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류보다 앞서 사물의 가치를 포착해온 사진가 구본창. 아직 도래하지 않은 시선을 기다려온 사물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신라 금관 작업으로 이어졌고, 전시 <사진으로 만나는 신라 금관>을 통해 그 찬란함은 시간을 건너 우리에게 도달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가 신라 금관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마 트럼프 대통령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보다 훨씬 전인 2010년 중반부터 이를 사진으로 남기길 염원하셨다고요. <백자>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야 할 것 같아요. 우리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깊어진 게 그때부터였거든요. 작업 초창기만 해도 조선 백자의 인기가 크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내가 사진으로 이를 담기 시작하면서 도예가는 물론 일반 가정에서도 백자를 장식용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외국에서도 우리 백자가 소개되는 일이 많아지니 ‘작가로서 좋은 일을 했구나’ 하는 자긍심도 들었죠.우리가 미처 몰랐던 조선시대의 아름다움에 대해 많은 사람이 느끼게 된 거잖아요. 금관 작업의 시작점도 비슷해요. 2015년 우연히 호주의 금광을 보며 황금에 대한 관심이 생겨, 그 이듬해엔 페루 황금박물관에 가서 고대 잉카의 황금 유물들을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 생각이 신라 금관에까지 미치게 된 거지요. 우리나라에 이렇게 아름다운 유물이 있는데, 사진이라고는 교과서에 나오는 빨간 벨벳 위 이미지가 전부였으니까요. 그때부터 박물관을 꾸준히 설득하기 시작했어요. 박물관 관장이 바뀔 때마다 다시 제안하고, 또 제안했죠.
촬영 허가를 받기 위한 국립박물관 설득에만 7년이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결국 박물관 측 승낙을 받아내게 되셨네요. 사실 박물관 측에서는 번거로운 일일 수밖에 없어요. 그냥 작품도 아니고 우리나라 국보잖아요. 그러다 전 국립경주박물관장인 함순섭 관장과 뜻이 맞았죠. 우리 문화재를 새롭게 조명하려는 시도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이었거든요. 신라 금관의 촬영을 허가받기 전에는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백제 금동관을 촬영했는데, 아마 그걸 긍정적으로 봐준 것 같아요. 마침 천마총 발굴 50주년이 다가오고 있기도 했고요. 금관을 전시장에서 꺼낼 땐 큐레이터를 포함한 모두가 긴장했죠. 카탈로그를 위한 촬영이면 몰라도, 작가의 작업을 위해 금관을 꺼내는 건 그들 입장에서도 처음이었으니까요.
그만큼 작업 과정도 까다로웠을 것 같습니다. 저도 생전 처음 해보는 작업이니, 준비를 많이 했죠. 박물관에서 미니어처 금관을 50만원 주고 사서, 조명이랑 배경을 어떻게 시도하면 좋을지 미리 연구했어요. 금관 자체가 찍기 어려운 사물이기도 해요. 2025 APEC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금관을 선물할 때도 빨간 벨벳에 얹어서 전해줬잖아요, 그 이유는 금관 양쪽에 ‘드리개’라고 귀고리처럼 내려오는 게 있어서 그래요. 그걸 촬영하려면 어딘가에 얹어서 찍어야 하는데, 저는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특히 색감의 대비를 강조하기 위해 어두운 배경 대신 황금색 배경을 택하신 점은 실험적인 시도로 느껴집니다. 에세이집 <공명의 시간을 담다>에서 “창의성이란 결국 남들과 다르게 해석하려는 노력”이라고 한 말씀이 떠올랐어요. 페루에서 <황금> 연작 작업을 할 때도 황금색 배경지를 썼어요. 남들과 다른, 새로운 해석을 해보고 싶었거든요. 카탈로그에 항상 나오는 어둡거나 빨간 배경과는 다른 방식을 고민하다가 황금색을 떠올리게 된 거죠. 배경지만 수십 가지를 구매했어요. 이탈리아, 프랑스, 일본의 종이를 비교하다, 결국 페루에서 작업했던 종이를 찾기 위해 페루 여행을 떠난 지인에게 문구점 위치를 알려주며 부탁하기도 했지. 택배로 받다보니 구겨져서 왔지만요. 결국 가까운 데서 구해야되겠다 싶어 우리나라에서 수입한 종이를 비교해가며, 가장 적합한 질감과 빛깔 지닌 것을 골랐습니다. 박물관 측에서도 황금 배경지에 두니 찬란함이 더 극대화된다고 좋아했는데, 잘 된 거죠.




<백자>와 <황금> 연작 속 금관 작품들은 우리 고유의 유산을 촬영했다는 점에서 유사하지만, 그 본질은 전혀 다른 대척점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자가 백자에서 비롯된 ‘무욕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작품이라면, 후자는 ‘금’이라는 물질의 화려함에 주목하죠. 조선시대엔 차분한 선비 느낌의 멋이 있다면, 신라시대의 것엔 고귀하고 화려한 멋이 있죠. 겉으로 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물이 지닌 아름다움, 그리고 내가 보여주고 싶은 아름다움은 결국 내가 만들어내는 거예요. 사람들이 쉽게 느끼지 못하는 매력을 끄집어내려고 애를 쓰는 거지요. 신라 금관의 경우 당시엔 왕에게 최고의 아름다움과 찬란함을 바쳤을 거 아니에요. 그러한 찬란함을 다시 살리려고 노력하면서도, 1500년을 땅속에 묻혔다 나온 유물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주변을 어둡게 연출한 부분도 있어요.
<백자> 연작이 우리 백자와 달항아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이끄는 일종의 촉매 역할을 했다면, 이번 금관 사진들은 오래전부터 준비해오신 작업물이 시기적으로 다시금 큰 관심을 받는 사례인 것 같습니다. 이 둘 모두 결국 트렌드와 시류, 사람들의 마음이 동하는 사물을 미리 알아보고 포착하는 선생님의 시각에서 출발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우리 유물을 책이나 도록으로만 보다가, 큰 사진으로 보게 되니 느낌이 또 다르죠? 실제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른 힘이 있기도 하고요. 이 사진들이 천마총 발굴 50주년 특별전에서 끝나지 않고, 다시 전시장에 걸려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게 보람이죠. 이번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사진으로 만나는 신라 금관>전은 2025 APEC 정상회의를 기념해 열린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을 위해 황남대총이 자리를 비운 사이, 그 빈 공간에서 금관을 만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거예요. 한국의 달항아리와 백자가 제 작업을 통해 다시금 조명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이런 금관 같은 신라 문화도 몇 년 뒤엔 또 다르게 보여지지 않을까 싶네요. 얼마 전엔 가수 제니가 뮤직비디오(‘ZEN’)에 출연해 신라 금관에서 모티프를 얻은 의상을 입은 게 화제가 됐잖아요, 그게 제가 촬영한 천마총 금제 관식과 모양이 똑같더라고요. ‘전시를 꾸준히 하고, 미디어에도 자주 비치니까 누군가에게 자극을 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재미있었죠. 그 유명한 친구가 우리 ‘이게 세련된 한국미(美)다’라고 세계에 말해주니 얼마나 좋아요.
여러 피사체를 담으며 방대한 작업을 이어오신 선생님 작업 세계를 한 단어로 표현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중에는 ‘시간을 축적한 사물’도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모던한 디자인의, 새롭게 만든 물건들은 대량으로 생산되어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고 느껴요. 저에게는 대체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매력적이에요. ‘대체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스토리가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 스토리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고, 시간이 축적되며 쌓이는 주름과 스크래치가 만들어가는 것이고요.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이나 우리 인생 자체에 대해서 느끼는 바가 점점 더 많아지는 것 같아요. 젊을 때는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많이 집중했다면, 그 다음 시기가 오면 보이지 않던 것을 조금 더 보게 되고, 그렇게 한 단계씩 오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우리나라 문화재 중 목기도 한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목재 가구 중에도 아름다운 게 참 많은데, 다들 이탈리아 가구만 좋아하잖아요. 목기는 사실 찍기가 어려운 게, 넓은 공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서 적절한 한옥을 찾고, 이를 믹스매치 해야 된다는 숙제가 있어서 쉽게 실현하지 못하고 있지만 항상 생각하고 있긴 합니다. 또 언젠가 기회가 올 겁니다.
2024년 초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대규모 회고전 이름은 <구본창의 항해>였죠. 전시가 막을 내린 지 벌써 2년여 정도가 지난 지금, 작가님의 ‘항해’는 여전히 순항 중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 지금까지는 순항이죠. 특히 최근 몇 년 동안은 좋은 일 또는 기회가 많이 생겼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이렇게 나한테 온 많은 기회에 대한 감사는 해도 해도 끝이 없죠. 독일로 유학을 떠나 사진을 공부하고, 재능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가’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고 있었으니까요. 사진을 배우고 나서 친구와 교수들에게 조금씩 인정받기 시작하며 내가 할 수 있는 걸 깨닫게 된 그때만 해도 이미 충분히 행복하다는 걸 느꼈는데, 그 이후로도 30년, 40년을 끊임없이 노력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에 대해 너무 감사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