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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비벌리힐스에 자리한 100년 된 스페니시 스타일 하우스. 유럽의 미학과 장인정신,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특유의 빛과 느긋한 라이프스타일이 이 집 안에서 다시 만났다.

등을 탄탄하게 받쳐주는 쿠션감과 유려한 곡선, 보타니컬 패턴이 인상적인 암체어는 아르하우스 Arhaus의 머틀 Myrtle 체어.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통과한 자연광이 거실 분위기를 한층 또렷하게 만든다. 오른쪽 페이지 프란체스카 그레이스가 운영하는 빈티지 가구숍 솜므 Somme에서 선별한 아트 작품과 램프.
프란체스카 그레이스가 운영하는 빈티지 가구숍 솜므 Somme에서 선별한 아트 작품과 램프.

로스앤젤레스, 그중에서도 비벌리힐스 중심부에는 100년 가까운 시간을 견뎌온 스페니시 스타일의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의 영향과 캘리포니아 특유의 기후가 만나 형성된 주택으로 두꺼운 스투코 벽과 아치형 구조, 실내외가 이어지는 공간 구성이 뚜렷하다. 이 집이 처음 눈에 들어온 것도 완공된 사진이 아니라, 집을 고쳐가는 과정을 통해서 였다. 비벌리힐스에 거주하는 한국인 치과의사 니콜(@nyc__ole)은 실제 공사가 진행되는 시간과 그 안에서 마주한 선택들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꾸준히 공유해왔다. 전후 이미지를 나열하기보다 공사의 흐름과 우여곡절에 가까운 기록은 이 집을 더욱 현실적이고 설득력 있는 사례로 보여줬다.

아치형 구조가 공간에 부드러운 인상을 더하는 주방.
스톤 타일, 마블, 우드를 중심으로 마감한 주방 인테리어. 3 빈티지한 핑크 톤으로 마감한 욕실.
빈티지한 핑크 톤으로 마감한 욕실.

“LA를 다니다 보면 이런 스페니시 하우스들을 자주 보게 돼요. 화려하진 않지만 시간이 쌓인 느낌, 그리고 이 도시의 햇살과 유독 잘 어울리는 건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집 상태는 솔직히 썩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매물에는 29개 팀이 입찰에 참여했다. 니콜 역시 첫 입찰에서는 선택되지 못했지만, 최초 계약이 무산되면서 다시 한 번 기회가 돌아왔다. 그 때 니콜은 셀러에게 가격이나 조건보다 이 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담은 편지를 보냈다. 허물고 새로 짓기보다는, 이 집이 지닌 시간과 분위기를 살려보고 싶다는 의도를 분명히 전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LA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철거 후 신축’의 흐름과는 분명 다른 선택이었다. 니콜의 공간 감각은 유년기 경험에서 비롯됐다. 부모님이 유럽에 거주하던 시절, 스페인과 이탈리아, 그리스의 지중해 소도시를 오가며 살아온 시간이 지금의 취향을 만들었다. 햇살이 스며드는 집, 느리게 흘러가던 일상, 벽과 바닥에 자연스럽게 남아 있던 사용감은 집을 바라보는 기준이 되었다. “유럽의 오래된 집들은 새것처럼 완벽하지 않지만, 그게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졌어요. 벽과 가구에 쌓인 레이어가 공간을 더 인간적으로 만든다는 걸 그때 알게 됐죠.” 리노베이션의 방향은 분명했다. 새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대신, 앞으로 100년의 시간을 견딜 수 있는 집으로 다시 만드는 것. 스톤과 마블, 라임 워시 벽, 우드처럼 시간이 흐를수록 깊어지는 자연 소재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했고, 색감 역시 빛과 계절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 보이는 뉴트럴 톤으로 정리했다. 오래된 집을 보존하는 일은 새로 짓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웠다. 몰딩과 아치, 천장 디테일 곳곳에는 균열과 손상이 남아 있었고, 시공 과정에서는 여러 차례 ‘모두 뜯고 새로 하자’는 제안이 이어졌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는 효율만 놓고 보면 가장 시급한 교체 대상에 가까웠다. “보안이나 에너지효율 면에서는 분명 불리했어요. 그래도 이 집의 분위기와 감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디테일이라고 생각했어요. 효율보다 이 집의 성격을 지키는 게 더 중요했죠.” 결국 8개월 예상했던 공사는 1년 반으로 늘어났다. 구조와 재료가 정리된 뒤에도 집은 여전히 채워야
할 부분이 많았다. 공간의 분위기를 정리하고 밀도를 더할 단계에서 니콜이 선택한 파트너는 프란체스카 그레이스 Francesca Grace였다.

LA에서 치과의사로 활동 중인 니콜. 리노베이션 과정을 릴스로 기록하며 공유해왔다. © Andy Kim

어두운 베이지와 브라운 톤으로 통일해 숙면에 집중할 수 있도록 구성한 침실.

유럽 빈티지 가구 숍 ‘솜므 Somme’를 운영하며 셀러브리티 하우스로 알려진 프란체스카 그레이스는 이 집을 처음 보았을 때 이미 방향이 분명한 공간이라고 느꼈다. “이 집은 이미 서사가 분명했어요. 제 역할은 그 이야기를 덮는 게 아니라, 존중하면서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거였죠.” 프란체스카는 유럽의 역사성과 LA의 가벼운 공기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도록 공간을 다듬었다. 빈티지 가구와 에이징된 메탈, 질감이 살아 있는 텍스타일을 더하되, 공간은 열어두고 빛과 공기가 흐르도록 조율했다. “유럽적인 캐릭터가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했어요. LA의 생활 방식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집이어야 했으니까요.” 니콜이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오전이다. 메인 스테인드글라스를 통과한 자연광이 거실을 채울 때,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아도 공간의 분위기가 또렷해진다. 짙은 브라운 톤의 침실은 집 안에서 또 다른 장면을 만들고, 앞마당과 뒷마당, 중정은 여전히 천천히 다듬어가는 중이다. 올리브 나무를 심고 흙과 돌의 질감을 더해가며 조금씩 완성해갈 계획이다. 니콜은 이 집을 ‘빌라 팔로마 Villa Paloma’라 이름 붙였다. 스페인어로 평온과 안식을 상징하는 이 이름처럼, 서두르지 않고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살아가는 로스앤젤레스식 생활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올리브 컬러를 중심으로 꾸민 메인 침실. 장식은 최소화하고 안정적인 색감으로 정돈했다
조개를 연상케 하는 형태의 세면대가 시선을 끄는 욕실.
올리브 나무를 심고 흙과 돌을 더해 완성해갈 예정인 마당. LA의 햇살을 받으며 일상을 즐길 야외 공간으로 자리할 계획이다.

EDITOR | 원지은
PHOTOGRAPHER | 윌 마이어 Will M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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