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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파리 노르 빌팽트 전시장에서 2026 메종앤오브제가 열렸다. ‘Past Reveals Future’를 테마로 전통과 혁신을 잇는 디자인 트렌드를 선보였다.

디자이너 루디 기네아르가 연출한 미래 호텔 객실.

한때 메종앤오브제는 트렌드를 ‘선언’하는 무대였다. 그러나 이제 급진적인 미학을 제시하기보다, 오늘의 디자인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차분히 드러낸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실제 계약이 이루어지고, 바이어는 소재를 만져보며 가격을 계산하고, 브랜드는 유통 전략을 설명한다. 더 이상 ‘미래의 예언자’라기보다, 현재의 구조를 가장 정확하게 가시화하는 플랫폼에 가깝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메종앤오브제의 진짜 역할인지도 모른다. 올해 메종앤오브제에는 543개 신규 전시업체를 포함해 총 2294개 브랜드가 참여했으며, 148개국이 함께했다. 전체를 아우르는 테마는 ‘Past Reveals Future’로, 과거의 지혜와 장인정신을 현재로 소환해 미래의 디자인 언어로 연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전시는 7개 홀 안에 시그니처 & 프로젝트, 장식 & 디자인, 파인 크래프트, 향기 & 웰니스, 선물 & 놀이, 패션 & 액세서리 등 6개 핵심 섹터로 구성됐다.

큐레이터 토마스 하르만이 구성한<Curatio- The Art of Symbiosis> 부스.

올해의 테마를 집약한 전시 공간

이번 전시는 네 개의 핵심 섹션으로 구성됐다. <What’s New?>, <Curatio–The Art of Symbiosis>, <Manufactures d’Excellence Village>, <Outdoor Living + Eco-Materials Corner>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What’s New?>. 세 개의 영역으로 나뉘어 미래 트렌드를 해석했다. 엘리자베스 르리슈가 연출한 <What’s New? In Décor>는 시대별 미적 요소를 대화처럼 배치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했다. 복각이 아닌 재해석, 장식보다 물성에 집중한 구성이 인상적이었다. 루디 기네아르의 <What’s New? In Hospitality>는 과거 감성과 미래적 감각이 교차하는 시네마틱한 호텔 공간을 제안했고, 프랑수아 델클로의 <What’s New? In Retail>은 ‘Paleo-futuristic’ 접근으로 물리 공간과 디지털 리테일의 미래를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Curatio–The Art of Symbiosis>는 서로 다른 오브제의 공존을 통해 형태와 재료, 감성의 관계성을 보여준 공간이다. <Manufactures d’Excellence Village>는 프랑스 전통 장인의 기술과 현대 제작 방식이 만나는 장면을 조명했고, <Outdoor Living + Eco-Materials Corner>는 자연, 지속 가능성, 책임 있는 제작을 중심으로 실내외 경계를 확장했다. 결국 이번 전시는 디자인을 단절이 아닌 ‘연속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과거의 축적된 기술과 감각을 미래로 연결하는 방식을 제안했다.

이번 전시의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낸 바네사 마트라니의 세라믹 오브제.

과거를 복각하지 않는 방법

엘리자베스 르리슈가 큐레이션한 〈What’s New? In Décor〉 공간에서 이번 테마는 가장 선명하게 드러났다. 나무, 유리, 섬유, 점토 같은 재료들이 촉각적으로 배치된 이 공간은 장식보다 물성에 집중한다. 아르데코적 기하학, 1970년대의 곡선, 포스트모던의 유머가 곳곳에서 감지되지만 그대로 재현되지는 않는다. 크기가 달라지고, 표면이 변형되며, 맥락이 재설정된다. 과거는 인용되지만 복각되지 않는다. ‘Past Reveals Future’는 향수가 아니라 재해석의 태도에 대한 선언에 가깝다. 이번 전시가 던진 메시지도 명확하다. 디자인은 단절이 아니라 연속선 위에 놓여 있다는 것. 새로운 형식은 무(無)에서 탄생하지 않는다. 축적된 경험과 기술, 재료에 스며든 시간의 기억이 겹겹이 쌓이며 다음 장면을 만들어낸다.

원초적 미래를 이야기하는 전시, 프랑수아 델클로가 디자인한 공간.

엘리자베스 르뤼슈가 제안한 네오- 클래시크 공간.

올해의 디자이너, 해리 누리예프

메종앤오브제가 선정한 2026년 올해의 디자이너는 해리 누리예프 Harry Nuriev 다. 크로스비 스튜디오 Crosby Studios의 창립자인 그는 건축, 인테리어, 가구, 패션을 넘나드는 작업을 통해 동시대 디자인의 경계를 확장해왔다. 누리예프의 작업은 일상 오브제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트랜스포메이션’ 미학으로 요약된다. 낡은 가구나 의류, 산업 자재를 새로운 오브제로 전환하며 소비 문화와 디자인 가치에 질문을 던진다. 옷을 가구로 바꾼 발렌시아가 프로젝트는 그 상징적인 사례다. 메종앤오브제가 그를 올해의 디자이너로 지목한 것은 단순한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다. 전통적 장인정신과 현대 산업, 패션과 인테리어, 오브제와 설치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그의 태도는 올해 페어의 테마 ‘Past Reveals Future’ 의 과거의 지혜를 현재로 호출해 미래의 언어로 번역하는 흐름과 정확히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누리예프는 오브제의 물질성과 사용의 흔적을 그대로 드러내며, 디자인이 완결된 형태가 아니라 끊임없이 전환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그는 새로운 미학을 선언하기보다, 동시대 디자인이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내는 디자이너다. 어쩌면 이것이 지금 메종앤오브제가 말하는 ‘현재의 구조’와 가장 가까운 태도일 것이다.

관람객들에게 포토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해리 누리예프가 연출한 공간.
독일 디자이너 토마스 하르만의 조명.
공업적인 구조와 감성적인 빛의 만남.

종이 점토를 활용한 파올라 파로네토의 세라믹 오브제들.
섬유 공예와 유머를 결합한 텍스타일 브랜드 키아라 카탈라노 백.

전통 vs 위트, 시대의 전략

‘Past Reveals Future’ 테마 아래에서는 전통 장인 기술과 디지털 제작 방식의 결합, 원재료의 물성을 강조한 재료 중심 디자인이 강하게 부상했다. 목재, 유리, 금속, 섬유의 감각을 최대한 드러낸 오브제와 가구, 그리고 기능과 형태, 맥락을 전환한 진화된 업사이클링 작업이 새로운 조형 언어를 형성했다. 부드럽게 흐르는 유기적 형태와 색채 실험 역시 이러한 흐름을 뒷받침했다. 한편 전시장 다른 축에서는 전혀 다른 감정의 언어가 감지됐다. 아웃도어와 기프트 섹터를 중심으로 밝은 색채와 캐릭터적 실루엣, 유머러스한 디테일을 지닌 귀엽고 위트 있는 오브제가 존재감을 드러냈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사람들은 작고 안전한 감정에 끌린다. 이때 귀여움은 단순히 취향을 넘어 감정을 빠르게 환기시키는 장치가 된다. 부담 없이 접근 가능하고, SNS 환경에서 확산되기 쉽기 때문이다. 결국 올해 메종앤오브제에서 읽힌 두 흐름인 장인적 물성과 조형 실험, 그리고 귀여움의 감정 전략은 상반된 방향처럼 보이지만, 모두 현재 디자인 산업이 작동하는 방식을 드러낸다. 하나는 시간과 물성의 깊이를 통해 가치를 구축하고, 또 다른 하나는 즉각적인 공감과 확산을 통해 시장과 연결된다. 미학과 산업, 감정과 구조가 교차하는 지점이다.

해양 생물을 캐릭터처럼 재해석한 쿠션은 MX Home 제품.
태국 기반 브랜드 앙고의 조명.
스웨덴 아웃도어 브랜드 가든 글로리의 화이트 라이온 팟 스몰과 파라솔.
인도 뉴델리의 자수 주얼리 스튜디오 트로밸로어의 오브제.
일본 키타자와의 유니크한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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