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 아래 피어난 풍미, 캘리포니아 와인 탐험기

태양 아래 피어난 풍미, 캘리포니아 와인 탐험기

태양 아래 피어난 풍미, 캘리포니아 와인 탐험기

프리미엄 와인 수입사 노던테라의 임태선 대표가 알려주는 캘리포니아 와인의 세계.

페렌 와이너리의 포도밭 전경.

페렌의 포도밭에서 서서히 익어가는 포도들.

‘캘리포니아 와인’ 하면 흔히 나파밸리를 떠올리곤 하지만 저마다 다른 기후적, 지리적 특징을 가진 또 다른 와인 산지들도 많죠. 그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는 와인 산지는 어디인가요? 산타바바라 혹은 산타리타힐스 Santa Rita Hills 지역의 와인을 꼽고 싶습니다. 이 두 지역의 와인은 나파밸리를 비롯한 다른 미국 와인과는 확연히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후와 지형의 차이에서 비롯되지요. 대부분의 캘리포니아 해안 지역은 산맥이 북남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습니다. 하지만 산타바바라 카운티, 특히 산타리타힐스 지역은 산맥이 동서 방향으로 뻗어 있어 태평양의 시원한 해풍과 안개가 계곡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독특한 지형에서 비롯된 특징은 무엇이 있나요? 극심한 일교차와 긴 생장 기간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이 지역은 낮에는 햇살이 풍부하여 포도가 충분히 익지만, 밤에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과 안개 때문에 기온이 크게 떨어집니다. 이로 인해 포도의 산도가 보존되고, 당분과 풍미가 천천히 복합적으로 발달하게 됩니다. 긴 생장 기간의 경우, 서늘한 기후로 포도 수확 시기가 늦어져 포도가 나무에 더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되죠. 이는 와인에 깊고 복합적인 풍미를 더해줍니다.
두 지역의 와인이 ‘우아하고 섬세하다’는 평을 받는 이유도 그 때문일까요? 맞습니다. 특히 산타리타힐스의 피노누아는 프랑스 부르고뉴 와인과 비교될 정도로 미네랄리티와 산도가 뛰어납니다. 노던테라가 수입하는 지칸 G.Khan 와인이 미국에서 만들어지지만, 부르고뉴 와인과 흡사한 이유기도 하죠. 이지역은 피노누아와 샤르도네 외에도 시라 Syrah 등 다양한 품종에서 뛰어난 와인을 생산하며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신생 와인 산지로서 와인 메이커의 자유롭고 실험적인 시도가 돋보이는 곳이죠. 접근 가능한 가격과 분위기 또한 이 지역 와인의 특징입니다. 일반적으로 나파밸리 와인은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지만, 산타바바라 와인은 상대적으로 합리적인 가격대에 훌륭한 품질의 와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나파밸리보다 더 편안하고 캐주얼한 분위기에서 와인 체험을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고요.

서늘하게 와인을 숙성시키는 페렌의 와인 저장 창고.

페렌의 프라이 로드 샤르도네와 실버 이글 피노누아.

지칸 샤르도네.

지칸 피노누아.

말씀하신 것처럼 다양성을 지닌 지역인 만큼 ‘캘리포니아 와인은 오크 향이 강하다’는 편견이 때로는 답답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오크 향이 강하다는 건 산미보다는 과실 등의 아로마 뉘앙스가 강렬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파밸리는 내륙에 위치해 산타바바라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햇살이 강렬합니다. 그 때문에 나파밸리 와인은 대체로 진하고 강렬한 풍미를 지니게 됩니다. 하지만 산타바바라와 산타리타힐스의 와인은 서늘한 기후와 지형으로 인해서 전혀 다른 피노누아와 샤르도네가 탄생합니다. 이 지역의 피노누아는 딸기, 체리 등 붉은
과일 향과 함께 흙, 버섯, 미네랄 풍미가 느껴지는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보여줍니다. 샤르도네 역시 신선한 산도와 미네랄리티가 살아 있는 스타일로, 잘 익은 열대 과일의 풍미가 지배적인 따뜻한 지역의 샤르도네와는 차별화되고요.
노던테라의 브로슈어를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희소성 있는 와인만을 찾고 공급한다’고 적혀 있는데요. 좋은 와인을 셀렉하는 대표님만의 기준이 궁금합니다. 단순히 희소성만으로 와인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명성과 희소성도 중요하지만,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은 ‘시간이 증명하는 가치’입니다. 와인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진가를 발휘하는 예술품과 같습니다. 젊은 빈티지 와인들이 활기차고 생생한 매력을 지닌다면, 백빈티지(에이징 빈티지 Aging Vintage) 와인은 숙성을 통해 얻는 깊이와 복합미가 있습니다. 잘 숙성된
와인 한 병에는 포도가 자란 땅의 이야기, 와인 메이커의 철학,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세월의 흔적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고객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높은 가격대나 적은 생산량만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군요. 그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자신만의 명확한 철학을 바탕으로 타협하지 않는 품질을 추구하는 와이너리의 철학입니다. 이런 곳에서 빚어낸 와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빛을 발하며, 마시는 이에게 잊을 수 없는 경험을 선사합니다. 제가 좋은 와인을 고르는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단순히 지금 맛있기만 한 와인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복합적인 매력을 뿜어내는 ‘시간이 지날수록 진가를 발휘하는 숙성 잠재력’이 첫 번째라면, 상업적인 성공보다 자신만의 신념을 지키며 와인을 만드는 ‘와인 메이커의 확고한 철학’이 두 번째죠. 마지막으로, 그 땅이 가진 독특한 기후와 토양의 특성이 와인에 고스란히 표현된 ‘테루아의 개성을 온전히 담아내는 와인’을 찾습니다. 노던테라는 이러한 기준을 통해 쉽게 만날 수 없는 와인, 단순한 음료가 아닌 ‘이야기가 담긴 경험’을 제공하는 와인을 선보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 기준에서 고른, <메종> 독자들에게 특별히 소개하고 싶은 캘리포니아의 와이너리를 알려주세요. 노던테라가 공식 수입하고 있는 페렌 Ferren과 지칸 와인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먼저, 페렌 와인은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컬트 와인으로 발돋움 중입니다. 마카신 Marcassin의 마지막 제자로 일컬어지는 매트 코트니 Matt Courtney의 개인 프로젝트죠. 마카신이 강렬하고 힘 있는 스타일로 캘리포니아 샤르도네의 정점을 찍었다면, 페렌은 조금 더 섬세하고 우아한 쿨-클라이밋 와인을 지향합니다. ‘수제자의 새로운 여정’인 셈이죠. 와인 한 병에 담긴 뛰어난 균형미와 복합적인 풍미는 마카신의 오너 헬렌 털리 Helen Turley처럼 전설적인 와인 메이커로 올라서는 그만의 새로운 와인 세계를 보여주며, 와인 애호가들에게는 신선한 충격과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지칸 와인도 궁금해집니다. 지칸 와인은 한마디로 ‘장인정신이 빚어낸 걸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와인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 베테랑 와인 메이커 제임스 스파크 James Spark와 로이킴의 역작입니다. 그는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풍부한 과일 풍미와 뛰어난 균형미, 그리고 구조적인 복합성을 동시에 갖춘 부르고뉴 와인을 만들어냅니다. 이 두 와인은 단순히 희귀한 와인을 넘어 와인 메이커의 철학과 시간을 담아낸 예술품으로서, 우리 노던테라가 추구하는 가치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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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너머의 이야기, 더 그로브 테이블

식탁 너머의 이야기, 더 그로브 테이블

식탁 너머의 이야기, 더 그로브 테이블

맛, 감각, 공간이 빚어낸 미식의 새로운 단면. 강릉 신라모노그램 호텔에 문을 연 이욱정 PD의
‘더 그로브 테이블’은 미식 너머의 문화적 경험을 선사한다.

높은 층고와 콘크리트 구조가 돋보이는 건물은 김용덕 대표가 설계했다.

환하게 웃고 있는 이욱정 대표.

미식 경험은 단순히 음식 맛이나 공간이 주는 분위기만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재료에 대한 집요한 탐구로 완성된 맛의 구조, 공간이 건네는 감각, 그 안에서 흐르는 시간의 밀도까지. 모든 요소가 교차할 때 감각은 쌓이고 경험은 비로소 완성된다. 수십 년간 요리 다큐멘터리 <요리인류>, <누들로드>, <신의 술방울> 등을 제작하고, 르 꼬르동 블루 런던으로 유학을 떠날 정도로 음식에 열과 성을 바쳐온 이욱정 PD가 미식 경험에 대한 집념을 실천에 옮겼다. 테라로사를 창립한 김용덕 공동대표와 함께 공간 기획 & 디자인 회사 마카랩을 설립하고, 강릉 신라모노그램 호텔에 복합미식 공간 ‘더 그로브 테이블’을 선보인 것이다. IFC몰을 기획한 안혜주 대표까지 합류해 완성한 더 그로브 테이블은 단순한 푸드홀이 아닌, 음식과 공간과 문화가 유기적으로 엮인 공간을 지향한다. “예전부터 공간에 대한 관심이 있었어요. 서울시와 함께 ‘요리를 통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를 진행할 당시 런던, 파리 등의 대도시에서 버려진 공간이 푸드마켓이나 F&B 시설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취재한 적 있어요. 그것을 지켜보며 지역이 활성화되려면 F&B 시설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입점한 레스토랑 또한 다양하게 구성되었다. 럭셔리 치킨 펍 ‘마 코코트’, 오마카세와 로바다야키를 즐길 수 있는 ‘스시 츠키요와’와 ‘갓포 츠키요와’, 정통 이탤리언 레스토랑 ‘버터빌라’, 타이 레스토랑 까폼을 고급화한 ‘까폼 리저브’, 퓨전 누들 전문점 ‘팔복정’, 미트컬처에서 파생한 해산물 다이닝 ‘피쉬컬처’, 와인바 ‘ATC’와 스페셜티 커피 전문점 ‘테라로사’, 그리고 이욱정 대표가 직접 운영하는 아이스크림 숍 ‘라이프이즈 소프트’까지, 전 세계 미식의 다양성을 한자리에 모았다. 직접 개발한 메뉴를 하나하나 설명하는 이욱정 대표의 모습에선 달뜬 설렘마저 느껴졌다. “아이스크림은 가장 창의적인 음식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먹을 때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는 의미로 가게의 이름을 지었어요.”

따뜻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풍기는 라이프 이즈 소프트의 외관.

퓨전 누들 전문점 ‘팔복정’의 국밥과 수육.

‘버터빌라’의 피자는 직접 화덕에서 구워 내온다.

갤러리 같은 외관을 자랑하는 더 그로브 테이블 건물 모습.

아이스크림 숍 ‘라이프 이즈 소프트’에서는 강원도 제철 과일을 활용해 수제 아이스크림을 만든다.

기존 호텔 안의 F&B 시설이 투숙객을 위한 폐쇄적 공간이었다면, 더 그로브 테이블은 그 경계를 과감히 허문다. 오픈형 구조로 설계된 이곳은 호텔 투숙객은 물론 지역민과 관광객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공간 중심에 배치된 중정을 둘러싸고 네 개의 건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각기 다른 동선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2층 한편에는 앤더슨씨 가구들이 큐레이션되어 공간에 온기를 더한다. 갤러리 형태의 외관과 노출 콘크리트 구조에 높은 층고를 가진 건물은 김용덕 대표의 손끝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도시는 건축으로 말한다’는 일념으로 건축적 완성도를 높이는 데 집중한 것이다. 공간에 문화적인 요소를 녹여내는 것 또한 이들의 숙제였다. 산과 바다가 밀접한 ‘휴양의 도시’ 강릉에서 공연을 즐기고, 축제 분위기를 만끽하게 하고 싶었다. “문화가 없으면 일반적인 푸드코트가 될 뿐이잖아요. 괜찮은 식음료를 팔면서 문화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적인 요소를 구현하고 싶었어요. 마을 사람이 모여서 편안한 시간을 보내는 유럽의 광장처럼요.” 실제로 더 그로브 테이블은 전시, 공연, 토크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맛의 경험을 문화적 맥락으로 확장하고자 한다. 숲을 뜻하는 ‘그로브 Grove’에 식탁을 의미하는 ‘테이블’을 더해 완성된 이름처럼, 더 그로브 테이블은 숲속 광장, 사람들이 모여 앉아 감각을 나누며 일상의 풍경을 바꾸는 미식의 장이 되어갈 것이다. ADD 강원 강릉시 해안로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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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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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을 넘어선 차 한 잔, 뉴욕 12말차

유행을 넘어선 차 한 잔, 뉴욕 12말차

유행을 넘어선 차 한 잔, 뉴욕 12말차

유행보다 깊이를 택한 뉴욕의 말차 전문점을 소개한다.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1층 카운터에는 맞춤형 정수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 © Michael Carbone

뉴욕은 요즘 말차 열풍이 불고 있다. 미국에서 말차가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15년 무렵, 소위 ‘힙스터’ 카페들이 말차를 활용한 음료와 디저트를 앞다투어 선보이면서부터다. 팬데믹 이후에는 소셜 미디어를 타고 ‘젠지 세대’의 트렌디한 음료로 떠오르며 도심 곳곳에 말차 전문점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그럼에도 차의 본질에 충실한 곳은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맨해튼의 노호 NoHo에 지난 4월 문을 연 12말차 12Matcha는 유행과 조금 다른 속도로 움직인다. 교토 근교 우지에서 5대째 차를 재배해온 홋타 가문과 일본 최고의 차 감정사 하루히데 모리타가 손잡고 차 한잔에 담길 맛과 향을 빚어냈다. ‘12’라는 숫자는 별자리와 영적 상징, 그리고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는 12Hz 뇌파에서 착안했다. 매년 첫 수확한 찻잎만 손으로 따서 섬세하게 볶아, 차 본연의 풍미와 향을 지키는 데 집중한다.

지하 테이스팅 룸. 은은한 조명 속에서 집중도 높은 시음을 즐길 수 있다. © Michael Carbone

말차 바스크 치즈 케이크. © Michael Carbone

시그니처 말차 라테. © Michael Carbone

공간 설계는 파리의 디자인 스튜디오 시귀 Ciguë가 맡았다. 19세기 말 지어진 주철 건물을 개조하며, 번잡한 도시 한가운데에서도 차를 마시는 고요함과 집중의 미학을 젠 Zen 감각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하나도 쉽게 얻어지는 것이 없는 말차 제조 과정처럼 이들 역시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 시귀 팀은 직접 우지를 찾아가 차밭과 생산 현장을 둘러보고 다도에 참여했다. 그렇게 몸으로 익힌 경험을 설계에 녹여 불필요한 장식 대신 맛을 최적화하는 공간을 완성했다. 밝고 산뜻한 분위기의 1층에는 표면을 매끄럽게 마감한 짙은 녹색 라바 스톤 바 카운터가 길게 놓이고, 그 위 차 사발과 차선이 가지런히 자리한다. 옆에 나란히 놓인 대형 유리 용기 안에는 활성탄을 이용해 물맛을 조율하는 맞춤형 정수 시스템이 마련됐다. 지하에는 원목 가구 좌석을 넉넉히 배치했고, 은은한 조명의 테이스팅 룸에서는 한층 집중된 시음을 즐길 수 있다. 빠른 유행을 좇아 겉모습만 흉내내는 말차 스토어가 늘어나는 가운데, 12말차는 우지에서 보고 익힌 맛과 과정을 느리고 진득하게 지켜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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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민(뉴욕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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