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선택이다. 감각의 미세한 떨림을 끝까지 붙드는 추상, 그리고 세 작가가 이를 통해 각자의 리듬을 만들어가는 방식.

눈이 따라가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게 되는 화면이 있다. 의미를 해석하기도 전에 직관으로 먼저 와닿는 추상이 그렇다. 추상은 종종 이해 불가능한 예술로 오해받기도 하지만, 머리보다 감각으로 읽는 행위야말로 이를 이해하는 방식이자, 예술이 관객에게 닿는 방식이다. 리만머핀 서울에서 열리는 <묵음의 리듬>은 이 추상이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궤적을 조망하는 전시다. 전시는 추상이라는 장르를 설명하는 대신 추상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지 않기로’ 선택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한국 여성 중진 작가 성낙희, 이소정, 한진이 각자의 속도와 물성으로 구축해온 추상은 이번 전시에서 하나의 공간 안에 공존하며, 서로 다른 결의 운율을 겹쳐 새로운 진폭을 만든다.

성낙희의 회화는 연주에 가깝다. 즉흥을 가장한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축적된 리듬 감각 위 구조와 형태가 교차하고, 색의 이동이 화면의 박자를 만드는 식이다. 신작 은 이러한 운율을 풍경처럼 번지게 한 작업이다. 기존의 조형적 리듬과 겹, 그라데이션을 유지하면서도 꽃잎과 나무 같은 자연의 모티프를 더 선명히 끌어들여, 화면을 몽환적인 풍경으로 완결해냈다. 추상이 ‘대상 없는 회화’가 아니라, 오히려 ‘대상의 감각을 남기는 방식’이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몸으로 납득하게 한다.
반면 이소정의 작업은 재료와 기법을 탐구하며 발생하는 마찰을 화면으로 한껏 끌어안는 듯하다. 전통 매체의 역사와 물성을 끈질기게 되묻는 그는, 한지와 먹이라는 오래된 재료를 출발점으로 삼되 그 전통에 머무르지 않는다. 생성, 단절, 연결, 중첩의 반복을 통해 화면 내부에 자연스러운 리듬을 발생시키는 것이 작가의 방법론이다. 그 사이 생성된 균형은 회화가 가장 회화답게 살아나는 지점, 즉 조형적인 실험과 재료와 형식의 경계를 확장하는 추진력이 된다.


한진의 회화는 가장 음향적으로 읽힌다. 그는 대상이 품고 있는 이미지와 소리, 인공과 자연의 경계 같은 감각의 접점을 집요한 붓질의 행위로 기록해왔다. 미로처럼 촘촘한 작가의 붓질은 장식적 제스처라기보다는 지각의 불완전함을 끝까지 추적하는 방법으로 읽힌다. 특히 이번 전시에 소개된 첫 사운드 작업 은, 작가의 추상이 시각적 감각을 넘어 오감을 확장하는 방식으로 나아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한 획이 한 음처럼 변환되는 순간은 회화가 만들어온 진동을 공간 전체의 경험으로 이동시킨다.
전시가 말하는 ‘묵음’은 핸디캡이 아니라 전략이다. 소리를 줄여 감각의 해상도를 높이는 방식, 즉 회화가 스스로의 평면적 한계를 넘어 공간 안에서 서로의 진동을 교환하는 상태를 시험한다는 점에서 전시의 뚜렷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소리가 사라질 때 비로소 더 또렷해지는 감각이 있고, 서로 다른 추상이 한 공간에 놓일 때 작품은 서로의 진동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진폭으로 공명한다. 전시는 리만머핀 서울에서 2월 28일까지 진행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