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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공예의 다음 장을 향한 작은 응원에서 출발한 ‘메종 마리끌레르 × 설화수 공예 어워즈’.
2025 공예트렌드페어에서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3인을 만났다.

조혜영 작가의 부스 전경.
설화수 김정연 상무와 최우수상을 수상한 조혜영 작가.

공예가에게 상은 작업을 계속 이어가도 된다는 하나의 작은 신호가 될지도 모른다. 누군가 자신의 시간과 손으로 만들어온 장인정신, 그리고 앞으로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메종 마리끌레르와 설화수가 함께한 ‘메종 마리끌레르 × 설화수 공예 어워즈’는 바로 그런 마음에서 출발했다. 한국 공예의 흐름을 가까이서 지켜보며 기록해온 메종은 전통을 오늘의 언어로 재해석해온 설화수와 함께 신진 공예가 세 명을 선정해 20주년을 맞이한 ‘2025 공예트렌드페어’ 현장에서 시상식을 진행했다. 총 85개 팀이 참여한 신진공예가관 가운데 최우수상은 도예 작가 조혜영, 우수상은 옻칠의 김아람과 금속공예의 신명진 작가에게 돌아갔다. 시상은 메종 마리끌레르 박명주 편집장과 설화수 글로벌 마케팅 김정연 상무가 맡았으며, 총 800만원(최우수상 400만원, 우수상 각 200만원)의 상금이 전달됐다. 이쯤 되면 뷰티 브랜드 설화수가 공예와 어떤 연관이 있을지 궁금해질 법하다. 하지만 공예에 대한 설화수의 관심은 결코 단발적이지 않다. “설화수는 전통을 단순히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늘의 감각으로 정교하게 재해석해 깊이 있는 아름다움으로 전하는 것을 지향해왔습니다.” 김정연 상무가 말했다. 오랜 시간 정성과 집념을 들여 작업을 이어가는 공예가의 태도는 설화수가 추구해온 장인정신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아름다움’이라는 가치와도 자연스럽게 맞닿아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심사에서도 그 기준은 분명했다. 작품의 완성도는 기본이고 전통을 어떻게 오늘의 시선으로 다시 풀어냈는지, 그리고 그 과정이 작가만의 언어로 설득력 있게 이어지는지가 중요하게 작용했다. 김정연 상무는 “전통의 소재와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동시대적 감각을 접목한 창조적 인 시도에 높은 평가를 부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의 의도와 제작 방식에 대한 심층적인 대화를 통해 설화수가 추구하는 장인정신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는지도 면밀히 살펴봤다고 덧붙였다. 설화수가 ‘살롱 설화수’, ‘설화수 컬처프로젝트’ 등 다양한 문화 후원을 통해 전통과 현대를 잇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누군가의 작업이 계속될 수 있도록, 그 다음을 바라보는 일. ‘메종 마리끌레르 × 설화수 공예 어워즈’는 젊은 작가들에게 분명 응원의 힘이 될 것이다.

조혜영 작가

조혜영
수상 소감 ‘점이 선이 되는 순간’처럼 작은 움직임이 반복되며 시간과 감각이 형태로 쌓이는 과정을 작업해왔습니다. 이번 수상은 그 과정을 더 성실하게 이어가도 된다는 조용한 격려로 느껴졌습니다.
작업 세계 제 작업은 한 번에 완성된 형태보다 작은 단위를 반복하는 방식이 저와 더 가깝다는 개인적인 고찰에서 출발했습니다. 비록 하나의 점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이 모여 선이 되고, 형태가 될 수 있으니까요. 얇은 흙 선이 쌓여 소성을 거쳐 거의 영속적인 물질로 변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동을 관객에게도 전하고 싶었습니다. 완성된 형상이 아니라, 그 안에 남은 선들의 흔적과 시간이 축적된 깊이, 그리고 존재의 연속성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품 소개 점이 선이 되는 찰나, 정지해 있던 존재가 현상의 세계로 이동한다고 느껴요. 저는 선을 존재가 세계에 출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선을 긋는 행위를 ‘드러남’의 행위로 바라봅니다. 그래서 제가 만드는 형태는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선이 지나온 자취이자 시간이 남긴 결이고, 바람의 물결이나 지층처럼 보이지 않는 에너지 구조가 드러난 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예가로서의 소신 완성된 형체만 보여주기보다, 점과 선이 지나온 궤적과 그 사이의 순간이 함께 느껴지는 작업을 지향합니다. 또 작업자의 태도와 손의 개입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손아귀에서 직접 흘러나오는 선에는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감각과 떨림이 있고, 느리고 비효율적인 이 과정을 통해서만 시간의 흔적이 온전히 축적된다고 믿습니다.

김아람 작가
나전칠기에서 모티프를 얻은 작품

김아람
수상 소감 생각지도 못한 수상에 놀랍고 감사했습니다. 공예트렌드페어는 이번이 세 번째 참여인데, 신진 작가관에는 그동안 계속 지원했지만 선정되지 않아 이번이 마지막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였어요. 처음으로 신진 작가관에 들어서, 이렇게 수상까지 하게 되어 더욱 뜻 깊게 느껴집니다.
작업 세계 기물 표면에 옻칠과 주석분말을 주로 사용해서 테이블웨어, 함, 오브제 등을 만듭니다. 평소 그림이나 가구 제작에도 관심이 있었고, 한 가지보다 여러 가지를 좋아하는 편입니다. 옻칠은 다루는 방식에 따라 그런 관심사를 골고루 충족시켜주는 재료였어요. 토분, 삼베, 자개 같은 재료와 다양한 기법으로 이미지를 표현할 수도 있고, 기능적으로도 다른 소재의 표면을 보완해줄 수 있거든요.
작품 소개 유물이나 자연이 가진 오래된 질감을 좋아해서, 오랜 시간 간직한 느낌을 자연스럽고 신비롭게 풀어내려고 합니다.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은 달을 모티프로 한 <달접시>인데, 찹쌀풀이나 토분을 섞은 옻칠과 삼베로 두께를 쌓아 형태를 만드는 <협저탈태칠기> 위에 주석분말과 옻칠로 마감해서 달이나 암석 표면 같은 질감을 냅니다. 이번에는 나전칠기 유물을 모티프로 해, 상상 속의 조각처럼 만든 나전칠기 오브제도 선보였어요.
공예가로서의 소신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제 손을 벗어난 작업이 누군가에게 전해질 때, 의심 없이 기쁜 마음으로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업을 하다 보면 심리적으로나 체력적으로 지치기 마련인데, 그래도 꾸준히 오래 작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해요. 이번 상이 스스로의 작업에 대한 의문을 조금 덜어준 것 같아 기쁘고, 2026년에는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신명진 작가
(Bubbling)시리즈

신명진
수상 소감 ‘앞으로 더 치열하게 작업하라’는 격려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이번 시리즈를 제작하며 공예에서 ‘기능’과 ‘조형’의 관계에 대해 깊이 고민했는데, 페어 기간에 관객들과 대화를 나누며 그 고민이 다소 좁은 시야에서 비롯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경계를 스스로 제한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작업과 형태를 탐구해나가고 싶습니다.
작업 세계 금속공예에서 망치 성형기법을 중심으로 기물과 조형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단단한 금속판이 점차 부드러운 곡면과 볼륨을 가진 형태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며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현재는 박사 과정에서 성형 기법을 활용한 황동 기물 제작 연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품 소개 공예트렌드페어에 출품한 〈Bubbling〉 시리즈의 제목은 작업을 준비하며 느끼던 벅찬 설렘의 감정에서 비롯되었어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 감정을 공감각적인 사물로 구현해보고 싶었습니다. 한 장의 황동 판재를 손과 망치의 감각으로 만지며 올록볼록한 양감을 만들어가는 것이 작업의 출발점이고,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았을 때 서로 다른 표정을 지닌 기물로 만들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공예가로서의 소신 제 작품이 공간, 사용자, 주변 사물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바랍니다. 작품이 단순히 바라보는 대상이 아니라, 특정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사용자의 몸과 시선의 움직임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감각적으로 경험되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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