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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케이팝에 주목할수록, 김양수 대표는 우리 문화의 시작점에 집중했다. 두손갤러리가 답십리 고미술상가로 터를 옮긴 이유, 그리고 개관전으로 미켈레 데 루키의 전시를 택하게 된 배경에 대하여.

정우원 작가의 ‘빛의 서낭당’과 어우러진 전시 전경.
 개관전에서 만난 미켈레 데 루키 작가와 김양수 대표.

“세계가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열광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해요?” 기존 정동에 위치했던 두손갤러리가 답십리 고미술상가로 이전한 연유를 묻자, 김양수 대표는 내게 이렇게 되물었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케이팝이 해외 곳곳에 울려 퍼질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 전부터 축적되어온 한국의 대중문화가 지금의 ‘케데헌’을 만든 거죠. 이럴수록 저는 근간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만의 것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그 근본과 깊이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본 거죠.” 두손갤러리의 답십리 이전은 어쩌면 예정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 현 두손의 출발점에도 고미술상이 있었다. 1977년 갤러리가 동숭동에서 ‘두손’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관하기 전인 1969년, 서울대 미술대학에 재학 중이던 김양수 대표는 청계천 골목에 골동품점을 열었다. “상투적인 이야기지만, 결국 우리 문화에 대해 말하려면 최소한 뿌리는 제대로 알아야 해요. 이제는 외국에서 성공한 사례를 수동적으로 응용하기보다, 능동적으로 뻗어나갈 때가 됐어요.”

작가의 퍼스트 체어와 어우러진 2~3세기 파키스탄의 간다라 석상이 눈에 띈다.

새롭게 터를 이전한 두손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가장 먼저 정우원 작가의 <빛의 서낭당>이 자리한다. 마을 입구에서 공동체의 안녕을 빌던 신수 서낭당을 오늘날의 형태로 풀어낸 작품이다. 오색천대신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LED 바는 ‘무사시귀’, ‘세사여사’, ‘범사개연’, ‘끽다거’라는 성어를 통해 일상 속의 평안을 빈다. 문의 양 옆 벽으로는 철재로 만든 고려시대의 사천왕상이 갤러리를 수호하듯 서 있다. 개관전으로는 이탈리아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아티스트인 미켈레 데 루키 Michele De Lucchi의 이 4월 30일까지 진행된다. 미켈레 작가의 개인전이지만, 전시 서문이 써 있는 벽 건너편과 테이블엔 2~3세기 파키스탄의 간다라 석상 또한 발견할 수 있다. “작가의 개인전인데, 이런 고미술은 없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처음엔 다들 걱정했죠. 그런데 이 전시의 기저엔 ‘방’이 있어요. 그래서 나는 이렇게 얘기했지. ‘코리안 하우스’에 들어온 작가의 방이라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실제로 미켈 레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아주 좋아했어요.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의 것이 상생할 때 배움이 생기고,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는 거지요.” ‘과거와 현재가 없는 미래는 없다’. 전시를 여는 인사말에서 미켈레 데 루키가 한 이 말은 결국 김양수 대표가 그린 두손갤러리의 방향성과 정확히 일치했다. 답십리에서 여는 첫 전시를 미켈레 데 루키의 개인전으로 시작한 기저에도 역시 ‘방’에 대한 사유가 있다. 작가에게 방은 물리적 공간인 동시에 기억과 드로잉, 계획과 생각이 쌓이며 작업의 맥락이 형성되는 정신적 장소를 의미한다. 오랜 시간 물건이 축적된 답십리 고미술상가 역시 그런 의미에서 여러 세대의 시간과 기억이 공존하는 ‘한국인의 방’으로 읽힌다. 서로 다른 시대의 사물이 한 공간 안에서 공존하는 이곳 환경이 작가가 이야기해온 ‘방’의 개념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셈이다.

“고향에 돌아온 기분이에요.” 일흔 중반의 김양수 대표에게는 이번 이전이 갤러리 운영에 있어 마지막 중요한 결단 중 하나이기도 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해야 할 일이 명확히 보였어요. 지금까지 많은 전시를 열고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만족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니 결국 이곳이 떠오른 거죠.” 값비싼 작품과 함께 생활 속에서 쓰이던 그릇과 가구, 오래된 공예품과 이름 모를 사물들이 뒤섞인 답십리엔 한국 문화의 뿌리와 역사가 축적되어온 방식이 녹아 있다. “앤티크 페어가 골동품의 멋과 가치를 소개하는 자리라면, 답십리는 고미술의 생태계가 살을 맞대며 숨 쉬는 공간이죠. 탄탄한 기반을 가진 답십리라는 지역을 계속해서 환기하다 보면, 우리 고유의 것이 문화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법고창신’이라는 옛말이 있다.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의 사자성어는 근본을 잃지 않으면서도 새로움을 모색하는 정신을 강조한다. “문화라는 게 보이지 않다 보니, 원가 개념이 희미해요. 그럴수록 우리 고유의 것을 제대로 알고 되새겨야 하는 거예요.” 고미술에 대한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겁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골든’은 얼마 전 열린 2026 오스카 시상식에서 2관왕을 차지했다. 세계가 주목하는 문화의 다음 장면은 어쩌면 이 오래된 거리에서 다시 시작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벽면을 장식한 고려시대의 사천왕상 중 하나.
고미술상가 건물, 갤러리의 초입에선 조선 말기 사찰 건축의 용두 조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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