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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능주의 건축의 상징이던 1900년대 곡물 저장고가 오늘날의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의 유산을 품은 채, 기능에서 예술로 이어지는 건축의 변주를 담아낸 쿤스트실로 이야기.

과거와 현재의 요소들이 병치되어 조화를 이루는 쿤스트실로 내부.

20세기 기능주의 건축가 아르네 코스모 Arne Korsmo와 스베레 오슬란 Sverre Aasland이 설계한 1935년의 곡물 저장고가 현대미술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노르웨이 남부의 크리스티안산에 위치한 쿤스트실로 Kunstsilo 이야기다. 리노베이션은 바르셀로나 기반의 메스트레스 와게 아키텍츠 Mestres Wåge Arquitectes, 멘도사 파르티다 Mendoza Partida와 노르웨이의 BAX 스튜디오가 공동으로 진행했는데,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같았다. “사일로는 그 자체로 조형적인 힘을 가진 구조물인 만큼, 미술관 전체가 이 중심을 회전축 삼아 배치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건축물이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에도 기능할 수 있도록 ‘재사용을 통한 재구성’을 지향했어요.” 메스트레스 와게 아키텍츠 대표인 매그너스 메스트레스 Magnus Mestres가 말했다. 이들은 과거 1만5000여 톤의 곡물을 보관하던 기존 사일로 구조를 남기되, 내부를 비워내고 절개해 동선의 중심축으로 전환했다. 그렇게 총 30개의 원형 사일로는 위아래로 관통하거나 옆을 따라 걸을 수 있는 구조로 재구성되어, 높이 21m에 이르는 아트리움이자 건물의 중심 공간으로 거듭났다.

20세기 기능주의 건축에 대한 존중의 의미를 담아 외관은 최대한 보존했다.
21m에 달하는 높은 층고를 가진 쿤스트실로 외관.
계단은 사일로의 둥근 원형에서 형태를 차용했다.

외관은 실용성과 기능성을 중시하던 시대의 건축적 가치에 대한 존중으로 최대한 보존된 반면, 내부는 전시와 공공 프로그램에 적합하도록 과감하게 재구성했다. 바닥을 가로지르는 철근 콘크리트 보와 기둥 구조는 새로운 층위를 지지하는 동시에, 원형 사일로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내부에 천창을 두어 자연광을 들이는 것 또한 중요했다. “과거와 현재가 병치된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한 건축 언어입니다. 거칠게 절개된 콘크리트와 그 사이에 삽입된 새로운 재료들은 이 건축의 서사를 완성합니다. 서로 이질적인 요소들이지만, 충돌하지 않고 나란히 병치되죠.”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좌우에 새롭게 구축된 화이트 큐브 형태의 공간은 강한 물성을 가진 사일로와 뚜렷한 대비를 이루며, 작품 전시를 위한 중립적 배경 역할을 한다. 두 공간은 용도뿐 아니라 분위기에서도 뚜렷이 구분된다. “사일로는 그 자체로 전시의 일부로 작동하는 곳이라면, 화이트 큐브는 감상의 집중을 위한 여백입니다. 관람자는 밀도 높고 극적인 공간(사일로)에서 점차 차분하고 중립적인 영역(화이트 큐브)으로 이동하는 경험을 하게 되죠.”

과거 곡물을 보관하던 사일로를 절개해 높이 21m에 달하는 아트리움을 만들었다. © Alan Williams / Kunstsilo

건물 꼭대기에는 유리 구조의 전망 공간과 이벤트 홀이 마련되어 크리스티안산 항구와 인근 군도를 조망할 수 있다. 1층엔 카페와 상점이 자리하고, 아트리움 또한 무료로 개방된 덕에 쿤스트실로는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공공 장소로 기능한다. “물리적인 개방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열린 공간이 되도록 의도한 설계입니다.” 이처럼 도시 구조 안에서 문화와 일상을 연결하는 쿤스트실로는 2025 베르사유 건축상 Prix Versailles을 받으며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기능적 재생과 공공성, 조형미를 아우른 이번 리노베이션은 미술관이라는 공간에서 건축이 가진 본질적인 의미와 역할을 증명해냈다. “방문객들이 예술과 건축이 어우러진 이 공간에서 영감을 받고, 그 경험이 더 깊은 탐색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능주의 건축의 유산을 간직한 쿤스트실로는 그 위에 예술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섬세히 덧입히며 장소, 사람, 예술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건축의 가능성을 증명해냈다.

기존 건축물의 특징인 콘크리트의 거친 물성과 대비를 이루는 차분한 현대 요소들이 인상적이다.
방문자들에게 ‘열린 공간’이 되기 위해 마련한 카페와 상점.
건물의 꼭대기는 유리 구조의 전망 공간이 있어 주변 풍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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