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피라미드를 거꾸로 쌓은 듯 보이는 인도의 전통 저수지들이 몬순이 몰고 온 비로 가득했던 시절이 있었다. 세월은 그곳을 무너진 문명의 환영으로 변화시켰다.
다다르 하리르 Dadar Harir 우물 안에서 하늘을 쳐다본 모습. 의도적으로 빛의 우물로 개조된 것이다. 다섯 개의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깊이를 지닌 이 굉장한 유적은 구자라트 주의 아흐메다바드 Ahmedabad 마을 근처에 자리한다.
라자스탄의 자이푸르 Jaipur에 있는 나하르가 포트 바오리 Nahargarh Fort Baori는 18세기, 요새 옆에 건축됐다. 비대칭을 이루는 장미색 돌계단들이 물을 향해 내려간다. 마치 언덕 사면의 도랑처럼 말이다.
색다를 것 없는 흔한 문 앞에 선다. 별다른 기대 없이 문을 여는 순간, 신선한 바람이 불고 습한 냄새가 전해진다. 그 순간 덮쳐오는 엄청난 경이로움. 땅속 깊이 묻혀 있던 거대한 건축물과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인도의 북쪽, 구자라트 Gujarat나 라자스탄 Rajasthan에 가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작은 마을들 곳곳에서 계단이 있는 우물인 ‘바올리 Baoli’와 하늘로 활짝 열린 우물을 뜻하는 ‘쿤드 Kund’를 흔히 볼 수 있다.
긴 건조기가 끝나고 나서 몇 주간 몬순이 몰고 온 비가 내리면 대홍수가 나곤 했는데, 이 우물은 10세기부터 19세기까지 그 빗물을 모아두었던 곳이다. 마을마다 자리 잡은 수백 개 혹은 수천 개의 이 계단 우물은 인도의 국왕 라자 Rajah 시절에 건설됐다. 땅속에 조각된 끝없는 디딤판이나 아래로 깊이 내려가는 계단으로 이어지는 이 건축물은 이제 용도를 다했지만 예전에는 모임의 장소로 이용되곤 했다. 사람들은 물을 가득 채우거나 동네 소식을 듣고 샘의 신을 찬양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신에게 술을 바치고 의식을 행하고 줄지어 서서 예배를 드렸다. 이런 물의 축전은 돌에 새겨져 역사가 됐다. 오늘날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아찔한 현기증을 일으키게 만드는 텅 빈 공간처럼 보이는 땅속 건축물이다.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인도의 ‘계단 우물’은 몇 년 전부터 역사 유적으로 복원되고 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 덕분에 만들어진 문명의 놀라운 걸작이다.
건축적인 면에서 그리고 돌 조각 작업에서 놀라운 규모를 지닌 라니 키 바브 Rani Ki Vav는 구자라트의 파탄 Patan 마을에 있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라자스탄의 분디 Bundi 마을에는 여러 개의 ‘쿤드 Kund’가 있다. 쿤드는 윗부분이 하늘로 완전히 개방된 우물이나 저수지를 말한다. 다브하이 쿤드 Dabhai Kund는 가장 웅장한 곳 중 하나로 꼽힌다. 물이 부족해서 원래의 용도로 쓰이지 않고 버려진 사원이 되었다.
시대에 따라 저수지는 다양한 형태로 바뀌었다. 단순히 하늘로 활짝 열려 있고 계단이 조각된 웅덩이거나 이곳처럼 여러 개의 회랑과 계단을 갖춘 건축물 형태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