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와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송다해 작가는 스스로를 ‘시각적 철학자(Visual Philosopher)’라고 부른다. 자연의 감각과 시간의 흐름을 회화로 번역하는 그녀의 작업은 단순한 선, 반복되는 스트로크, 물이 남기는 예측 불가한 흔적을 통해 인간과 자연의 내재적 연결을 드러낸다. 동양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크릴, 캔버스, 마 등의 서양 재료를 사용하며, 때로는 프레임을 제거하고 천을 드러내거나 밧줄, 섬유를 결합해 회화의 확장성을 실험한다. 블랙과 브라운을 중심으로 한 팔레트는 빛의 농도, 자연의 질감을 직관적으로 끌어올리는 도구이며, 작업 과정 전반에 흐르는 명상의 리듬은 그녀의 회화를 하나의 공간적, 신체적 경험으로 확장시킨다. 20년 가까운 캐나다 생활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온 그녀는, 이제 오롯이 자신의 작업에 더욱 깊이 몰입하는 시간을 시작하고 있다.




작업 세계를 규정하는 철학이 궁금합니다. 저는 이야기를 전달하는 회화보다 시간과 흔적을 시각적으로 남기는 회화에 더 가까워요.반복적인 스트로크나 물번짐처럼 예측할 수 없는 흔적들은 인간과 자연, 과거와 현재가 이어져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작업은 설명보다는 체험에 가까워요. 관람자가 자신의 감각을 작품 위에 얹을 수 있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 중요해요.
자연을 어떻게 회화의 언어로 전환하나요? 자연은 언어보다 앞선 감각이에요. 새, 나무, 달, 빛 같은 원초적인 형상이 제 작업의 기초가 되고, 나무가 자라듯 선을 긋거나 물이 흐르듯 붓이 움직이게 두면서 자연의 리듬을 따라가요. 결국 제 작업은 인간과 자연이 원래 같은 흐름 안에 있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과정 같아요.
동양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서양 재료를 사용한다고 하셨는데요. 아크릴과 캔버스, 마 등 서양 재료를 사용하지만, 프레임을 드러내거나 천의 결을 노출하는 방식은 동양적 미감과 닮아 있어요. 한국인이지만 대부분을 해외에서 보냈기 때문에 제 안에서 두 감각이 자연스럽게 섞여요. 의도라기보다 제 정체성이 작업에 그대로 드러나는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블랙과 브라운 중심의 팔레트는 어떤 이유에서 선택된 색인가요? 블랙은 빛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합해요. 빛의 방향이나 깊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색이죠. 브라운은 땅과 흙의 본질적인 색이라 자연의 감각을 선명하게 잡아줘요. 컬러 작업도 좋아하지만, 지금의 작업 방식에는 이 두 가지 색이 가장 솔직하게 맞아요.
작업 과정에서 ‘물’과 ‘우연성’을 중요한 요소로 언급하셨는데요. 물은 제가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는 재료라 우연이 개입돼요. 그 우연성과 제가 의도한 스트로크가 만나며 작품이 완성돼요. 큰 보드에 작은 붓으로 큰 스트로크를 만들기도 하고, 그 반복 과정 자체가 시간과 자연을 받아들이는 일이라 생각해요. 대작 하나를 제작하는 데 몇 개월에서 몇 년이 이어지기도 해요.
밧줄이나 천 같은 오브제적 요소는 어떤 의도인가요? 캔버스를 하나의 ‘피부’라고 생각해요. 천의 짜임과 조직을 드러내거나 밧줄, 섬유를 결합해 회화가 오브제나 조각, 혹은 공간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어요.


작업과 공간에서 ‘명상’이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작가님에게 명상이란 무엇인가요? 작업 전 과정이 명상처럼 이어져요. 대형 작업을 할 때는 10시간 넘게 같은 움직임을 반복함으로 신체의 리듬과 호흡이 굉장히 중요해요. 오랫동안 요가를 해온 경험이 자연스럽게 작업에 스며 있죠. 또 물이 번지는 방향을 받아들이고, 작은 붓으로 큰 스트로크를 만들며 우연성과 통제를 동시에 끌어안다 보면 어느 순간 머릿속이 완전히 조용해져요. 전시 공간도 그 흐름을 이어가요. 관람자가 바닥에 앉아 오래 머무르다 감정이 풀리는 순간이 생기기도 하는데, 그런 경험이 바로 제 작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20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뒤로하고 올여름 한국으로 들어왔어요. 그동안 수많은 협업과 프로젝트 중심의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오롯이 제 작업에만 집중하는 긴 호흡의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1년간 작업만 한다면 어떤 세계가 열릴까?’라는 질문이 결국 저를 서울로 데려왔고, 이 시간이 제 작업의 새로운 출발점이 되고 있어요. 앞으로는 더 큰 스케일의 회화, 몸 전체로 경험할 수 있는 작업, 천을 입히거나 구조물을 결합한 조형적 형태 등 회화의 확장 가능성을 계속 실험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