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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록으로 남는 대신, 동시대 예술과 호흡하며 새로운 세대와 공명하기를 택한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 수십 년간 닫혀 있던 공간에 새로운 건축적 기법을 더한 메수라 스튜디오와 이야기를 나눴다.

뼈 모양을 닮은 석조 기둥과 모더니즘의 꽃무늬 장식으로 꾸며진 카사 바트요의 파사드. © Casa Batlló

안토니 가우디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카사 바트요 Casa Batlló가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았다. 수십 년간 폐쇄되어 있던 공간 2층이 동시대 미술을 위한 갤러리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난 1월 31일 처음으로 대중에 문을 연 이곳은, 매년 현대미술 전시를 두 차례 선보이며 바르셀로나의 예술적 거점으로 기능해갈 에정이다. 리디자인을 통해 기존 건물의 원형을 세심하게 보존하면서, 건축적 기억과 동시대 예술을 잇는 새로운 장치를 더한 스튜디오 메수라 Mesura에 설계 과정을 물었다.

‘빈 공간’을 캔버스 삼아 완성한, 메탈릭 천장과 녹색 톤 바닥이 균형을 이루는 공간. © Ethandeclerk
‘빈 공간’을 캔버스 삼아 완성한, 메탈릭 천장과 녹색 톤 바닥이 균형을 이루는 공간. © Ethandeclerk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의 전반적인 설계 과정이 궁금하다. 리디자인은 면밀한 관찰에서 시작되었다. 두 번째 층은 이미 강한 역사적 요소들을 품고 있었지만, 동시대적 활용에 부합하는 명확한 공간적 정체성은 다소 부족한 상태였다. 우리는 새로운 서사를 덧씌우기보다는 빛과 분위기, 재료가 지닌 기억과 같은 잠재된 특질을 드러내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공간이 가우디의 건축에 뿌리를 두면서도 현대적인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진화하도록 했다.

층은 어떻게 구획되어 있으며, 각 공간이나 방은 어떤 역할을 하나? 층은 닫힌 방들의 집합이라기보다는 하나의 연속적인 ‘공간 시퀀스’로 구상되었다. 서로 다른 영역이 전시, 동선, 사유를 위한 기능을 수행하지만, 공간 간 전환은 유연하게 이어지며 유동성을 유지한다. 이를 통해 유연성과 통합된 건축적 경험을 동시에 확보했다.

이번 리노베이션을 계획하며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점이 있다면? 존중과 절제가 가장 근본적인 원칙이었다. 이번 개입은 가우디의 건축과 경쟁하기보다는 공존해야 했다. 동시에, 동시대 예술 실천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유연한 공간이어야 했다. 모든 결정은 가벼움, 가역성, 그리고 명료함이라는 기준 아래 이루어졌다.

‘빈 공간’을 캔버스 삼아 완성한, 메탈릭 천장과 녹색 톤 바닥이 균형을 이루는 공간. © Ethandeclerk
카사 바트요 컨템포러리의 리디자인을 맡은 스튜디오 메수라. © Carlos Roca

본래 이곳을 설계한 가우디의 유산은 어떤 방식으로 기리고자 했나? 가우디의 가장 중요한 유산은 건축을 자연과 깊이 연결된 살아 있는 유기적 시스템으로 이해했다는 점이다. 우리는 그의 형태를 모방하기보다는, 그가 사고했던 방식을 동시대적 언어로 번역함으로써 이를 기리고자 했다. 이는 움직임, 재료에 대한 지성, 그리고 감정적 공명을 포용하는 태도로 구현되었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상징적인 요소는 곡선 형태의 메탈릭 천장이다. 이 아이디어의 탄생 배경과 역할이 궁금하다. 천장은 자연 현상, 특히 물과 지중해에서 영감을 받았다. 이는 공간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동시에 가볍게 떠 있는 듯한 분위기를 만드는 통합적이고 대기적인 요소로 작동한다. 반사와 움직임을 통해 방문객이 속도를 늦추고, 감각적으로 건축과 교감하도록 유도한다.

당신들은 이 개입에 대해 ‘가우디의 작업에 대한 메아리(Echo of Gaudi’s Work)’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 프로젝트는 모방이 아니라 ‘반향’으로 구상되었다. 우리는 가우디 작업의 근본 원리, 즉 유기적 논리와 연속성, 변형을 추출해 동시대적 도구와 재료로 재해석했다. 메아리처럼, 이번 개입은 원본과 구별되면서도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곳은 가우디의 유산을 반복함으로써가 아닌 확장함으로써 이어가는 공간이다. 움직임을 만들어낸 물방울의 본질을 간직한 채, 바깥으로 퍼져 나가는 파동처럼 말이다.

개관전 <Beyond the Facade>를 장식한 UVA의 작품.
개관전 <Beyond the Facade>를 장식한 UVA의 작품.
<Beyond the Facade>전시 전경.

이 천장을 제작하기 위해 옥시도 스튜디오 Oxido Studio와 특별한 협업을 진행했다고 들었는데. 옥시도 스튜디오는 첨단 금속 가공을 전문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다. 그들의 전문성은 이 프로젝트의 핵심이었다. 옥시도 스튜디오의 로보틱 암은 3차원 세리그래피를 생성하는 데 사용되어, 금속 표면에 물결 형태를 물리적으로 성형했다. 그 덕분에 천장은 조형적이면서 자립적인 특성을 동시에 획득할 수 있었다. 작업 과정에서 구현한 점진적 성형 기술은 산업 프로토타이핑에서 차용한 공정으로, 건축에 적용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접근 방식은 혁신과 존중을 동시에 구현했다. 가우디가 현수선 아치나 수목형 기둥을 통해 복잡성을 구조로 전환했듯, 우리 또한 가볍고 유연한 금속 시트에 곡률을 통해 강도를 부여하고자 한 것이다. 앞서 언급한 혁신은 가우디로부터의 이탈이 아닌, 그의 쉼 없는 실험 정신에 대한 헌신이라고 볼 수 있다.

작업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나? 강한 역사성을 지닌 공간에 동시대적 개입을 도입하면서도 그 균형을 해치지 않아야 했다. 기술적으로나 개념적으로나 정밀함이 필수적이었다. 새로운 요소들이 가볍고 가역적이며, 원래 건축을 존중하는 방식으로 남아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당신들의 작업 노트엔 ‘비어 있음(Emptiness)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 또한 중요한 과제였다고 써 있다. 건축적으로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전시 공간에서 ‘빈 공간’은 곧 매체이기 때문에, 지각을 형성하는 요소인 천장과 바닥에 집중한 것이다. 캔버스로 삼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천장과 바닥뿐이었기에, 우리는 절제되지만 강력한 두 가지 제스처를 도입했다. 천장은 기하학을 통해 빛과 공간의 깊이를 활성화하고, 바닥은 가우디의 논리 안에서 색채적으로 공간을 지지하게끔 말이다. 바닥 색은 카사 바트요의 파사드를 떠올리게 하는 녹색 톤이다. 이 색채 포인트를 내부로 끌어들임으로써, 우리는 낯선 화음을 더하지 않으면서도 가우디의 팔레트 안에 머무를 수 있었다. 이 두 제스처는 함께 과거와 현재를 잇는 공간을 정의한다. 역사 속에 고정된 방이 아니라, 새로운 세대와 공명할 수 있는 살아 있는 유기체로서 말이다.

<Beyond the Facade>전시 전경. © Claudia Mauriño
물과 지중해에서 영감을 받은 메탈릭 천장. © Claudia Mauriño

과거 거주를 목적으로 설계된 공간인 만큼, 일반적인 전시 공간과 다른 점도 있을 것 같다. 중립적인 전시 공간과 달리, 이 층은 역사와 재료의 기억을 품고 있다. 기존 요소들은 여전히 살아 있는 상태로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 프로젝트는 대체가 아니라 연속성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당신들 말처럼 카사 바트요는 역사적으로나 건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공간이다. 앞으로 이곳이 어떤 역할을 해나가기 바라는가?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는 장소. 지역 주민에게는 가우디의 유산이 여전히 살아 있고 진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해외 방문객에게는 건축과 시간, 그리고 동시대 문화가 연결되는 좀 더 깊고 몰입적인 카사 바트요의 이해를 제공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까사 바트요 컨템포러리 전시 공간.
<Beyond the Facade>전시 전경. © Claudia Mauriño
<Beyond the Facade>전시 전경. © Claudia Mauriñ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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