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창한 지중해의 정원부터 이국적인 중국풍 앤티크 숍, 예술가의 아틀리에까지. 파리 데코 오프 2026을 수놓은 패브릭은 공간을 여행의 장면으로 바꾸며, 올해 텍스타일 트렌드를 감각적으로 제안한다.

Narrative Surfaces
2026 파리 데코 오프에서는 미니멀과 모노 톤에 대한 반동으로, 이야기를 담은 장식 패브릭이 강한 흐름으로 떠올랐다. 특히 시누아즈리 Chinoiserie는 단순한 중국풍 장식 패턴을 넘어 풍경과 상징이 얽힌 서사를 통해 ‘보고 읽히는 패브릭’ 트렌드를 대변한다. 18~19세기 유럽이 상상한 동양의 풍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왜곡된 비례, 낭만적인 식물과 동물, 세월을 머금은 색감이 감정과 기억을 자극한다. 영국의 하이엔드 벽지 브랜드 드고네이 De Gournay는 이런 흐름에 맞춰 브랜드 아카이브 시누아즈리 패널 ‘페이장 Faisans’을 중심으로 쇼룸을 매혹적인 앤티크 상점처럼 연출했다. 손으로 그린 공작과 꿩, 상상 속 식물 등이 리드미컬하게 이어지며, 벽은 배경을 넘어 서사를 담는 장면으로 기능한다.

Velvet Jungle
데다 Dedar는 올해 개념과 서사를 담는 표면 패턴을 확장하는 데 집중한다. 미니멀 이후의 시대, 텍스타일은 직접적인 묘사보다 역사적 레퍼런스와 추상, 그래픽적 구성의 병치를 통해 시선이 머무를수록 드러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 이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자카드 벨벳 ‘다윈니스타 Darwinista’. 초록빛 오리엔탈 톤의 각진 의자 위로 드리워진 짙푸른 벨벳은 강렬한 대비를 이루며, 기하학적인 바탕 위에 숨겨진 숲의 서사를 펼쳐낸다. 몸을 틀어 올린 뱀과 호랑이, 윤기 나는 투칸과 달아나는 원숭이들은 즉각적으로 드러나기보다, 벨벳의 깊은 파일 사이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아르데코적 구조 위에 몽환적인 상상력이 겹친 이 패브릭은, 텍스타일 자체가 하나의 장면으로 기능하는 서사적 표면의 흐름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Crafted Landscape
자연 풍경을 깊이 있는 입체감과 세밀한 자수 기법으로 회화처럼 풀어낸 고밀도 텍스처 표면이 파리 데코 오프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면을 채우는 컬러보다 표면의 밀도와 수공예의 층위가 공간의 인상을 좌우하는 흐름이다. 라피아와 실크, 코튼 실을 겹겹이 엮은 드고네이의 ‘파라솔 파인 Parasol Pines’은 다양한 소재를 직조해 지중해 풍경을 담아냈다. 손자수로 구현한 우산 소나무는 깊이 있는 뉴트럴 팔레트 위에서 프로방스의 풍경을 은근히 환기한다. 점묘주의 회화처럼 입체적인 표면과 스케치 구성은 새틴 스티치, 카우칭, 프렌치 노트 기법이 중첩되며 평면에 풍부한 깊이를 더한다.

Vertical Canvas
프랑스 텍스타일 브랜드 피에르 프레이 Pierre Frey는 벨기에 아티스트 이자벨 드 보르슈그라브와 협업한 ‘메무아르 콜로레 Mémoires Colorées’ 컬렉션을 통해 예술가의 아틀리에로 우리를 초대한다. 이번 협업은 작가의 브뤼셀 아틀리에에서 출발해, 자유로운 스케치와 대담한 컬러 감각을 패브릭과 벽지, 러그로 확장한다. 원색에 가까운 풍부한 색채와 리드미컬한 패턴, 재료의 물성을 전면에 내세우는데, 특히 손자수, 밀도 있는 자카드, 조각 같은 벨벳 질감으로 표현된 표면이 중심이다. 이는 시각적 착시를 불러일으키며 즉흥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제스처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Frida’s Room
멕시코 초현실주의 화가 프리다 칼로의 강렬한 색감과 민족적 정서에서 출발한 장면도 눈길을 끈다. 멕시코의 열정적인 댄서를 연상시키는 풍성한 실루엣의 그림, 빛바랜 앤티크 벤치와 장난기 어린 슈즈가 하나의 정물처럼 놓이고, 그 위로 피에르 프레이의 ‘프리다 Frida’ 패브릭이 생동감 있게 펼쳐진다. 이자벨 드 보르슈그라브는 프리다 칼로의 옷장 속 벨트와 직물 장식, 리본과 장신구가 만들어내는 레이어에 주목했다. 꽃무늬와 스트라이프를 질감 있는 스티치로 완성해 공예적인 밀도와 민족적인 에너지를 동시에 담았다. 강렬한 컬러와 즉흥적인 패턴의 흐름은 프리다 칼로의 열정과 창작의 자유, 대담한 여성성을 직물 위에서 감각적으로 되살린다.

Parisian Elegance
1980년대 프랑스 조각가 아르망의 옛 아틀리에가 슈마허 아틀리에 파리의 첫 컬렉션을 통해 동시대적 무드로 재등장했다. ‘트랜스아틀란틱 메모리즈 Transatlantic Memories’는 프랑스적 유산과 미국적 창의성이 맞닿는 지점에서 태어난 컬렉션으로서, 최근 디자인 신에서 두드러지는 ‘헤리티지의 재편집’ 흐름을 상징한다. 우드와 메탈, 따뜻함과 광택, 건축적 그리드와 레몬 모티프가 겹쳐지는 공간은 파리와 뉴욕의 감각을 하나의 언어로 엮으며, 장소성과 컬러, 텍스타일을 통해 새로운 트렌드 서사를 제안한다.

Rhythmic Wall
형광 핑크 컬러의 선들이 벽면 위를 자유롭게 흐른다. 콜앤선 Cole & Son과 비비안 웨스트우드 Vivienne Westwood가 협업한 월페이퍼는 패션의 제스처를 핸드 드로잉 그래픽으로 풀어내며, 리빙 공간을 하나의 유쾌한 무대로 확장한다. 구불구불한 패턴은 정지된 벽을 캔버스 삼아 움직임과 리듬을 만들고, 큰 곡선을 그리는 화이트 모듈 소파는 장면에 활기를 더한다. 여기에 노란 쿠션과 장난감 같은 사이드테이블이 더해지며, 공간 전체는 대담하고 경쾌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Japanese Stillness
엘리티스 Élitis는 올해 일본의 정적과 여백이 지배하는 세계로 시선을 옮긴다. 젠 미학에서 출발한 이번 컬렉션은 인내로 빚어진 시간과 반복되는 창작의 몸짓을 패브릭으로 풀어낸다. ‘재팬 Japan’ 컬렉션은 고요한 긴장으로 공간을 채운다. 쪽빛과 깊은 블랙은 일본 서예의 먹빛을 떠올리게 하고, 절제된 톤의 부드러움은 신비로운 여백을 만든다. 그 사이로 황금빛이 은은하게 스미는 브라운 패브릭. 격자 무늬처럼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패브릭이 소파와 파티션 패널을 감싸며 장면에 온기를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