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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첫 비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 레귬을 시작으로
뻗어나갈 한국 채식요리의 새로운 지평.

메인 메뉴 아위 버섯 요리는 스테이크처럼 표고 리덕션을 발라가며 구워내 자연 본연의 흙내음을 극대화했다.

육류와 해산물 중심이던 한국 미식 신에 낯선 파동이 일고 있다. 그 한가운데엔 2025년 아시아 최초 비건 미쉐린 스타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올린 레귬의 성시우 셰프가 있다. 지난 2월 열린 미쉐린 가이드 시상식에서, 그는 지속 가능한 미식을 실천하는 레스토랑에 수여하는 ‘그린 스타’ 상을 예상하며 행사에 참석했다. 요리의 훌륭함을 증명하는 ‘레드 스타’ 상은 그에게도 뜻밖의 일이었다. “기쁨과 놀라움, 중압감 등 여러 감정이 교차했어요. 한국에서 비건 요리가 여전히 생소한 장르로 분류되는 걸 알면서도 저를 믿고 함께해준 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동시에 그간의 노력과 요리 철학을 인정받은 듯한 격려로 느껴졌습니다.”

정갈하게 정돈된 레귬 매장 전경.
레귬을 총괄하는 성시우 셰프.

성시우 셰프가 처음 채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어머니의 육류 알레르기였다. “가족 경조사는 매년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갈 만한 식당이 없었어요. 어쩌다 고깃집을 가게 되면 항상 밥에 밑반찬만 드시는 어머니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죠. 제가 요리사가 된 이후에도 제가 일하는 레스토랑에 못 오신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더라고요.” 그렇게 성시우 셰프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채식으로 향했다. 메뉴 개발과 코스 구성에 있어서도 채소 요리가 주축이 되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이를 연구하기 시작한 10여 년 전만 해도 한국은 ‘채식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깊게 공부하고 싶어도 배울 곳이 전무했기에 직접 다양한 품종의 채소와 과일을 맛보고, 조합을 시도하는 등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지금의 레귬. “메뉴 개발은 항상 어렵지만, 스트레스보다는 재미로 다가와요. 채식에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 한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집중 할 수 있는 부분이 명확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기존 음식을 식물성 재료로 재현하기보다는 생소한 재료나 색다른 조합으로 개성 있는 맛을 선보이고 싶어요.” 제한된 재료로 무한한 가능성을 찾아내는 과정은 그의 창의성을 더욱 예민하게 자극한다. 치즈 대신 견과류를 그라인드해 올린 레귬의 파스타 메뉴만 보아도 성시우 셰프가 얼마나 치열하고 집요하게 맛을 탐구해 왔는지 알 수 있다.

두유로 만든 비건 요거트를 곁들인 무화과 샐러드.
직접 담근 아스파라거스, 쿠카멜론 장아찌와 버섯 젓갈.
성시우 셰프의 채식 레시피가 담긴 책 <더 비건 팬트리>가 매장 한쪽을 장식한다.

레귬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지속 가능성이다. 지역 농가에서 직접 수확한 식재료를 사용해 탄소 발자국을 줄이고, 음식물 쓰레기를 최소화하는 제로 웨이스트 레시피를 추구한다. 식기 일부는 업사이클링된 작품을 활용하기도 한다. “자연과 사회에서 무한한 자원과 영감을 얻는 요리사로서, 제가 속한 생태계와 공동체에 대한 환경적,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싶습니다.”일반적인 농작물 형태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로 외면받기 쉬운 ‘못난이 채소’를 활용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애초에 못난이 채소가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형태나 크기만 조금 다를 뿐이지 맛이나 향, 식감 어느 하나 부족함 없는 똑같은 채소일 뿐인데 말이죠.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단지 상품성이 없다는 이유로 외면받는다는 사실이 안타까웠어요. 음식은 누가 어떻게 요리하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이러한 채소를 최대한 활용하고 발굴해서 가치 있게 쓰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드 톤의 인테리어가 특징인 레귬의 매장과 테이블.

레스토랑 이름 레귬은 프랑스어로 ‘채소’를 뜻한다. 단순하고 직관적이지만, 그만큼 이곳의 정체성을 명확히 드러내는 단어다. 레귬이 아시아 최초이자 유일한 미쉐린 스타 비건 레스토랑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보람을 주는 동시에 일종의 사명감을 부여한다. 이곳을 통해 한국 농산물의 품질, 품종의 다양화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만들어지기 바라는 마음도 있다. 나무 형상의 레스토랑 로고는 그 바람을 여실히 반영한다. “레귬의 첫 글자 ‘L’이 뿌리 역할을 하는데, 채식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곳에서부터 뻗어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어요. 그 과정에서 ‘채식도 훌륭한 미식 경험이 될 수 있다’는 우리 주장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는 분들이 더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요리에 사용되는 ‘못난이 채소’들.
병아리콩을 주재료로 한 뇨키 파스타 요리.
지속 가능성을 추구하는 브랜드 오브젝티파이와 협업해 제작한 차저 플레이트.

미쉐린 스타를 받은 지 약 7개월이 지난 현재, 요리사로서 성시우 셰프의 여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도 채식이 평범한 일상식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면 해요. 레귬이 채식에 관한 인식을 바꾸는 시작점이 되었다면,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분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대중적인 채식 레스토랑도 구상해보고 싶습니다. 나아가 너무 한 분야에 구애되지 않고 더 많은 분들과 소통하면서 긍정적인 영향력을 더욱 널리 끼칠 수 있는 셰프가 되고 싶어요.” 채소 뿌리처럼 단단하게, 그러나 계절마다 새로운 잎을내듯 확장하는 여정. 성시우 셰프가 심은 작은 씨앗은 이제 막 싹을 틔웠고, 그 싹이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지는 앞으로의 시간이 알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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