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맞닿는 순간의 변이, 그 찰나를 가구의 언어로 번역하는 김병섭 작가와의 대화.


현재 갤러리 느와에서 진행하고 있는 개인전 제목은 <Metamorphosis>다. ‘변형’ 혹은 ‘탈피’라는 뜻인데, 이를 통해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했나?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명에 대해 고민하던 중, ‘돌연변이’라는 키워드를 제안하게 됐다. 내 작품이 돌연변이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다. 지구를 구성해온 생명체 중엔 공룡처럼 어느 순간 멸종하는 종이 있는 반면, 오랜 기간 살아남은 종도 있지 않은가. 한 생명체가 오늘날까지 살아남으려면 발톱이나 뿌리가 자라나는 등의 돌연변이 같은 특색은 갖춰야 하는 것처럼, 내 가구들도 그와 비슷한 맥락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면에서 돌연변이 같다고 느낀 건가? 작품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Narrative001>은 일반적인 의자보다 등받이가 유난히 긴데, 이는 자개장 문짝으로 쓰이던 부재를 그대로 떼어와 활용했기 때문이다. 는 징을 걸어두던 고리를 활용해 등받이로 만든 작업이다. 본래의 쓰임을 잃은 고리가 오늘날의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색하더라도 낯선 옷을 입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를 통해서는, 과거 마을을 수호하던 장승에 쓰임새를 주고 싶었다. 장승은 관습적으로 두 기둥이 함께 설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고 생각해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기 바랐고, 그 사이에 금속 선반을 끼워 넣어 가구로 전환했다. 과거의 오브제가 오늘날을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러한 돌연변이적 변이나 탈피를 거쳐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각 작품엔 ‘Narrative’라는 이름이 붙기도 하는데. 내 작업은 자개나 용 머리처럼 이미 누군가 아름답게 작업해둔 오브제의 일부를 가져왔을 뿐이고, 이를 새롭게 디자인했다기보다는 그 쓰임새를 바꿔 다시 놓은 쪽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이 결과물을 만들어내기까지 어떤 선택과 과정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 서사가 관객에게도 전해지기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전통적인 오브제가 스테인리스 스틸 같은 현대적 소재와 결합해 대비를 이루고, 낯선 장면을 연출한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내러티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해외에서 전시하며 많은 작가가 출신 학교와 고향 등, 자신의 배경을 통해 디자인 헤리티지를 자연스럽게 설명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을 보고 30년간 서울에서만 살아온 내가 이러한 시선을 갖게 된 이유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수백 년간 보존되어온 경복궁 뒤편 높은 빌딩들이 스카이라인을 만들고, 고궁과 유리 빌딩이 한 프레임 안에 병치되는 풍경, 최신식 지하철 안에서 국악이 흘러나오는 순간, 혹은 할머니 집 자개장 위에 최신형 TV가 아무렇지 않게 올라가 있는 장면…. 이처럼 다른 시간대에서 기능하던 것들이 시간적 텀을 두고 이질적인 방식으로 맞닿아 있는 모습이 서울에는 유난히 많다. 나는 그런 장면을 계속 보며 살아왔으니 이러한 대비에 자연스럽게 끌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품마다 서로 다른 서사를 지녔지만, 이를 관통하는 한 가지 테마가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실 보는 이의 해석에 따라 작품은 또 다른 서사를 얻게 되기도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작품에 ‘Narrative’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있다. 해외에서 그룹전을 하다 보면 한국적인 테마로 엮여 옻칠 작가와 함께 작업을 선보이게 되기도 하고, 자개장을 재활용했다는 점에서 업사이클링이라는 키워드로 읽히기도 한다. 같은 작품을 보고 누군가는 ‘되게 한국적이다’는 감상을 내놓는다면, 누군가는 금속이라는 소재에 집중해 작업 방식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각자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생각으로 살아왔는지에 따라 작품을 읽는 방식이 달라진다는 사실에 흥미를 느낀다.
지속적으로 ‘시간의 갭’에 대한 이야기를 해오고 있는데, 부식되고 마모된 재료에 남아 있는 시간의 흔적이 결함보다는 매력으로 느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손맛이 작품을 완성한다. 흠집이나 녹슨 자국은 오브제가 열심히 기능했던 흔적이라고 생각한다. 장식이라고 여긴 문양이 사실은 기능을 더 충실하게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걸 알게 되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무 중간중간에 파인 홈이 사실은 서까래를 끼워 맞추기 위해 있는 자리였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처럼 말이다.
공간 디자인을 전공한 만큼 다른 시각을 갖췄을 것 같기도 하다. 인테리어를 하며 자주 접하던 재료를 다른 각도에서 다시 보게 되는 순간이 있다. 과거 작업 중 합판을 주 재료로 한 이라는 작품이 있다. 보통 합판은 목재를 얇게 가공해낸 것인데, 그 패턴을 살리고자 이를 다시 두껍게 이어붙인 다음, 원목을 가공하듯 깎아내 기존 목재에서는 볼 수 없는 패턴이 드러나게끔 작업했다. 합판을 판재가 아닌 하나의 형태로 바라본 셈이다. 인테리어 작업 전, 철거 현장을 가면 때론 그대로 보존해두고 싶은 흔적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런 장면을 보고나서 언젠간 녹이 슨 소재로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현재 전시 중인 <UB>시리즈 역시 부식을 다루고 있는데. 윤형근 화백의 조형을 오마주 형식으로 표현한 작업이다. 한국어로는 <청다색>이고, 영어로는 라고 불리는 윤 화백의 작품명에서 이름을 착안했다. 회화 작업을 했다기보다는, ‘부식’이라는 기법 자체를 다루는 데 초점을 맞췄다는 설명이 더 적합한 것 같다.


갤러리 느와 1층에 전시된 파빌리온에 압도되는 느낌을 받았다. 보통 이러한 개인전에 파빌리온을 설치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나? 한국의 정자 구조를 H빔으로 재해석한 작업이다. 파빌리온은 건축적인 언어다. 공간 디자인을 병행한다는 정체성을 작업 안에서도 드러내고 싶었다. 붉은색은 방청 도료인데, 금속이 녹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바르는 페인트를 사용해 나온 색이다. 의도적으로 색을 선택했다기보다는 기능적인 재료에서 출발한 셈이다.
요즘 새롭게 관심 가는 소재가 있다면 무엇인가? 아프리카 빈티지 가구와 오브제. 기회가 된다면 작업을 확장할 계획도 있다. 아직은 평면 작업이 전부이지만, 언젠가는 부식 기법을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아트 퍼니처를 만들고 싶다. 단순히 그 질감이 예쁘다는 이유로 이를 활용하기보다는, 형태와 기능 면에서 꼭 필요한 기법으로 부식을 활용하고자 하는 바람이 있다. 아직은 약물의 농도와 반응 방식 등을 연구하며 기법을 다듬는 단계지만, 언젠가 ‘꼭 부식이어야만 하는 형태’를 찾아내는 순간이 온다면 쾌감이 꽤 클 것 같다.
가끔 ‘네 작품은 참 너 같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고. 가장 ‘김병섭스러운’ 작업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자연스러움. 무언가를 선보일 때나 누군가를 만날 때도, 의도를 가지고 특정한 모습을 연출하려고 하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내 작업도 그랬으면 한다. 구태여 어떤 이유를 달고 포장하지 않아도, 그저 자연스럽게 느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