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동심에게

동화 같은 예술 세계 나탈리 레떼

동화 같은 예술 세계 나탈리 레떼

그림이라는 수단으로 동화 같은 세계를 구현해온 작가 나탈리 레떼는 스스로의 언어로 모두의 저 편에서 잊혀진 동심에 안부와 위안을 전한다.

2016년 한국에서 전시를 열었을 때 <메종>과 인터뷰를 나눴던 나탈리 레떼.

 

나탈리 레떼의 작품에는 어린 시절에 기반한 꽃과 식물이 자주 등장한다.

그림이 전하는 힘을 믿는다. 말과 소리, 글 대신 여러 번의 스케치와 붓질, 그 위에 수없이 덧대어진 색채가 그 자체로 언어가 되어 관객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분명 존재한다고 여긴다는 의미다. 메시지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언의 감정을 촉발시키고 우리는 그 결과로 그림을 머리가 아닌 감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파리 기반의 작가 나탈리레떼는 마치 대화같은 일련의 과정에 가장 최적화된 예술가다. 많은 설명과 수식 대신 나탈리 레떼의 그림을 보면 그저 행복하다는 감정이 앞선다. 그림을 이루는 감각적인 터치와 자유로운 컬러 팔레트, 이윽고 완성되는 하나의 작품에는 어떠한 걱정과 불안마저 사라져 있는 듯하다.

아스티에드 빌라트와 협업해 출시한 접시.

제약이 없는 동식물을, 때로는 파리의 풍경을 그리다가도 여느때면 마치 소녀가 된 듯 귀여운 인형의 방을 그림으로 구현한다. 그런 레떼의 작품을 두고 원더랜드 혹은 동화의 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 등 여러 방면 예술 장르에서 저마다의 명칭을 소유하고 있는 그녀는 중국인 아버지와 체코계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 바이에른에 있던 외가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던 레떼는 근처에 위치한 숲과 농장에서 뛰노는 날이 많았다. 자연스레 나무와 꽃이 펼쳐진 자연과 버섯, 동물을 보고 자랐던지라 그것이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 자신의 상상을 실현하는 주요 소재로 심심찮게 등장하곤 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유년 시절을 보낸 경험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없는 양분이 되었다. 뒤페레에 위치한 미술학교에서 패션 디자인을, 파리 에콜 드 보자르에서 판화를 공부했던 나탈리레떼는 여러 예술 장르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며 한층 더 풍부한 색과 자유로운 선을 구현하게 된다.

그녀가 실크프린트에 그린 귀여운 인형과 작은 사물을 보면 절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인다.

다만 사랑스러우면서도 때론 우스꽝스럽고, 유머러스하게 그려내는 대상은 누구나 그리고 싶어할 만한 특별한 것이 아니다. 꽃과 곤충 같은 미물과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물을 사랑스러운 몇 번의 손짓만으로 그녀의 세계로 들여올 뿐이다. 나탈리 레떼는 작품이 구현되는 장르를 가리지도 않는다. 실크스크린과 컵, 오브제, 러그, 스테이셔너리, 도자 등 그녀의 스케치는 그야말로 전 방위다. 6년 전 한국에서의 전시를 비롯해 다양한 국가에서의 개인전은 물론이거니와 그 덕에 수많은 브랜드의 러브콜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세계적인 패션 브랜드인 이세이 미야케와 작업하는가 하면 뷰티 브랜드 부르주아,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모노프리 등과도 꾸준한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녀가 실크프린트에 그린 귀여운 인형과 작은 사물을 보면 절로 동심으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인다.

특히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는 많은 출판사의 삽화나 아스티에 드 빌라트, 빌락 등 도자와 문구 브랜드와의 협업이다. 페이지는 풍성하게, 도자와 문구의 익살스러움은 더욱 높이는 그녀의 그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테니 말이다. 그러니 구태여 더 이상의 이야기보다는 몇년 전 한국을 찾았던 그녀가 <메종>과 나눴던  인터뷰의 마지막 말을 빌려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자신의 예술세계를 표현해 달라는 물음에  답했던 몇 문장으로 그녀의 작품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저 한국에서 다시 그녀와 작품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며. “불어로 리컨포턴트 Reconfortant. 위안이라는 뜻이에요. 격려해주고 기운을 차리게 한다는 말이죠. 내가 바라는 건 그거예요. 나의 작품과 나의 그림이 당신에게 일말의 에너지를 줄 수 있기를. 그저 내 그림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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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에서 찾은 올해의 색

거장들이 사용한 '베리 페리'

거장들이 사용한 '베리 페리'

팬톤에서 선정한 올해의 컬러 ‘베리 페리’는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과 용기가 담겨 있다.

 

모네 ‘수련’ 연작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  ©wikimedia

 

모네 ‘수련(1903)’ 파리 마르모탄 미술관. ©wikimedia

일기예보를 하듯 올해의 색을 발표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지금 주목받는 색이어서가 아니라 그 색을 올해의 색이라 명명하면 주목을 받게 되는 일종의 마케팅은 아닐까? 실은 둘 모두 맞는 말이다. 팬톤은 올해의 색을 정하기위해 1년에 두 번 유럽에서 모여, 색상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칙칙한 방에 모여서 다양한 국가의 전문가들과 함께 소비자들이 현재 좋아하는 색, 의미가 있는 색에 대해 비밀리에 토론을 한 후 결정한다고 하는데, 그 논의 과정이 거의 문화인류학 세미나 수준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색은 그 자체로 다양한 상징을 지니고  있으며, 그 상징은 문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고, 그 색을 지닌 자연물을 즉물적으로 연상시키며, 게다가 인간의 피부색은 정치적 논의로도 연결 될 수 있는 민감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이 어려운 과정을 거쳐 선정된 올해의 색은 ‘베리 페리’다.

 

 

모네 ‘수련’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작품 일부). ©wikimedia

레드와 블루가 섞인 보라색. 보라색이야말로 자주색에서부터 포도색에 이르기까지 저마다 생각하는 기준이 가장 광범위한데, 베리 페리는 파란색에 더 가까운, 그리고 화이트도 섞인 듯한 색이다. 올해의 경우 실제의 세계가 아니라 디지털 세계의 영향을 반영했다고 하니, 자연속의 사물 중에는 이 색을 닮은 것을 찾아보기 어렵다. 언뜻 머리에 떠오르는 이미지는 라벤더 색인데, 예술가들의 작품에서는베리 페리를 좀 더 쉽게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작은 인상주의 미술에서부터다. 그 이전의 예술 작품에서 베리 페리 색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렘브란트, 고야, 들라크루아, 자크 루이 다비드…. 그들 모두 훌륭한 예술가들이고  나름대로 시대를 리드한 혁명가들이었지만, 갈색 톤을 주조로 하는 작품에서 보랏빛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확실히 보라색은 빛에 대한 이해로 눈을 뜬 예술가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으로 선택한 신선한 색이다. 모네의 ‘수련’ 그림에서부터 세잔의 ‘빅투아르 산 풍경’에 이르기까지 보라색은 오늘날의 디지털 아트가 그러했던 것처럼 새로운 시대의 색으로, 화면을 밝고 화사하게 바꾸고 있다. 베리페리가 가장 빛 나는 그림은 바로 고흐의 작품 ‘아이리스’ 시리즈다. 아를르에서 노란 해바라기를 그리며 예술가의 이상적 공동체를 꿈꾸었지만 고갱과의 불화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마음의 상처를 입은 후 시작한 그림이다. 보라색 아이리스는 혼돈과 상처를 극복하는 용기를 주는 이미지로 고흐의 작품 속에 자리잡았다.

모네 ‘수련(작품 일부)’. ©wikimedia

또한 보라색은 연두색의 보색이다. 쇠라및 시냑 등 신인상주의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색채 연구를 겸한 고흐도 연두색 잎과 가장 잘 어울리는 보랏빛 꽃을 선택하며 화면 속에 색의 조화를 꾀했을 것이다. 초현실주의의 대표 작가 호안 미로의 작품에 나타나는 주조색도 베리 페리에 가깝다. 주로 파란색으로 소개되지만, 2020년 팬톤이 정한 올해의 색, 클래식 블루와 비교해 보면 미로의 색은 블루보다는 베리 페리와 더 흡사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호안 미로도 고흐처럼 우울증을 겪기도 했지만 원시미술과 아름다운 자연의 영향을 창조적으로 승화시켜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같은, 그러나 놀랍도록 아름답고 순수한 작품을 그려낸 작가다. 모네에서 미로까지 베리 페리를 일찍이 즐겨 사용한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바로 용기, 뚝심 그리고 초월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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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애(롯데백화점 아트비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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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판지의 변신

골판지와 시멘트의 경계, 전치호 작가

골판지와 시멘트의 경계, 전치호 작가

작가로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조형 언어로 평면과 입체, 가구 등 다양한 작업을 이어오고 있는 전치호 작가를 만났다.

현재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전치호 작가를 상명대학교에서 만났다.

전치호 작가는 견고해야 하는 ‘가구’라는 물체가 주는 이미지와는 상반되는 종이의 일종인 골판지를 주재료로 작업을 하고 있다. 그에게 있어 골판지가 지닌 어떤 성질과 질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는지 궁금했다. “현재 작업하고 있는 ‘기준 Criteria’ 시리즈는 노숙자와 일반인의 경계에 대해 표현한 작품이에요. 안과 밖을 규정지을 수 있는 재료는 일반인과 노숙자 Homeless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다가오죠. 일반적으로 어떠한 것을 담는 데 주로 쓰이는 골판지 박스는 노숙자에게는 하나의 보호막이자 집으로 사용되지만, 일반인에게는 시멘트 벽이 그 역할을 하거든요.” 전치호 작가의 설명이다. 그는 이를 통해 사회에서 규정짓고 구분하는 경계와 집단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자 했고, 자연스럽게 골판지와 시멘트를 작품의 주재료로 선택하게 되었다고 한다. 연약한 골판지를 단단한 가구로 재탄생 시키기까지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골판지를 구긴 후 골판지를 경화시키고 골 사이에 시멘트를 채운다. 골판지는 하나의 선을 만들게 되고 작가의 손길이 닿은 구김으로 인해 생긴 빈틈에 시멘트를 채워 새로운 이미지를 형성하게 된다. 결이 살아 있는 골판지의 텍스처 때문인지 관객들은 자연스레 작품에 손을 얹어본다고. “제가 구현한 텍스처와 선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하며 작품을 보고 만져보면 좋을 것 같아요. 연약한 골판지 선과 강한 시멘트 선은 스스로 경계의 위치를 갖게 됩니다. 그렇게 지정학적 위치를 갖는 선은 골판지와 시멘트의 접점을 구사하면서 스스로가 경계이자 중심이 되기도 하죠.”

 

2021년 연희동 갤러리 민트에서 진행한 젊은 가구 공예 작가 3인의 전시 <(To Be) Fit Your Place>.

 

ADM 갤러리에서 열린 작가 4인의 전시.

 

골판지에 시멘트를 발라 스툴의 형태를 만든 ‘기준’ 시리즈. 골판지의 살아 있는 텍스처와 알록달록한 원색이 눈길을 끈다.

 

골판지에 시멘트를 발라 스툴의 형태를 만든 ‘기준’ 시리즈. 골판지의 살아 있는 텍스처와 알록달록한 원색이 눈길을 끈다.

작가는 반복적인 선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경계에 대해 말하고, 보는 이 역시 그 의미를 생각하며 작품을 감상했으면 하는 바람을 내비쳤다. 사실 그의 작품은 울퉁불퉁한 질감이 있어 실제 일상에서 사용하기 좋은 실용적인 가구라는 생각보다 작품성이 도드라진 아트 퍼니처에 가까운 모습이다. 가구를 만들 때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요소에 대해 물었다. “실용과 미감은 작가라면 응당 기본적으로 깊게 고민해야 하는 필수 요소죠. 하지만 제가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작업의 주제를 어떻게 표현하는가예요. 그리고 그 주제를 어떻게 확장해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죠.” 그는 가구가 지닌 기능성이라는 제약 안에서 주제를 다룰 때면 한계에 부딪힐 때도 많다고 한다. 때문에 가구라는 국한된 틀에서 벗어나 설치작업을 통해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내비쳤다. 그것이 언제, 어디가 됐든 공간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선보이는 전치호 작가의 앞날을 응원하고 싶다.

 

꽃 등 다양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화병 시리즈.

 

꽃 등 다양한 물건을 담을 수 있는 화병 시리즈.

 

골판지에 시멘트를 발라 스툴의 형태를 만든 ‘기준’ 시리즈. 골판지의 살아 있는 텍스처와 알록달록한 원색이 눈길을 끈다.

골판지에 시멘트를 발라 스툴의 형태를 만든 ‘기준’ 시리즈. 골판지의 살아 있는 텍스처와 알록달록한 원색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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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그래퍼

이현실(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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