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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에 문을 연 JKND 신사옥. 푸하하하프렌즈는 이 건물을 통해 기업 사옥을 넘어,
도시의 새로운 트렌드인 ‘연결과 소통’을 건축으로 제시한다.

높은 창 너머로 성수동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포토 스튜디오.
1층 입구. 중심에는 매장을 이용하는 손님들을 위한 입구를, 건물 양 끝에는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두어 동선을 구분했다.
건물 중심에 시원하게 쭉 뻗은 콘크리트 구조가 돋보이는 외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성수동의 풍경 속에 또 하나의 건물이 들어섰다. 패션 브랜드 JKND의 신사옥이다. 디스이즈네버댓, 예스아이씨, 카키스 등 트렌드를 이끄는 브랜드를 운영해온 JKND는 패션과 F&B를 넘어 도시 속 건축으로 그 실험을 확장했다. 지하 4층부터 지상 10층까지 매장과 오피스, 포토 스튜디오, 라운지로 구성된 건물은 최근 서울시 건축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번 건축 설계는 JKND와 오랜 협업을 이어온 건축사사무소 푸하하하프렌즈가 맡았다. 실내 디자인과 가구는 스튜디오 COM의 손길로 완성됐다. 푸하하하프렌즈 한양규 소장은 서울시 건축상 수상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건물 짓는 과정이 참 소중했어요. 건축상은 특정 개인이 받는 상이 아니라, 건물이 그리고 함께 만든 사람들이 받는 상이죠. 실제로 동판에도 그렇게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좋은 결실을 맺게 되어 더욱 기쁩니다.”

건물 내부에는 커다란 보 덕분에 기둥이 없어 다양하게 공간 활용이 가능하다.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마련한 휴식 공간과 캔틴.
복도에 이어지는 회의실과 넓은 이동식 책상. 미팅이 잦은 패션 브랜드이기에 건물 중앙의 계단을 통해 층별 이동이 용이하도록 설계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코어’였다. 푸하하하프렌즈는 이번 작업에 ‘코어 해체 시스템’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커다란 십(十)자 모양의 코어가 건물을 수직으로 가로지르고, 층마다 거대한 보를 걸어 기둥 없이 내부를 넓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저층부 상업 공간과 상층부 오피스가 공존하는 건물 특성상, 일반적인 동선과 공간 구성을 넘어서는 고민이 필요했다. 특히 JKND는 디스이즈네버댓, 카키스, 썬러브, 테누이 등 8개 브랜드를 운영하며, 디자인부터 생산, CS, MD에 이르는 10개가 넘는 부서를 두고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직 구조와 유동적인 협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푸하하하프렌즈는 ‘가위계단’이라는 독특한 동선 구조를 제안했다. 한 층에서 위아래 3개 층을 한 번에 연결하는 교차형 계단이다. “지하철 환승을 떠올리면, 몇 층인지 인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잖아요. 몸을 꺾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죠. 그런 이동 경험을 건물 안으로 가져오고 싶었습니다.” 문제는 이 계단이 건물 중심부의 넓은 면적을 차지한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한양규 소장은 이를 “공용면적이 넓은 것이 아니라, 자주 쓰이는 공간이라면 사실상 전용면적이다”라는 유쾌한 발상을 설명한다. 건물 양 끝에는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두고, 넓은 복도로 연결했다. 복도 양옆에 업무 공간을 배치하고, 화장실과 편의 시설, 설비 공간은 계단 가까이에 두었다. 이러한 과감한 설계는 전적으로 JKND의 신뢰에 기반해 가능했다. “사실클라이언트가 대단하죠. 가운데 계단을 두겠다고 했을 때 ‘장난하세요?’가 보통의 반응일 텐데, JKND는 ‘알아서 해주십시오’ 했어요. 결국 설계자보다 클라이언트의 도전이 더 컸던 거죠.”

지하 공간에 새롭게 오픈한 티 커피.
옥상과 포토 스튜디오. 직원용 엘리베이터를 중심으로 양옆에 시원하게 펼쳐진 옥상.
푸하하하프렌즈 윤한진, 한양규, 한승재 소장.

이 건축물은 보통의 건물과 달리 끝이 없다. 사람들은 층간의 경계 없이 오르내리며, 자유롭게 소통하고 연결된다. 그렇게 건물 자체가 ‘열린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푸하하하프렌즈는 이번 작업을 서울이라는 도시의 맥락 안에서 설명했다. “서울은 유럽이나 일본과는 달라요. 매일매일 전쟁터 같은 곳이죠. 치열하고 거칠지만 그만큼 에너지가 있습니다. 그 치열함이 오히려 순수해 보이기도 해요.” 그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언젠가는 기본에 충실한 건축이 트렌드가 되는 날이 오기 바라요. 괜히 휘어지거나 치장된 건물이 아니라, 그냥 우뚝 서 있는 건물만으로도 ‘괜찮다’는 말을 듣는 날이요. 건물이 자연스럽게 나이를 먹고, 도시와 함께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면그게 가장 바람직한 풍경 아닐까요.” 결국 JKND 성수 사옥은 단순히 브랜드의 거점을 넘어, 서울이라는 도시의 치열하고도 생동하는 에너지를 담아낸 결과물이다. 화려한 장식 대신 본질에 충실한 건축, 연결과 소통을 중시하는 구조는 도시가 앞으로 어떤 풍경을 만들어갈지 작은 단서를 보여준다. 유행을 좇기보다 오래도록 살아남는 공간, 그것이야말로 지금 서울이 가장 필요로 하는 건축의 태도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