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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함을 통해 형태와 공간의 본질을 탐구한 사상가이자 예술가 도널드 저드. 재단의 아티스틱 디렉터이자 그의 아들인 플래빈 저드를 통해 도널드 저드의 사유를 한층 깊이 들여다봤다.

도널드 저드 퍼니처를 비롯해 드로잉, 판화 작업까지 총망라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2026년 4월 26일까지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진행된다. ©Judd Foundation/ SACK, Korea. Donald Judd Furniture ©Judd Foundation

20세기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인 도널드 저드 Donald Judd는 미니멀리즘의 기준을 재정의하며 전 세계 예술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작 그는 스스로를 ‘미니멀리스트’로 불리는 것을 불편해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용어가 자신의 작업을 지나치게 좁은 틀로 묶는다고 느꼈기 때문. 저드는 ‘형태와 공간’,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 일상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를 끊임없이 탐구한 인물이었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어선 3차원 입체 작업으로 현대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그의 급진적인 사고와 작품 세계는 20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작가와 건축가, 디자이너에게 큰 영감을 주었다. 그는 1970년대 초반 뉴욕과 텍사스의 마파 Marfa를 오가며 조각의 언어를 확장해 ‘가구’라는 일상의 오브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공간을 구성하는 또 하나의 예술적 언어이자 사고의 연장이었다. 그는 “가구는 반드시 사용성과 유용성을 지녀야 한다”고 말하며 침대와 책상, 의자, 선반 같은 오브제에 기능적 아름다움을 부여했다.

금속과 합판이 이루는 절묘한 조화가 인상적이다. ©Judd Foundation

그런 도널드 저드의 철학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이태원 현대카드 스토리지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 <Donald: Furniture>는 국내 최초로 그의 가구에 집중한 전시다. 나무, 금속, 합판으로 제작된 38점의 가구와 함께 드로잉, 판화가 한자리에 모여 저드가 평생 탐구한 ‘형태, 소재, 공간’의 논리를 새롭게 조명한다. 저드의 아들이자 저드 재단의 아티스틱 디렉터인 플래빈 저드 Flavin Judd가 아버지의 철학을 이어받아 전시를 직접 큐레이션했다. 도널드 저드가 실제로 생활하며 작업하던 공간의 감각을 따라 재현한 구성 역시 눈여겨봐야 한다. 회고전을 넘어, 오늘의 공간 속에서 그의 사유를 다시 마주하게 된 이번 전시에 대해 플래빈 저드와 이야기를 나눴다.

단조로운 형태가 주는 힘이 느껴지는 체어와 테이블 시리즈. ©Judd Foundation/ SACK, Korea. Donald Judd Furniture ©Judd Foundation

아버지의 예술적 언어를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으로서, 아버지가 평생 추구한 ‘형태’와 ‘공간’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아버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간과 그 공간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관심이 많았어요. 결국 그것은 ‘공간’과 ‘색’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다른 관심사들도 있었지만, 그에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가 사는 ‘공간’과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바로 그 두 가지였죠.

가구를 예술의 확장선으로 탐구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미학적으로는 그의 예술과 맞닿아 있지만, 가구는 예술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건축 역시 마찬가지죠. 세 영역은 같은 근원과 철학에서 출발했지만, 저드는 예술과 디자인의 경계를 엄격히 구분했습니다. 의자는 기능을 고려해야 하지만, 예술은 그 자체로 존재합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가구보다 음악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죠.

한국에서 첫 전시를 열게 된 이유는요? 최근 서울 타데우스 로팍 갤러리에서 그의 회화와 판화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 흐름을 이어, 가구와 디자인까지 함께 탐구하기에 적절한 기회라고 판단했습니다.

작은 스툴 크기부터 체어, 테이블까지 간결하면서도 실용성을 강조한 도널드 저드 퍼니처. ©Architecture Office, Judd Foundation, Marfa, Texas. Photo Matthew Millman ©Judd Foundation

이번 전시 공간을 구성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무엇인가요? 색이 명확히 드러나고 시선이 분산되지 않는, 최대한 정제된 공간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책과 벽면 텍스트는 계단 근처에 배치했고, 가구와 판화가 각자의 공간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도록 구성했습니다.

새로 제작된 가구들이 원작의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나요? 사실 ‘원작(Original)’이라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래된 작품과 새로 만든 작품이 있을 뿐이고, 모두 1980년대 이후부터 같은 방식으로 제작되어왔습니다. 프로토 타입과 실제 제작된 버전 사이에는 차이가 있지만, 그 시제품들은 마파에 보관되어 있고, 이번에 전시된 것은 도널드 저드가 직접 수정해 완성한 생산 버전입니다. 저드 재단은 그의 디자인대로 가구를 계속 제작해오고 있으며, 그것이 바로 ‘도널드 저드 퍼니처 Donald Judd Furniture’입니다.

‘가구는 반드시 기능적이어야 한다’는 저드의 철학을 오늘날에는 어떻게 해석하나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요즘 디자인 환경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가구를 디자인할 때 가능한 한 기능을 많이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사용하기 좋지 않은, 값비싼 장식품에 불과하니까요.

마파에 위치한 저드 재단의 아키텍처 오피스. 벽면에 붙인 설계 도면이 눈길을 끈다. ©Architecture Office, Judd Foundation, Marfa, Texas. Photo Matthew Millman ©Judd Foundation

전시를 준비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처음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모든 구성을 바꿨습니다. 종이 위에서 전시 동선을 설계하는 것은 어렵고, 저드의 가구는 공간에 매우 민감하기 때문에 실제로 배치해보기 전에는 완벽한 구성을 알 수 없어요. 직접 공간 안에서 가구를 배치해보았을 때, 그제서야 ‘이게 맞다’는 느낌이 들었죠. 이론보다 실천이 우선입니다.

저드 재단의 아티스틱 디렉터로서, 아버지의 철학을 어떻게 이어가고 있나요? 저는 다소 ‘구식’인 사람이라, 아버지가 원했을 일을 그대로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게 제겐 아주 단순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있죠. 도널드 저드는 늘 자신이 아는 것에 집중하고, 직접 만들어보며, 단순하고 진실되게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태도는 지금의 유행과 상관없이 여전히 유효한 기준이라고 생각합니다.

도널드 저드가 오늘의 세상을 본다면, 어떤 말을 남겼을 것 같나요? “대체 너희는 무얼 한 거냐.”

컬러 철제 소재로 만든 수납 가구. ©Architecture Studio, Judd Foundation, Marfa, Texas. Photo Matthew Millman ©Judd Foundation
도널드 저드의 아들이자 저드 재단의 아티스틱 디렉터 플래빈 저드. ©Justin Ch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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