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위해 경북 예천으로 내려가던 길, 충동적으로 핸들을 꺾어 안동으로 향했다. 촬영까지 살짝 여유가 있었기에 잠시나마 여행의 기분을 누려볼 참이었다.

박재서, 조옥화 명인의 안동 소주
아롱사태가 듬뿍 들어간 옥야식당의 선지 해장국을 들이켜거나 <음식디미방>으로 유명한 장계향의 친정집 ‘경당종택’에 머물며 종부가 차려준 조식을 먹어도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좀 더 새로운 것은 없을까 싶던 차에 소주 이야기가 나왔고, 결국 안동 소주를 마시며 돌아다니기로 했다. 역시 여행의 묘미는 즉흥성에 있다. 안동 소주의 약력을 간단히 살펴보자. 9세기 아랍, 무엇이든 추출하던 연금술사는 술을 끓여 모은 수증기로 소주의 기원인 아라크 Arak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아라크는 13세기 아랍을 침공한 몽골에 의해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우리나라 역시 몽골의 침략 덕택에(?) 소주의 역사가 시작되었는데, 소주로 유명한 개성, 안동, 제주는 모두 몽골의 병참기지였던 곳이다(세 곳 모두 몽골에서 지은 양조장이 있다). 안동 소주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지금까지 그 명맥을 유지한 전통 소주를 만들고 있다. 가장 유명한 것은 조옥화와 박재서 명인의 것. 한잔 마셔보니, 조옥화 명인의 소주는 특유의 꼬장꼬장함이 느껴졌다. 전통 방식으로 타협 없이 만든 술은 누룩취가 강한 편이었고, 도수 역시 45도 하나뿐이었다. 반대로 박재서 명인은 좀 더 유연한 맛이랄까. 드라이하면서도 깔끔하게 만든 소주의 맛은 요즘 주당의 기호를 정확히 파악한 듯 보였고, 도수도 22~45%까지 다채로웠다. 그 외에도 다채로운 안동 소주가 동네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전통적인 멥쌀 대신 찹쌀을 사용하고 오크통에서 6개월간 숙성한 올소(버버리 찰떡집에서 만든 것이다). 막걸리를 빚는 회곡 양조장에서 출시한 안동 소주, 직접 농사지은 통밀로 만든 안동 진맥소주까지. 그런데 이 모든 소주를 에디터가 안동에 머물렀던 6월 14일, 코엑스에서 열린 주류박람회에서 맛볼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딱히 후회는 없다. 안동의 고즈넉한 정취와 함께 들이켜는 현지 소주의 맛에 비할 수는 없을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