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 개척 시대에 청바지를 팔았던 것처럼,
미술 열풍을 타고 팔 수 있는 모든 것.

미술 시장의 규모 조사는 통상 미술 작품의 연간 거래 총 대금을 기준으로 한다. 갤러리, 아트 페어, 옥션, 공공 미술 등 미술 시장에서 판매된 작품 금액의 총 액수를 조사하여 합산하는 것이다. 통상 한국 미술 시장은 2020년 무렵 4000억원대를 유지하다가, 2022년 무렵 약 1조원으로 급상승했다. 최근 글로벌 경기 침체와 함께 미술 시장은 다시 조용해졌고, 2023년 세계 미술 시장은 약 89조원, 한국은 약 8500억원 규모로 집계된다. 그러나 문화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뜨거워서 관람객은 많은데 작품은 팔리지 않는다는 우려의 시선도 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보면 어떨까? 소유가 아니라 경험에 더 큰 관심이 있는 시대, 미술 시장은 사람을 모으고 산업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진화중이기 때문이다. 작품 판매는 주춤했더라도 입장료, 굿즈, 미술관 카페 등의 부대 수익은 늘어났을 것이다. 또한 미술관이나 아트 페어를 위해 방문한 해외 관광객이 있다면 숙박, 교통, 식비 등을 통한 간접수입도 고려해야 한다. 각 도시가 서로 경쟁하듯 아트 페어를 개최하고 미술관을 지으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도시를 활성화하고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아트만 한 콘텐츠가 없다. 사막의 불모지에서 미술관이 즐비한 세계의 예술 도시로 변모하고 있는 카타르도하는 2026년 2월 새로운 아트 페어를 시작한다. 바로 아트 바젤 도하다. 중동, 북아프리카, 남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31개국 87개 갤러리가 참여하며, 이집트 출신 예술가 와엘 샤키가 초대 예술감독을 맡는다.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 이어 4년 만에 미술로 도약을 모색하는 셈이다.

미술관 수익 구조도 경험의 시대에 발맞춰 다변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라익스뮤지엄의 경우, 뮤지엄에 인증 가이드로 신청을 하고 심사를 거쳐 인증 배지를 획득하면, 자체 마케팅을 통해 고객을 유치하여 미술관을 안내할 수 있다. 미술관은 인증 시스템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유지하고, 고급 문화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인력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암스테르담뿐 아니라 파리, 뉴욕, 런던, 피렌체, 로마 등 풍부한 문화유산을 갖춘 예술관광 중심 도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형태의 문화해설 경제다. 기존 문화예술 기관에서 정규직을 얻기 어려운 구조 속에서 이와 같은 구조는 실질적인 대안이, 또한 관람객에게는 좀 더 깊이 있는 경험과 관람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는 셈이다. 요식업 또한 문화 나들이에 빼놓을 수 없다. 다수의 미술관은 부대시설로 운영되는 레스토랑을 통해 수익의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심지어 한국 사람들이 자주 찾는 도쿄 네즈미술관의 경우 미술관 소장품을 보러 가려는 이들보다는 카페에서 창밖의 정원을 내다보려는 이들이 많다. 세계 곳곳에 17개 지점을 운영하고 있는 하우저 앤 워스 갤러리는 일부 지점에 레스토랑과 문화 공간을 결합해 운영한다. 한편, 예술품이 있는 레스토랑으로 특화하는 곳들도 있다. 라스베이거스 벨라지오 호텔의 피카소 레스토랑은 1998년부터 피카소의 원작 20여 점이 있는 미슐랭 레스토랑으로 유명세를 떨쳤고, 심지어 작품을 판매하여 시세 차익을 누리기도 했다. 데이비드 슈리글리의 작품이 있는 런던의 스케치를 비롯하여 이와 같은 레스토랑은 지속적으로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본다면 미술 시장에 대해 미술 작품을 사고파는 데에 한정시키는 것은 시야가 너무 좁은 통계다. 서부 개척 시대에 진짜 돈을 번 사람은 금광을 쫒던 이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청바지를 판 이들이었던 것처럼, 미술을 매개로 한 산업이 곳곳에 꽃을 피우고 있다. 게다가 미술 시장이 촉매제가 되는 비즈니스는 영국이나 이탈리아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수명도 무한하다. 그 속에서 미술품 투자자가 아니라 장기적 안목의 진정한 컬렉터가 양성될 것은 자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