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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선 작가의 다양한 작품군을 살펴볼 수 있었던 홍익대학교 석사청구전.

목재의 갈라짐, 불에 탄 흔적, 균열과 결함. 통상 가구에서 결함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손태선 작가의 작업 안에서는 전혀 다른 차원으로 옮겨간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는 계원예술대 리빙디자인과와 홍익대 목조형가구디자인과에서 공부한 뒤, 자연 속에서 발견한 조형 언어를 가구라는 매체에 이식해왔다. 그에게 가구란, 기능을 수행하는 오브제를 넘어 공간 속에서 시간을 매개하는 조각으로 여겨진다. 초기 작업이 과감하고 복잡한 곡선의 실험이었다면, 지금은 불필요한 에너지를 덜어낸 간결한 선과 미세한 질감의 층위를 통해 더 깊은 서사를 탐구한다. 해양 생물의 유기적 형상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이제 지상 식물과 생명체 전반으로 확장되며, 자연의 성장과 소멸, 그리고 순환의 리듬을 다층적으로 사유하게 한다.

생명체의 유기적 형태를 닮은 콘솔은 클로로시스 시리즈.
작가 활동과 함께 실용적인 가구 디자인을 선보이는 브랜드 오류 엘리먼트를 이끌고 있는 손태선 작가.
해양 식물에서 영감을 받은 마린 바이올로지 시리즈 행거.

가구라는 매체를 통해 자연을 표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어릴 때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처음부터 가구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지만, 자연스럽게 이 길을 택하게 됐죠. 나무는 인류가 가장 오랫동안 다뤄온 재료이자 시간과 변화의 흔적을 품고 있는 존재예요. 저는 그 재료가 지닌 서사를 작업 속으로 끌어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작업에서 ‘나무’는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요? 나무는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을 품고 있습니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환경에 반응하는 과정을 통해 재료가 걸어온 시간을 보여주죠. 저는 그 흔적을 결함으로 보지 않고 조형 언어로 해석합니다. 균열이나 불에 탄 자국은 자연과 시간이 남긴 기록이며, 이를 통해 재료의 ‘살아 있음’을 드러내고 싶어요.
대표작을 통해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들려주세요. 제 작업은 자연의 변화를 직관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입니다. 서스펜디드 오가니즘 Suspended Organism 시리즈는 목재의 균열과 뒤틀림을 시간의 기록으로 바라보며,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 재료의 존재성을 극대화한 작업입니다. 클로로시스 Chlorosis는 해양식물의 생명력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뼈대를 통해 부재가 조형적 에너지로 전환되는 과정을 탐구합니다. 마린 바이올로지 Marine Biology는 바다 생명체의 곡선을 추상화해 자연의 리듬과 구조를 공간 안으로 옮기려는 시도죠. 특히 해양을 모티프로 한 이 작업은 어릴 때 수영하며 바다를 가까이 경험한 기억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물속에서 본 유기적이고 변화무쌍한 형태가 조형적 영감으로 이어졌고, 이후에는 시선을 지상 식물과 다른 생명체들로 확장하며 더 넓은 스펙트럼에서 다루게 됐습니다.
작업에서 불을 활용하는 과정이 인상적입니다. 표면을 그을리는 수준을 넘어, 재료 전체를 태우는 특별한 방식이라고요. 맞아요. 표면만 살짝 그을리는 수준이 아니라, 작품 전체를 불에 태우는 방식을 사용합니다. 그렇게 남은 숯처럼 검은재를 다시 표면에 입혀 마감하는데, 이 과정에서 나무의 결과 틈, 질감이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단순히 외관을 검게 만드는 차원을 넘어, 재료가 지나온
시간과 변화의 흔적이 표면 위로 떠오르게 되는 거죠. 불을 사용하는 행위는 소실과 보존이 동시에 일어나는 과정이며, 목재는 이 과정을 통해 오히려 더 단단한 물성을 갖게 됩니다.
작품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할렬’ 역시 흥미로운 요소입니다. 할렬은 외부의 물리적 힘이나 환경적 요인으로 나무가 갈라지거나 쪼개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흔히 결함으로 여겨지지만, 저는 그것을 재료가 지나온 시간과 환경의 기록으로 봅니다. 이런 흔적을 숨기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저에게는 중요합니다. 그것이 재료가 살아온 시간을 존중하는 태도이자, 작품이 지닌 긴장과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니까요.
가구를 ‘기능을 넘어선 매개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작가님이 바라보는 가구와 조형의 경계는 어디쯤에 놓여 있나요? 저는 가구를 단순히 사용하는 물건이 아닌 ‘존재’로 봅니다. 의자가 실제로 사용되는 시간은 하루 중 1~2시간에 불과하고, 나머지 23시간은 공간 속에서 조형으로 존재하죠.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능보다 형태와 물성, 그리고 시간을 품은 존재로서의 가구를 탐구하고 싶습니다. 매끄러운 표면과 거친 질감, 불에 탄 흔적을 통해 관람자가 시간의 밀도와 재료의 역사를 손끝으로 느끼기 바랍니다.
최근 함께 진행 중인 프로젝트 ‘오류 엘리먼트 Oryu Elements’에 대해서도 들려주세요. 오류 엘리먼트는 오랜 친구이자 동료 이영현 작가와 함께 만든 프로젝트입니다. 개인 작업이 자연의 서사를 조각적 언어로 옮기는 탐구라면, 오류 엘리먼트는 좀 더 실용적인 차원에서 ‘일상 속 조형’을 구현하는 실험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능과 사용성의 비중이 높아지지만, 구조를 다루는 방식이나 재료를 바라보는 태도는 제 개인 작업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상적인 가구 안에서도 조형적인 경험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브랜드죠. 무엇보다 두 작업은 서로에게 영향을 줍니다. 브랜드에서 얻은 기술적 통찰은 개인 작업의 깊이를 더하고, 반대로 실험적인 조형 언어는 브랜드 제품에도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어요.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한 지점에서 만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작업 방향에 대해 들려주세요. 현재는 나무를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지만, 향후에는 금속이나 돌, 레진 등 다른 재료를 다루는 가능성도 고민하고 있습니다. 재료의 물성과 시간성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이를 통해 조형 언어를 더 깊이 있게 발전시키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오류 엘리먼트 역시 그러한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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