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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를 출발점으로 조각, 회화, 건축에 이르기까지 확장해온 신상호 작가의 60여 년 작업 세계를 응축한 전시가 열리고 있다. 경계를 넘나든 그의 실험은 오늘날 리빙과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2016년 신상호 스튜디오에서 열린 <더 컨테이너>전에 전시된 작품. 도자 가구는 관객이 조각 작품의 주변을 거니는 데서 머물지 않고, 신체가 닿고 예술이 삶의 깊은 곳으로 침투할 수 있는 여지를 실험한 작업이다.
<묵시록-황(黃)>, <묵시록-백(白)>, <묵시록-녹(綠)>, 2023, 혼합토, 각 97 × 162 × 3cm. 흙으로 구운 그림이라는 콘셉트에서 출발한 최신 연작 <묵시록> 작품이다. 전통 도자에서 조각, 회화, 건축의 경계를 넘나드는 흙의 예술가 신상호 작가.

신상호 작가의 개인전 신상호: 무한변주의 전시장을 걷다보면 재료와 장르의 이름이 무기력해진다. 출발점은 흙이지만 결과물은 더 이상 ‘도예’라는 단어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작가는 “흙은 입체든 평면이든 어떤 형태도 만들 수 있고, 불에 구웠을 때 강철만큼 단단해질 수 있는 특이한 재료다”라고 말한다. 1960년대 이천에서 처음 흙을 만났을 때의 매혹은 도자에서 조형으로, 조형에서 회화와 타일, 그리고 건축과 리빙의 세계로 이어졌다. 이번 전시는 그 확장된 스펙트럼을 한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대규모 회고전이다. “이천의 장인들을 섭외해 협업하면서 도방을 꾸렸고, 1981년 모교인 홍익대에 임용되어 1984년 미국 교환교수로 가면서 도자를 대하는 시선이 본격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선 도자를 공예가 아닌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취급했는데 ‘흙으로는 그릇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든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유를 느꼈습니다. 일종의 동기를 얻었다랄까요?” 그는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흙은 더 이상 실용적 그릇을 만드는 재료가 아닌, 관람 경험과 공간을 설계하는 매체가 되었다. 확장은 늘 기술을 동반했다. 흙이 어떤 흙이어야 하는지, 어느 온도의 불을 통과해야 원하는 색과 형태를 얻을 수 있는지, 설치 시 어떤 하중이룬다. 이 기술적 완성은 스케일뿐 아니라 장르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기반이었고, 회고전에도 이러한 태도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업이 확장된 건 했던 것을 또 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이기도 합니다. 이를 아주 강박적으로 싫어하죠. 그러다 보니 표현하고 싶은 새로운 것이 항상 생기고, 그것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또 만들고, 완성해야 했습니다.”

전통 도자에서 도조로, 도조에서 설치미술로, 또 건축을 건드리며 종횡무진한 그의 끝없는 궤적을 거닐며 특히 주목한 부분은 바로 이 확장이 ‘리빙’ 영역과 본격적으로 만나는 지점이었다. 특히 타일과 가구는 그가 도예를 생활과 공간의 언어로 다시 사고한 결과물이다. 작가는 타일을 ‘구운 그림’이라 부른다. “‘구운 그림을 건축에 접목하면 어떨까’ 상상한 건, 흙은 고갈되지 않을 자원이자 인류 초기부터 우리 삶 속에 널리, 그리고 긴밀히 쓰여온 재료이기 때문입니다. 타일은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내구성뿐 아니라 방한, 방온, 방습 등의 효과도 탁월하고, 평평한 면을 캔버스로 삼아 미적 표현도 가능합니다.” 그는 기존 시공 방식에서 벗어난 탈부착 시스템을 고안해 실내에서는 회화적 표현으로, 건물 외벽에서는 건축적 재료로 기능하게 했다. 계절이나 취향에 따라 건물의 표정을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은 도예가 건축과 만났을 때 생기는 흥미로 운 지점이다. 가구 작업 역시 수집과 재료가 결합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마모되거나 성치 않은 부분을 도자로 메워 금속, 목재, 도자가 결합된 가구는 리사이클링이라기보다 재탄생에 가깝고, 작품과 사용의 경계를 흔든다. 그는 “예술적 리빙이든 순수한 작품이든 과정과 결과가 질문을 유발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여기서 질문은 온전히 관객의 몫이다. 이 가구는 ‘어떻게 쓰여야 하는가’, 혹은 ‘쓰여야 하는가’와 같이 기능과 조형의 비중이 모호해질 때, 미술은 생활에 침투하고 생활은 전시가 된다. 색은 작가에게 있어 또 다른 실험의 영역이다. 그는 고온 소성에서 다양한 색을 구현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테스트를 거쳤다. “원하는 발색을 얻기 위해 어떤 색은 여러 차례 소성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노하우를 터득한 뒤에는 색을 쓰는 데 주저할 필요가 없었습니2다.” 색은 재료이자 언어이자 기술이며, 때로는 리빙에서 감각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대형 테이블과 수납장, 사이드 테이블, 중형 테이블 작업은 <더 컨테이너>전에서 선보인 도자 가구 시리즈다. 마모된 부분들을 금속과 도자로 메워 재창조해낸 것.

<사물의 추이: 표면, 그 너머>, 2014, 혼합매체. 금호미술관 초대전 출품작이다.

도예가 리빙과 만나는 방식은 아직 초입에 불과하다. 이 두 영역을 조합하며 새롭게 생기는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자, 작가는 무궁무진하다며 입을 열었다. “비단 도예뿐 아니라, 시멘트, 아크릴, 유리 같은 재료로 리빙 영역에서 예술성과 실용을 겸비한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흙 역시 내구성이 뛰어나고 형태의 스펙트럼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는 재료이기 때문에 크기나 형식, 장르의 구애를 받지 않은 좀 더 자유로운 시도가 이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만든 가구는 시작에 불과하죠.” 3월 리뉴얼 오픈을 앞둔 양주 작업실 역시 이러한 실험이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장소다. 지금까지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줬다면, 이제 좀 더 다듬어진 공간으로 개편할 예정. 전시도 기획하고 있다. “회고전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작품이 수두룩해요. 사람들이 ‘회고전에 이렇게 많은 작품이 나왔으니 작업장은 텅 빈 것이 아니냐’고 묻는데, 작업장은 작품 나간 게 티도 안 날 정도입니다.(웃음)” 도예가 리빙에 스며드는 방식은 실용의 언어만으로 설명되기 어렵다. 때로는 작품이 가구가 되고 가구가 오브제가 되며, 건축이 회화가 되기도 한다. 그의 작업은 이런 전환의 순간을 하나씩 보여준다. 로에베가 후원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전 신상호: 무한변주은 3월 29일에 막을 내리지만, 신상호 작가의 도자와 공간에 대한 실험은 작업실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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