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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이라는 재료를 매개로 매 순간 다른 질문을 던져온 작가 신상호의 궤적을 되짚어보는 시간.

신상호, <아프리카의 꿈: 토템>, 2000 – 2002, 혼합토, 210 × 70 × 60 × (12)cm, 120 × 45 × 30 × (13)cm, 작가 소장.
신상호, <아프리카의 꿈: 우리는 아프리카>, 2010, 혼합토, 210 × 110 × 82cm, 작가 소장.

신상호 작가의 작업 형식은 끊임없이 변해왔지만, 그 방향은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다. 흙을 다뤄온 60여 년의 시간에 그는 한 번도 같은 방식으로 머물러 있지 않았다. 전통 도자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곧 본래 기능을 벗어나 조각이 되었고, 회화가 되었으며, 건축의 표면으로까지 확장됐다. 로에베가 후원하고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리는 전시는 <신상호: 무한변주> 60여 년에 걸쳐 이어진 이 변화의 궤적을 ‘완성’이 아닌 ‘지속’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전시 제목처럼, 그의 작업은 하나의 양식으로 수렴되는 대신 끊임없이 변주되는 쪽을 택하며 스스로의 경계를 갱신해왔다.

<신상호: 무한변주> 전시 전경.
신상호, <앞선 꿈: 인간>, 1992 -1993, 혼합토, 상감, 50 × 40 × 30cm, 작가 소장.

작가에게 흙은 언제나 답이 아니라 질문에 가까웠다. 불을 통과하며 굳어지는 물질이지만, 결코 그 단단함에 안주할 수 없는 존재. 작업의 형태가 안정되는 순간마다 그는 흙을 통해 다른 가능성을 모색했고, 재료의 물성적 한계를 조금씩 확장해나갔다. 이러한 태도는 1980년대 후반 ‘도자 조각’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통해 도자를 조각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시도로 이어졌고, 이후 설치와 건축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며 미술과 건축의 경계를 가로질렀다. 2020년대에 이르러서 그는 오랜 시간 탐구해온 흙을 다시 평면으로 호출하며, 이를 전복적으로 사유한 ‘도자 회화’를 선보인다. 하나의 작업은 완성된 결과인 동시에 그의 예술 세계가 축적되어온 시간을 품고 있는 것이다.

<신상호: 무한변주> 전시 전경.

그의 작업에서 도자의 경계가 본격적으로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다. ‘도조(陶彫)’라는 개념 아래 전개된 작업들은 기물로서의 도자를 해체하며, 흙을 조형적 구조로 다루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신상호는 이 시기 도자를 기물의 형식에서 분리해 독립적인 조형 언어로 다루기 시작했고, 그 흐름은 흙의 원초적 생명력과 구조적 힘을 형상화한 <아프리카의 꿈> 연작으로 구체화된다. 2000년대 이후 전개된 <구운 그림> 작업은 이러한 조형적 탐구를 또 다른 차원으로 확장한다. 도자 타일을 단위로 구성한 이 작업들은 회화의 화면과 건축의 표면 사이를 가로지르며, 흙을 공간과 결합된 재료로 다룬다.

신상호, <표면, 그 너머>, 2010년대, 혼합토, 철제 창문, 118 × 81.5 × 6.5cm, 작가 소장.

전시의 후반부를 이루는 도자 회화 작업은 다시 평면으로 시선을 돌린다. ‘흙으로 그린다’는 발상에서 출발한 <생명수>와 <묵시록> 연작은 흙의 유기적인 패턴과 중첩된 색의 층위를 통해 도자의 물질적 깊이를 평면 회화로 구성한다. 금속 패널 위에 흙판을 부착하고 색의 층위를 쌓아올린 이 작업들은 회화적 형식을 취하면서도, 제작 방식은 여전히 도자에 기반한다. 이는 1980년대 도조 작업 이후 꾸준히 이어져온 신상호의 오랜 예술적 탐구가 도달한 하나의 지점을 보여준다.
<신상호: 무한변주>는 흙이라는 재료가 작가의 지속적인 탐구를 거치며 어떻게 서로 다른 형식과 역할을 획득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형식은 변화해왔지만, 재료를 다루는 방식에 대한 신상호의 집요한 태도는 일관되게 유지되어왔고, 그 선택의 축적은 도자가 동시대 미술의 맥락 안에서 어떤 조형적 가능성을 가질 수 있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전시는 2026년 3월 29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열린다.

자료제공: 국립현대미술관, 로에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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