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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대륙에서 태어나 같은 시대를 살아낸 화가 아돌프 고틀립과 김환기가 표현한 감정의 추상.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 아돌프 고틀립과 김환기> 전시 전경.

추상은 감정을 담아낼 수 있을까? 아돌프 고틀립과 김환기의 작업은 이 질문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대답한다. 1960년대와 70년대에 각각 미국과 한국을 기반으로 활동한 두 화가는 각자만의 형식으로, 세계를 받아들이는 개인의 감각과 내면을 화면 위에 펼쳐냈다. 페이스 갤러리 서울에서 열리고 있는 2인전 <추상의 언어, 감성의 우주: 아돌프 고틀립과 김환기>는 이 두 작가의 작업을 병치하며, 추상이 감정의 기록이자 사유의 은유가 되는 방식을 살핀다.

Adolph Gottlieb,<Russet>, 1973, Acrylic on canvas, 152.4 ×121.9cm.

전시는 각기 다른 문화적 배경 속에서 발전한 두 작가의 추상 언어가 감정의 보편성을 지향하는 방법을 조명한다. 아돌프 고틀립의 대표 연작인 <버스트 Burst> 시리즈는 감정의 분출을 상징하는 원형과, 이를 지탱하거나 붕괴시키는 구조물의 조합으로 이뤄진다. 폭발하는 형상과 분절된 붓질, 상하로 구획된 화면은 작가의 내면 풍경을 압축된 기호로 가시화한다. 그의 회화에서 감정은 자율적으로 분출되기보다, 설계된 구조 안에서 유영하며 긴장을 형성한다. 반면 김환기의 작업은 감정의 구조보다는 구조의 감정에 가깝다. 작가가 뉴욕에 체류하던 시기인 1970년대에 제작된 <점화(點畵)> 연작은 일정한 화면 밀도는 유지한 채 점과 색, 음영과 여백 사이의 미세한 차이를 통해 감각의 변화를 도모한다. 그에게 점은 회화를 구성하는 조형 요소가 감정의 흐름과 우주의 질서를 표현하는 방식인 셈이었다.

Adolph Gottlieb,<Expanding>, 1962, Oil on canvas, 228.6 ×182.9cm.

서로 전혀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두 작가의 궤적은 결과적으로 회화의 본질, 즉 형식으로 감정을 말하는 방법론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한다. 하지만 그 접근 방식은 평면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명확하게 구분된다. 아돌프 고틀립이 감정의 동요를 붓질과 구획의 균열로 번역했다면, 김환기는 감정의 고요한 잔상을 점의 진동과 색의 호흡으로 응축했다. 전시는 이처럼 표현과 구성, 분출과 축적, 기호와질서의 긴장 위에 놓인 두 개의 세계를 병치하며 감정 추상의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아돌프 고틀립의 세계 속 감정이 직관적이고 격렬한 흐름을 담았다면, 김환기의 세계 속 그것은 정제되고 침잠한 명상의 시간을 표현한다.

김환기,<Untitled> , 1967, Oil on canvas, 91× 61cm.

이번 전시는 각 작가의 대표작 15점 내외로 구성되며, 그중 다수는 2~3m 크기의 대형 회화다. 응축된 단색의 깊이와 구성의 대담함, 반복 속 포착되는 미묘한 차이는 보는 이의 감정까지 서서히 끌어올린다. 형태와 감정, 개인과 우주, 미국과 한국이라는 대립되는 요소들은 충돌 대신 공명을 택했다. 두 작가의 작업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처럼, 추상이라는 언어가 담아내는 다양한 감정의 층위와 우주적 사유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전시는 2026년 1월 10일까지, 페이스갤러리 서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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