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조각에서 발견한 완벽한 조형. 가구와 조각의 경계에서 소재의 본질을 탐구하는 픽트 스튜디오 장혜경 작가.

지난 3월, 서울 금호 알베르에서 열린 갤러리 필리아의 전시 현장.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갤러리가 한국 작가 6인과 함께 선보인 이 전시에서 유독 관객의 시선을 붙잡는 가구가 있었다. 차가운 대리석 파편들이 투명한 레진 속에 박제되어 새로운 생명력을 뿜어내는 ‘프래그먼트 Fragment 시리즈’. 이 매혹적인 사물을 빚어낸 주인공은 픽트 스튜디오 FICT Studio의 장혜경 작가다. 올해로 디자인 작업 10년 차를 맞이한 장혜경 작가는 대학 시절부터 자신만의 스튜디오를 꿈꿨다. 2016년 문을 연 픽트 스튜디오 이름에는 ‘From Craft to Industry(공예부터 산업까지)’라는 포부가 담겨 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했지만, 늘 공예적 터치와 재료 자체의 물성에 주목했어요. ‘산업디자인 특유의 프로세스를 공예에 접목하면 어떨까’ 하는 고민에서 스튜디오를 시작했죠. 지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소통할 때 그때 익힌 디자인 언어들이 큰 자산이 됩니다.” 장 작가의 작업 세계를 관통하는 핵심은 단연 ‘소재’다. 대표작인 프래그먼트 시리즈는 국내 대리석 수입사 토탈석재와 함께한 협업에서 시작됐다. 매일 최소 2t씩 쏟아지는 대리석 폐기물을 보며 작가는 산업폐기물의 재활용을 넘어선 ‘조형적 확장성’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런 탐구는 대리석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에 대한 방증이 자개를 구체적 형상으로 가공하는 대신 비정형적인 형태로 부수어 활용한 ‘네이커 Nacre 시리즈’, 황토와 볏짚, 제스모나이트를 결합해 만든 ‘로에스 Loess 시리즈’ 등이다. 소재의 한계를 두지 않고 변주를 거듭해온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하면, 재료 자체가 이미 너무 아름다워요. 황토 같은 것도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인데 너무 저평가된 게 아닐까 싶었죠. 이미 아름다운 본질을 가졌기에 제가 어떻게 활용해도 충분히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최근 작가의 시선은 대리석을 넘어 더 세밀한 자연물로 향하고 있다. 반려견과 산책하며 주운 나뭇가지, 선물받은 꽃 등을 레진으로 박제한 ‘수비니어 Souvenir 시리즈’가 그 결과물이다. “길을 가다 무언가를 수집하고 싶다는 욕구가 생기는 것 자체가 디자이너로서 하나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해요. 레진을 겹겹이 쌓아올리다 보면 제 의도와 다르게 흘러내리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조형이 나오기도 하죠. 기획 단계의 압박감에서 벗어나 재료에 맡기는 ‘수동성과 반수동성’의 공존이 저랑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요.” 외부 클라이언트와의 프로젝트 역시 소재에 대한 실험의 장이 된다. 스튜디오 라이터스와 협업한 신세계 분더샵 파티션 작업에서는 딱딱한 돌의 질감을 부드러운 소프트 레진으로 치환하며 이질적인 매력을 이끌어냈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 탄생한 샘플들을 액자에 담은 ‘머티리얼 노트 Material Notes’ 시리즈다.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만드는 샘플 하나에도 엄청난 고민과 노력이 들어가는데, 그 과정이 사라지는 게 아쉬워 프레임 안에 평면 작업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작업 과정에서 나오는 또 다른 부산물까지 온전히 담아내는 일종의 아카이빙인 셈이다. 버려진 조각들 사이에서 누구나 발견하지 못하는 가치를 길어 올리는 작가의 시선은 이제 좀 더 규모 있는 설치 작업과 공간 작업으로의 확장을 꿈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