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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의 지원을 받아 제작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 · 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하는 ‘우수공예품 지정제도’에 선정된 올해의 작가 5인을 만났다. 전통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이들은 한국 공예의 깊이와 감각을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다.

2025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된 <차를 위한 도구-선결, 이음>. 다양한 사이즈로 겹겹이 쌓아 활용 가능하다.
작은 다과를 위한 플레이트와 커트러리.
직선과 곡선 패턴이 돋보이는 문진 시리즈.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작업실에 잔잔하게 깔린다. ‘톡톡’ 정과 망치가 닿는 순간의 떨림. 김하얀 작가는 이 차분한 반복 속에서 오래된 금속공예의 전통을 동시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입사는 기물 표면을 음각한 뒤 그 자리에 다른 금속을 감입해 문양을 완성하는 기법이다. 그중 ‘끼움 입사’는 음각의 밑면을 고르고 옆면을 넓혀 다듬은 뒤 은실을 박아넣는 과정이 핵심이다. 일정한 속도로 금속을 파내고, 끝까지 밀어넣고, 다시 표면을 다듬는 일. 단순한 인내라기보다 감각을 오랜 시간 누적시키는 방식에 가깝다. 김하얀 작가는 공예의 본질을 ‘과정성’과 ‘시간성’에 둔다. “공예는 다른 미술 매체보다 과정과 시간이 훨씬 중시돼요. 결과물보다 그 과정이 만들어내는 감각을 보여주고 싶어요.” 대학 시절 금속공예 수업이 있는 날이면 지각을 안 하기 위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곤 했다는 그녀는, 늘 손을 먼저 움직이며 금속 앞에서 시간을 보냈다. 졸업 이후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보낸 7년 반 역시 그 감각이 확장된 시간이었다.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과 기술을 나누며 지냈고, 그 자유로운 흐름 속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전통으로 향하는 감각이 한층 또렷해졌다. 2020년 팬데믹으로 한국에 머물게 된 순간, 그는 한 가지 기술에 깊이 몰입했다. 끼움 입사를 본격적으로 단련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다. 동일한 속도와 호흡으로 금속을 파내야 하는 작업. 오래 들여다보고 오래 두드리며 견뎌내는, 시간의 예술이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입사 전승공예 이수자 과정을 거치며 작가는 ‘선을 파내는 연습’만 3년을 했다. 반복되는 망치질로 부러지는 정을 갈아 끼우며 금속의 결을 따르는 법을 익혔다. “아주 오래된 기술이고 그래서 보존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지만 저는 현대를 살아내는 공예가예요. 단순히 전통 기법을 사용하는 공예가로만 머물지 않고 내가 전통을 어떻게 번역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커요.” 그녀가 작업 과정을 기록한 영상, 망치질 소리로 만든 음악 등 공예의 움직임을 다른 매체로 확장하는 협업을 즐기는 이유다. 이 모든 흐름이 ‘헤리티지 핸즈’라는 이름 아래 일상의 오브제와 이어지며 기술의 가치를 다층적으로 확장한다.

공예트렌드페어 준비가 한창이던 작업 테이블.
끼움입사 기법을 적용한 금속 작업을 선보이는 김하얀 작가.
입사 작업을 위해 정으로 미세한 선을 파고 있다.
찻잎을 담을 수 있는 미니 합.

2025년 한국공예 · 디자인문화진흥원 주관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된 <차를 위한 도구 – 선결, 이음>은 그 확장의 현재를 보여주는 작업이다. 향이나 초처럼 시간의 흐름을 천천히 만드는 취향에서 출발한 차 도구는 열림과 중첩의 구조를 중심으로 다양한 구성과 형태를 유연하게 받아들인다. 굽 없는 뚜껑은 지나치게 맞물리지 않고 손을 따라 부드럽게 여닫히며, 감상에 머무르지 않고 사용으로 완성된다. 이는 사용자를 관찰자로만 머물게 하지 않고 능동적 주체로 끌어들이는 장치이기도 하다. “우수공예품 지정제도는 단순히 결과물의 평가가 아니라 작가가 어떤 시간을 지나왔는지, 어떤 기술과 감각을 축적해왔는지를 보는 제도 같다고 생각했어요. 제 작업이 동시대의 언어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다시 느끼게 했습니다.” 우수공예품 선정 이후 KCDF의 지원을 통해 많은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외부의 인정이 다시 자가 동력이 되는 경험을만들어주었고, 2025 공예트렌드페어에 이어 파리 메종 & 오브제에서 새로운 작업을 선보일 계획이다. 이제 그의 시선은 벽과 맞닿는 오브제로 향한다. 2023년에는 데스크 오브제를, 2024년에는 차 도구와 테이블웨어를 만들었다면 다음에는 문 손잡이나 후크처럼 고정된 기물을 생각한다. 더 느린 시간, 더 많은 공정을 요구하는 대상들이다. 그는 이번 선정이 결과물의 완성이 아니라 과정의 확장이 되기 바란다. 잘 만드는 사람이라기보다 흐르는 작업을 지속하는 사람, 시간과 손의 리듬을 따라가며 새로운 언어를 찾아가는 공예가. 그는 다시 또 다른 과정의 문턱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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