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정성 들여 완성한 기분 좋은
산미와 감칠맛을 가진, 발효 레스토랑 세 곳.




계절의 산미, 아그네
한남동 조용한 골목에 문을 연 아그네는 1세대 내추럴 와인바 빅라이츠의 전성기를 이끈 최민관 셰프가 처음 선보이는 공간이다. 일본식 감수성과 프렌치의 감각이 자연스럽게 섞인 재패니스 프렌치 레스토랑으로서, 팜투테이블을 지향하며 매일의 리듬에 맞춰 가장 신선한 제철 식재료를 다정하게 풀어낸다. 곳곳에서 발견되는 락토 발효와 절임, 피클의 사용은 산미와 질감의 조합을 훨씬 더 풍부하게 만든다. 가장 먼저 만난 계절채소 크루디테는 아그네가 지향하는 자연주의의 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메뉴다. 국내에서 흔히 보기 힘든 미즈나스(물가지), 자색 감자와 옐로 비트, 오이꽃과 순무잎이 한 접시에 모이고, 스페인 아호블랑코에서 영감을 얻은 마카다미아 소스가 부드럽게 감싼다. 이어서 숯에 구운 덕자병어를 맛보았다. 쌀 누룩으로 만든 코지 소스를 곁들여 특유의 발효 향이 은은히 감돈다. 산미가 살짝 들어와 생선의 담백함을 끌어올리고, 부드럽게 갈아낸 콜리플라워 퓨레와 락토 발효한 재료들의 쨍한 맛이 균형을 잡는다. 우메보시가 남기는 긴 여운까지 자연스럽다.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계절미식 참외 소르베. 전나무를 끓여 만든 시럽에 참외를 졸여 은근한 나무 숯 향이 더해졌는데, 여름과 숲의 기운이 동시에 스쳐 지나간다. 화이트 초콜릿 크림이 고요하게 단맛을 보완해 마무리로 손색이 없었다. 추가로 주문한 브리오슈 프렌치 토스트는 직접 구운 브리오슈를 도톰하게 구워낸 뒤 제철 과일 콩포트를 더한다. 방문 당시에는 무화과가 함께 올라왔다. 폭신하고 풍미가 좋았지만 앞선 코스가 워낙 가볍고 상쾌한 흐름이라 디저트로는 결이 살짝 달라 보이는 편. 음료는 1인 1잔 주문이 필수인데, 블루베리 루이보스 콤부차와 그린티 모두 추천할 만하다. 특히 그린티는 멜론 조각이 들어가 이색적인 향과 단맛이 남는다. 발효의 산미와 생채소의 싱그러움, 그리고 일본식 미학이 자연스럽게 교차하는 아그네는 계절의 표정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곳. 잔잔하지만 오래 남는 식사의 리듬이 인상적이었다.
INSTAGRAM @agnerestaurant



식탁 위 올린 발효의 결, 퍼멘츠
‘발효하다’는 의미를 지닌 영어 단어 퍼멘트 Ferment에서 착안한 이름처럼, 퍼멘츠는 발효 비건 음식과 핸드메이드 로우 콤부차를 선보이는 용산의 레스토랑이다. 이곳의 음식은 화학 조미료나 인공첨가물을 사용하지 않고, 직접 발효한 식물성 재료 기반으로 만든 덕에 건강하고 속 편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낮에는 카페로, 저녁에는 내추럴 와인바로 운영되는 곳인데, 평일 저녁에도 공간이 꽉 찰 정도로 높은 방문율을 자랑한다. 한국에서 비건 레스토랑이 쉽게 자리 잡기 어려운 현실을 고려하면 새삼스레 그 인기가 더욱 실감된다. 건강한 음식과 차별 없는 따뜻한 공간,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추구하는 퍼멘츠의 지향점에 공감해 방문하는 이들도 많겠지만, 또 다른 비결은 결국 맛 자체에 있다. 오랜 젖산 발효를 통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깊은 풍미와 은은한 산미, 그리고 특유의 감칠맛은 분명 이곳만의 시그니처. 모든 메뉴는 각기 뚜렷한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특히 눈길을 끈 것은 ‘구운 대파 후무스’와 갈릭 ‘머쉬룸 피자’였다. 먼저 서빙된 구운 대파 후무스는 진도산 대파를 콤부차 드레싱과 조리해 올린 메뉴로, 통호밀 깜빠뉴와 함께 제공된다. 깜빠뉴는 그 자체로도 고소하고 담백하지만, 대파 향이 진하게 밴 후무스를 더해 먹으면 그 풍미는 배가 된다. 특히 함께 올리는 구운 대파는 부드러운 질감이라 파 특유의 질긴 식감을 선호하지 않는 이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뒤이어 등장한 ‘갈릭 머쉬룸 피자’는 콤부차로 발효한 도우를 사용해 쫄깃하면서도 은은한 산미가 살아 있는 맛이 인상적이었다. 마늘과 버섯의 조합은 워낙 익숙하다보니 큰 기대는 없었지만, 콤부차에 마리네이드된 송화버섯 덕분인지 한 입에 감칠맛이 터졌다. 같이 제공된 발효 갈릭 머쉬룸 소스를 곁들여 먹으면 더욱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첨가물 없는 건강한 재료를 사용해서인지, 빵을 먹으면 속이 더부룩해진다던 동행인도 두 메뉴 모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다. 포근한 분위기의 인테리어는 마치 친구 아지트에 초대받은 듯한 편안함을 더한다. 다음엔 낮 시간에 방문해 직접 발효한 콤부차 한 잔을 맛보고 싶다.
INSTAGRAM @ferments.seoul

소박하고 속 편한 한 끼, 풀 발효부엌
속 편한 한 끼가 간절한 날에 찾은 망원동의 풀 발효부엌. 건강한 재료와 발효 조리법으로 만든 비건 메뉴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인데, 공간 분위기부터 음식까지 전반적으로 ‘힘을 뺀 담백함’이 흐른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듯한 친근한 인테리어와 밝고 친절한 직원들의 응대가 기억에 남는다. 자리에 앉으면 생강, 모과, 감초를 함께 우린 따뜻한 차와 바삭한 포카치아 한 조각이 웰컴 플레이팅으로 나온다. 메뉴를 찬찬히 정독하던 중 유독 눈에 띈 유기농 수제 콜라 메뉴. 정향과 계피, 후추, 팔각 등의 향신료와 유기농 비정제 설탕으로 수제청을 만들어 차이티의 아로마와 콜라 본연의 맛을 살린 수제 음료다. 은은하게 남는 계피 향과 아주 약한 탄산이 오히려 이곳 메뉴와 잘 어우러졌다. 메인으로는 발효 커리를 선택했다. 가지, 브로콜리 등 채소 중심이라 기름기 없이 깔끔하고, 소화가 잘 되어 편안한 맛이었다. 카레가 지나치게 진하거나 무겁지 않아서 끝맛이 산뜻하게 떨어졌던 기억. 양은 조금 아쉬웠지만, 회사 근처에 있었다면 점심 루틴에 바로 넣었을 만큼 꽤나 만족스러웠다. 다른 메뉴들도 전반적으로 채소와 발효 중심으로 정갈하게 나온다. 아쉽게도 혼자 방문했기에 옆 테이블을 힐끔거리며 본 바로는, 신선한 채소와 직접 만든 장류가 조화를 이루는 대표 메뉴 ‘보리밥 정식’, 버섯과 고사리 풍미가 살아 있는 ‘고사리 까르보나라’가 가장 인기 있는 듯했다. 여름 시즌에는 제주산 콩으로 만든 콩국수도 제공된다. 전반적으로 부담 없이 매일 먹을 수 있는 맛을 지향한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대 앞에 진열된 현미 요거트와 그린 올리브 포카치아도 구매해 두 손 가득 쥐고 나왔다. 음식처럼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라 이 또한 만족! 화려한 먹거리 사이에서 잠시 리셋하고 싶거나 소화하는 데 부담 없는 한 끼가 필요한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INSTAGRAM @abcpu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