돈가츠 카레를 디자인한 포스터.

 

프릳츠 디자인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된 ‘프릳츠’ 디자인.

 

요즘 들어 빈티지 스타일이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거리를 거닐며 우리가 쉽게 접하는 것은 현대식 건축물이다. 그렇다면 조인혁 디자이너는 과연 작업을 위한 영감을 어디에서 얻는지 궁금했다. “오래된 동네를 자주 다녀요. 옛날에는 한글 모양도 조금씩 차별화되어 있고 마감재나 디자인이 오히려 독특하고 재미난 것이 많아요.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쉽게 유행하는 것을 보고 배우지만, 1990년대만 해도 정보가 부족해 각각의 개성이 강한 것 같아요.” 그는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회사와 프리랜스 일을 병행하다 최근 독립했다. 직접 브랜딩부터 디자인, 인테리어까지 도맡아 진행한 레스토랑 카린지 옆에 스튜디오를 마련했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가끔 지칠 때가 있어요. 디자이너로서의 제 이름을 걸고 주도적으로 작업해보고 싶었고, 그 첫 번째 결과가 카린지예요. 앞으로는 스튜디오 일부를 활용해 카페를 오픈할까 생각 중인데, 편집숍이 될 수도 있고요. 아직 확정된 것은 없지만 제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려고요.” 조인혁 디자이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래픽 디자이너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이미 대중에게 인정받은 경험을 밑거름 삼아 다양한 분야로 나아가는 중이다.

 

브랜딩 인테리어 디자인, 레트로 복고 스타일

그가 직접 브랜딩하고 인테리어까지 담당한 레스토랑 카린지는 레트로풍에 걸맞는 복고 스타일로 인테리어했다.

 

CREDIT

에디터

TA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