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도자기의 도시, 중국 이싱에 쿠마 켄고가 설계한 새로운 미술관이 문을 열었다. 점토와 빛,
장인들의 손길이 만든 UCCA 클레이 뮤지엄은 전통의 재료가 건축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오래된 도자기 공장들 사이로 강변에 자리한 UCCA 클레이 뮤지엄.

물결처럼 굴곡진 외관, 길게 뻗은 경사면과 반원형 아치, 빛과 각도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도자기 패널. 중국 이싱에 새롭게 문을 연 ‘UCCA 클레이 뮤지엄 UCCA Clay Museum’은 도시 한가운데 놓인 거대한 도자기 조각처럼 보인다.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가 설계한 이 미술관은 ‘점토로 지은 건축’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했다. 자연 소재와 오감으로 느끼는 건축을 강조해온 쿠마켄고 & 어소시에이츠가 점토를 주재료로 활용한 첫 프로젝트로, 이싱의 오랜 도자기 역사를 건축적 언어로 번역했다. 외벽을 장식한 3600개의 도자기 패널은 지역 장인들의 손에서 만들어졌으며, 빛과 온도에 따라 표면의 색과 질감이 달라진다. 가까이서 보면 유약이 녹아 흐른 듯한 자국이 남아 있고, 가마 속 불이 남긴 불규칙한 패턴은 시간의 흔적처럼 건축에 스며 있다. 이 변화는 쿠마 켄고가 늘 말해온 ‘재료가 가진 감정’을 가장 순수하게 보여준다.

가마처럼 길게 이어지는 미술관. © Yixing Taodu Capital Management Co., Ltd
외벽의 세라믹 마감재는 지역 장인들이 손수 제작했다. © Photograph by Zhu Di, AGENT PAY
지난 10 월 12일까지 열린 전시 전경.

이싱은 7000년의 도자기 역사를 지닌 도시이자, 보라빛 점토 ‘자사토’로 만든 찻주전자 ‘자사호’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15세기 이후 중국 차 문화의 핵심이 되어온 이 작은 주전자는 장인들의 손끝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왔다. UCCA 클레이 뮤지엄은 이 지역의 정체성과 현대적 창의성이 만나는 지점에서 있다. 미술관이 자리한 도자기 문화지구는 과거 제2 도자기 공장이 있던 6만2000㎡ 부지를 재생해 조성된 곳이다. 버려진 산업 공간이 예술의 장소로 다시 태어난 셈이다. 쿠마 켄고는 이 낡은 토지의 기억을 지우지 않고, 오히려 건축 안에 스며들게 했다. 굴곡진 외형은 인근 슈산의 실루엣을 담았고, 길게 이어진 형태는 600년 동안 사용되어온 중국 전통 용가마에서 영감을 얻었다. 산비탈을 따라 이어지는 가마의 긴 몸체를 본뜬 구조는 흙이 불을 만나 도자기로 변하는 과정을 공간 전체로 확장한 듯하다. 반원형 입구를 지나 내부로 들어서면, 마치 커다란 가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착각이 든다. 2층 구조의 내부는 목조 격자 지붕 아래로 부드러운 자연광이 떨어지며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친 점토의 질감과 은은한 조명이 완만한 곡선과 어우러져 ‘촉각적인 건축’의 감각을 선사한다.

아치형 창 너머로 수공간과 연결되는 전시장.
전시 속 슈이 카오와 캔디스 린의 작품들. UCCA 클레이 뮤지엄에서는 현대와 전통을 잇는 세라믹 아티스트들의 전시를 꾸준히 선보이고 있다.
격자 형태의 목조 천장이 인상적인 내부.

미술관은 전시실 외에도 다목적홀, 강당, 카페 등을 유기적으로 배치해 방문객이 자연스럽게 이동하고 머물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곳곳의 틈과 곡선의 여백은 단순히 통로를 넘어 감각적 쉼터가 된다. 현재 이곳에서는 국내외 현대 세라믹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손으로 빚은 점토의 형태가 공간의 구조와 대화하며, 빛과 그림자 속에서 각기 다른 질감을 드러낸다. 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곧 건축을 체험하는 일과 맞닿아 있다. UCCA 클레이 뮤지엄은 도자기라는 재료가 지닌 존재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무대다. 점토와 불, 시간과 손의 흔적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이 건축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도자기 작품처럼 느껴진다. 관람객은 공간을 거닐며 전통과 현대, 장인과 기술, 물성과 감각이 교차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쿠마 켄고가 만들어낸 ‘흙의 건축’은 이싱의 땅에서 새로운 예술의 시간을 구워내고 있다.

Updated viewCount. Affected rows: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