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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수집욕 덕분에 몇번이고 데였건만, 이번엔 아트 북에 꽂힌건지 지난 달 야네스 바르다의 아트 북과 그의 인터뷰집을 구매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아트 북은 배송되지 않았지만, 그저 경건히 기다리는 마음으로 인터뷰집을 읽다 최근에는 기어코 그의 작품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Cleo From 5 to 7>를 다시 틀기에 이르렀다. 영화 속의 시간은 플롯이라는 만능 장치 덕택에 무한히 늘리거나 줄일 수 있지만, 이 영화의 시간은 현실과 거의 동일한 속도로 흐른다. 한 시간 반이라는 러닝타임이 이를 증명하듯 영화는 말 그대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만을 담아낸다. 타로를 통해 자신의 죽음이라는 소식을 접한 그녀를 다큐멘터리와 혼동할 만큼 각 잡힌 서사 없이 그저 좇는데, 고스란히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과 함께 비극적 예언의 당사자가 된 클레오의 모습만큼은 어떤 것보다도 극적이다. 주변에서 연이어 들리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이 클레오를 감쌀 때 곤두선 신경을 감추지 못하고 조금씩 무너져가는 표정, 초조한 몸짓은 그 긴 시간의 허리를 댕강 잘라낸 듯한 착각이 일 정도.

야네스 바르다의 작품을 사랑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영화를 시작하기 전 사진가로서 오랜 경력이 있던 그녀인 만큼, 영화 한 장면 장면이 마치 사진처럼 놓칠 수 없는 인상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선보이는 작품마다 쏟아졌던 찬사와 반대로, 제작비에 허덕이거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여타 누벨바그풍의 감독들의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기에 “저는 잊혀질 거예요”라 버릇처럼 말하던 그였지만, 보라! 이렇듯 바르다의 영화가 지금 내 무비 플레이 리스트를 다시금 장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