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료를 통해 관계와 시간을 다루셨는데, 어떤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오셨나요? 한지, 종이, 빛, 도자, 금속, 와이어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왔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재료라기보다는 관계와 에너지, 보이지 않는 연결을 드러내기 위한 매개체에 가까웠습니다. 빛은 형태보다 ‘상태’에 가까웠고, 한지는 숨 쉬는 막이었으며, 금속과 도자는 긴장과 무게, 시간을 품은 구조로 작동했습니다.
이번 나무껍질 연작은 이전 작업과는 다른 재료를 사용한 작업으로 보입니다. 이 작업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번 나무껍질 연작은 그동안 제가 계속 다루어온 질문이 가장 직접적인 물질로 응답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작업이 관계, 흔적, 시간, 미시적 사건들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면, 나무껍질은 이미 그 모든 것을 스스로의 몸에 기록하고 있는 재료였습니다. 나무껍질은 보호막이자 상처의 기록이고, 성장과 탈락이 동시에 일어나는 표면입니다. 저는 이번 작업에서 무언가를 덧붙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껍질의 시간과 균열, 탈락의 리듬을 드러내고 연결하는 역할에 가까웠습니다. 이 점에서 이번 연작은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작업’이기보다는, 그동안 제가 계속 탐구해온 보이지 않는 관계, 생의 미시적 사건, 존재의 표면과 내부 사이의 긴장이 가장 응축된 형태로 나타난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관찰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형태 이전의 상태를 관찰합니다. 재료가 지금 어떤 긴장 안에 놓여 있는지, 어떤 시간의 흔적을 몸에 품고 있는지 봅니다. 저는 재료를 완성된 결과로 이끌 대상이라기보다, 이미 스스로의 역사와 리듬을 가진 존재로 마주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무엇을 만들 것인가’보다는 이 재료가 지금 어떤 속도로 변하고 있는지, 어디에서 멈추고 어디에서 탈락하고 있는지를 오래 지켜봅니다. 특히 한지, 흙, 나무껍질처럼 유기적인 재료들은 시간과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상태를 바꾸며 반응합니다. 어느 순간 더 손대지 않는 것이 가장 정확한 선택이 되는 때가 있는데, 그 판단 역시 관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복과 압력이 축적된 구조가 어떤 방식으로 보이기 바라셨나요? 반복과 압력이 축적된 구조는 특정한 의미를 전달하기 위한 형식이라기보다, 자연의 에너지가 시간 속에서 이동하고 축적되는 상태를 드러내기 위한 방식입니다. 저는 이 구조를 통해 명확한 메시지를 제시하기보다, 자연과 인간, 환경 사이에서 형성되는 비가시적인 흐름이 감각적으로 인식되는 순간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의미를 의도적으로 부여하지 않더라도, 반복과 축적 속에서 관객 각자가 서로 다른 감각과 해석을 경험하기 바랍니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가 아닌 가구 매장 에이치픽스에서 진행됩니다. 실제 생활 가구와 함께 놓인 공간에서 작품이 어떻게 읽히기 바라셨나요? 가구 디자이너들의 마스터십이 담긴 완성도 높은 제품들과, 자연의 시간과 흔적을 품은 저의 유기적 형태들이 하나의 공간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 설치되었습니다. 인위적으로 설계된 완벽함과 자연이 만들어낸 비정형의 질서가 서로를 돋보이게 하는 공간적 심미성을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재료의 시간성과 함께 작업해온 작가님에게, 시계를 통해 새롭게 떠오른 생각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저는 그동안 나무껍질이나 반복과 압력의 구조를 통해,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물질 안에 쌓이고 머무는 것으로 다뤄왔습니다. 시계는 시간을 재고 나누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시간을 그렇게 믿고 살아가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합니다. 이번 작업을 통해 저는 시간이 정말로 흐르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정해놓은 방식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협업에서 시계는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을 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바랐습니다.
앞으로의 작업은 어떤 방향으로 이어질 예정인가요? 새로운 재료를 찾기보다, 재료가 지닌 시간과 압력, 그리고 그 안에서 의미가 어떻게 생겨나는지를 계속 보고 싶습니다. 올해는 나무껍질처럼 유기적인 시간의 흔적을 가진 재료들과 함께, 광물의 시간성을 품은 철 재료를 본격적으로 다룰 것입니다. 저는 다음 작업에서 의미를 제시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재료와 시간, 환경의 관계 속에서 의미가 어떻게 해석되고 발생하게 되는지 담담하게 드러내고 싶습니다. 형태를 완성하기보다는 자연과 인간, 물질과 시간이 만나는 상태에 머무는 작업으로 이어질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