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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속 깨달음을 건축적으로 구현한 태국 최초의 국제 현대미술관 딥 방콕. 12월 오픈을
앞둔 이곳은 층을 오를수록 정제되는 구조를 통해 사유의 흐름을 이끈다.

알리시아 크바데 Alicja Kwade 작가의 작품 ‘Pars Pro Toto’(2020)이 설치된 바깥 공간. © Dib Bangkok, Auntika Ounjittichai

1980년대 지어진 태국 방콕 중심부의 창고 건물이 오는 12월 현대미술관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 태국 첫 국제 현대미술관의 기능을 할 이곳의 이름은 ‘딥 방콕 Dib Bangkok’으로, 딥은 태국어로 ‘날것’ 또는 ‘자연 그대로의 상태’를 뜻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변화하는 미래를 잇는 연결성을 반영하는 박물관의 사명과 디자인 및 운영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딥 방콕을 설립한 푸랏 오사타누그라 Purat Osathanugrah는 태국의 뮤지션 겸 컬렉터, 그리고 사업가였던 아버지 페치 오사타누그라 Petch Osathanugrah의 방대한 소장품을 토대로 새로운 미술관의 컬렉션을 구축했다. 작품은 1990년대 이후에 제작된 것을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200명 이상의 작가와 1000점이 넘는 작품을 아우른다. 회화, 조각, 설치, 사진, 뉴미디어 등 다양한 매체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복합성을 조명하고, 사고의 지평을 넓히려는 시도를 통해 갤러리만의 독창적인 방향성을 드러낸다.

© Dib Bangkok, W Works

미술관 건축은 미국과 태국, 파리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건축 그룹 WHY 아키텍처가 설계를 맡았다. “우리는 방콕을 국제 예술 도시로 도약시키는 하나의 장치이자 예술가, 큐레이터, 대중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창의적 교류를 지원하는 공간을 설계하고자 했습니다.” WHY 아키텍처 대표 쿨라팟 얀트라사스트 Kulapat Yantrasast가 말했다. 건물엔 총 11개의 갤러리 공간과 7000㎡ 규모의 전시 면적 외에도 야외 조각정원, 중앙 중정, 특별 행사용 펜트하우스, 그리고 ‘채플’이라는 원형 타일 갤러리가 포함된다. 그중에서도 건물 내부 동선이 인상적인데, 불교의 ‘깨달음’ 개념에서 영감을 받아 층을 오를수록 정제된 구조를 이루었다. 1층의 콘크리트와 철제 창은 현실 감각을 강조하고, 2층은 차분하고 사적인 분위기를 통해 ‘내면’을 마주하게 하며, 3층의 화이트 큐브 공간은 하늘에서 쏟아지는 채광 아래, 관람객이 예술의 핵심에 도달하는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상단의 톱니형 지붕과 채광창은 생동감 있는 빛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차분하고 정돈된 외관을 자랑하는 딥 방콕. © Dib Bangkok, W Works

“우리는 창의성과 지식이야말로 문화를 살아 숨쉬게 하고, 끊임없이 진화하게 만드는 원동력이라 믿습니다. 딥 방콕은 단지 작품을 모아둔 공간이 아닌 예술을 향한 창이며, 관람자 스스로 질문하고 탐색할 수 있는 창의적 공간입니다.” 현대미술에 대한 존중을 담은 푸랏 오사타누그라의 이러한 철학은 전시는 물론, 건축과 컬렉션에 여실히 드러났다. “이곳이 태국과 세계 예술계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며, 깊이 있는 예술 애호가와 단순한 호기심을 지닌 이들이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되기 바랍니다.” 올해 말 대중에 처음으로 문을 여는 개관전은 ‘보이지 않는 존재 Invisible Presence’를 주제로, 딥 방콕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동시에 페트라 오사타누그라의 철학을 기리는 큐레이션으로 구성되었다. 태국 현대미술의 거장 몬티엔 분마 Montien Boonma, 이불, 독일의 안젤름 키퍼 Anselm Kiefer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대표작이 출품될 예정인 가운데, 이들의 대형 조각과 설치작업은 미술관의 구조적 특징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어떤 프로그램과 전시가 펼쳐질지는 계속해서 지켜봐야겠지만, 딥 방콕이 방콕이라는 도시에 예술적 깊이를 더해줄 장소로 기능할 것은 분명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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