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이주와 출발의 관문이던 옛 항구 창고가 오늘날 새로운 시대의 박물관으로 다시 열렸다.
로테르담 마스 강변의 페닉스는 건축을 통해 인간의 이동과 정체성, 시간을 건너온 기억을 풀어낸다.



로테르담 남쪽 마스 강변, 카텐드레흐트 반도의 오래된 항구 창고가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1922년 건축가 코르넬리스 니콜라스 판 후르가 설계한 이 거대한 철근 콘크리트 창고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환적 시설이었다. 19세기 말 수백만명의 이민자들이 미국과 캐나다를 향해 배를 타던 부두 위에 서 있는 이 건물은, ‘출발과 도착’의 상징이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조니 와이즈뮐러, 빌럼 더 쿠닝, 막스 베크만 같은 이름들이 이곳에서 바다를 건넜고, 동시에 또 다른 수백만명이 이 땅에 발을 디뎠다. 그렇게 이 항구는 오늘날 170개가 넘는 국적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문화 도시 로테르담의 시작점이 되었다.




100년의 시간과 수많은 이주의 흔적을 품은 이 거대한 창고가 지난 5월, 페닉스 Fenix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다. MAD 아키텍츠가 리노베이션을 맡고 복원 전문 스튜디오 뷰로 폴더만이 조언한 이 프로젝트는 재생 건축의 개념적 이론을 넘어, 인간의 ‘이동’라는보편적 경험을 건축으로 보여준 새로운 시도다. “페닉스는 건물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래된 창고는 수많은 여정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고, 토네이도 계단은 움직임과 변화의 감각을 더해줍니다. 두 요소는 ‘이주’라는 개념이 내포한 변화와 회복력, 시간의 흐름을 반영합니다.” 페닉스의 총괄 디렉터 앤 크레머스 Anne Kremers가 말했다. 2018년 시작된 복원 과정에서 길이 172m의 외관은 1년 반에 걸쳐 원형을 되찾았다. 60년 넘는 세월 동안 이어진 증축과 개조의 흔적은 정리되었고, 녹슨 프레임과 불균질한 파사드는 복원되었다. 2200㎡ 규모의 남측 외벽에는 샌드블라스트와 스타코 재도장이 이루어졌고, 전쟁 이후 특유의 슬라이딩 도어는본래의 녹색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두 눈을 사로잡는 것은 지상에서 옥상까지 이어지는 550m 길이의 이중 나선 계단 ‘토네이도Tornado’다. 1만2500개의 목재 플랭크와 4000㎡에 달하는 스테인리스 스틸 패널로 완성된 거대한 구조물은 상승하는 바람처럼 공간을 휘감으며 24m 높이의 전망 데크까지 이어진다. 방문객은 계단을 오르는 동안 이동과 변화를 몸으로 경험하고, 옥상에 오르면 마스강과 로테르담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또 실내외가 연결된 2275㎡ 규모의 공용 공간 ‘플레인 Plein’은 도시 광장처럼 열려 있으며, 공연과 축제, 마켓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플레인은 페닉스의 심장입니다. 미술관과 도시를 연결하는 열린 공간이죠. 이곳에서 사람들은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시간을 보냅니다. 다양한 행사와 일상 속 활동을 통해 플레인은 접근 가능하고 포용적인 공간이 되고자 하는 페닉스의 비전을 실현합니다.”








진짜 여정은 건물 안에서 비로소 시작된다. 내부 갤러리에서는 스티브 맥퀸의 섬세한 시선, 리네케 다익스트라의 친밀한 초상, 실파 굽타의 날카로운 메시지가 사랑과 상실, 정체성과 귀향, 그리고 행복을 향한 여정을 다층적으로 탐색한다. 수천 개의 기증 가방으로이루어진 몰입형 설치 작품 ‘수트케이스 미로 Suitcase Labyrinth’ 역시 관전 포인트. <이주자 가족 Family of Migrants> 사진전은 과거와 현재의 삶을 병치하며 이동의 현실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디렉터 앤 크레머스는 오늘날 미술관의 역할을 이렇게 정의했다. “오늘날의 미술관은 모두를 환영하는 공간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관광이 늘어나는 시대에도 미술관은 사람들이 속도를 늦추고, 성찰하며, 마음에 와닿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100년 전 이 부두에서 시작된 ‘이주’의 서사는 이제 현재와 미래를 향해 움직이는 존재로 자리한다.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되새기게 하는 페닉스. 이곳에서 거대한 여정의 일부가 되어보기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