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총이라는 소재를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말총은 2017년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의 ‘지역공예마을육성사업’에 신진 작가로 참여하면서 처음 접했어요. 제주 지역 공예를 활용한 작업이 미션이었고, 저는 섬유 분야로 지원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제주 말총공예를 다루게 됐죠. 저는 중산간에서 자라 말을 보는 건 익숙했지만, 그것이 작업으로 이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만, 자연과 가까이 자란 환경이 말총처럼 천연 재료를 선택하는 데 밑바탕이 된 것 같아요.
말총의 매력은 무엇이었나요? 처음에는 ‘말총을 엮으면 입체가 된다’는 점에 매료됐어요. 아주 가는 털 한 올을 바늘로 엮어나가면 스스로 형태를 유지하는 입체가 된다는 점이 인상 깊었거든요. 사소한 것도 모이면 단단해질 수 있다는 메시지처럼 느껴졌고, 그 감각이 계속 작업하게 만든 힘이었던 것 같아요.
말총을 엮기 전 직접 나무틀을 만들어 구조를 세운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작업 방식에 변화가 있었다고요? 말총으로 입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틀이 필요해요. 주로 토기 형태의 나무틀을 만들어 작업했는데, 어느 순간 제가 말총을 너무 단정한 형태 안에 가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유로운 입체를 만들고 싶었는데, 오히려 반듯함에 집중하고 있었던 거죠. 그래서 요즘은 기존 나무틀에서 일부 곡선만 가져와 형태를 만들어보고 있어요.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수상이 작가로서의 큰 전환점이었을 것 같아요. 전시나 프로젝트가 늘어난 것도 있지만, 가장 큰 변화는 제 안의 확신이에요. 계속 작업해도 된다’는 자기 확신을 가지게 됐다는 점이요. 혼자 작업하다 보면 방향이 맞는지 확신하기 어려운데, 수상 이후에는 스스로를 의심하기보다 일단 해보자는 태도를 갖게 됐어요.
서울 디자인 마이애미에서는 조명 작품을 선보였죠. 빛과 만난 말총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말총은 빛을 만나면 투과되면서 마치 스스로 빛나는 것처럼 보여요. 머리카락을 햇빛에 비췄을 때처럼요. 이번 조명 작업은 그런 말총의 성질을 더 드러내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빛을 ‘받기만’ 하지 않는 재료라는 점이 매력적이었고, 저는 이런 말총의 특성을 보면서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을 투영하고 싶은가 봐요. ‘스스로’ 형태를 이루고 빛을 내는 그런 모습이요.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모습을 꿈꾸거든요.

추상적이고 유연한 형태의 실험도 눈에 띕니다. 그동안은 고대 토기에서 느낀 단단한 힘을 빌려 형태를 만들었다면, 요즘은 말총이 가진 유연한 선을 좀 더 살리고 싶어졌어요. 단단하면서도 유연한 형태를 고민하고 있죠. 이것이 확장인지 방황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전통 소재를 연구하고 확장해오면서 느낀 한국 공예 특유의 강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 경험에 한해서 말하자면, 한국 공예의 강점은 ‘융통성’인 것 같아요. 재료와 용도를 고정하지 않고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는 태도이지요. 제가 말총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우리나라 공예의 큰 특징이기도 하고요. 말총은 주로 남자 모자를 만든다고 알려져 있지만, 의외로 노리개 같은 액세서리나 여자 모자도 만들거든요. 작품이나 재료의 한계에 가두지 않고 융통성 있게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이 강점이자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음 단계의 작업은 무엇인가요? 최근에는 큰 작업을 하다가 다시 작고 섬세한 작업으로 돌아왔어요. 크기를 키우며 해방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저는 결국 작고 정교한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또 전에는 제가 보낸 시간의 정직함 같은 것들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시간 동안 행복하기 바라며 귀여운 동식물 무늬들을 엮어내고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