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크한 스테인리스 주방을 채우는 프렌치 빈티지와 일본 아르데코 오브제. 시대와 규칙을 넘나들며 다양한 테이블 모습을 완성하는 비주얼 디렉터 박은우 대표의 성수동 공간을 찾았다.

어떤 사람의 집은 그가 지나온 선택들의 합으로 완성된다. 비주얼 디렉터 박은우 대표의 성수동 공간은 취향이 어떻게 축적되고, 또 어떻게 다음 단계로 이동하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덕시아나, 에르메스 메종, 디올 메종, GFFG 등 다양한 브랜드 현장에서 공간을 다뤄온 그녀는 현재 독립해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운영 중이다. 이곳은 스튜디오이자 생활 공간, 사무실이라는 복합적인 성격을 지녔지만, 무엇보다 ‘지금의 박은우’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장소다. 성수동의 오래된 공장이었던 이 공간은 약 165m²(약 50평) 규모. 집과 사무실을 동시에 찾던 중 마음에 드는 선택지를 발견하지 못해, 아예 스스로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주방과 라운지를 가장 큰 비중으로 배치한 것도 그의 일과 생활 방식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내부는 전면 철거한 뒤 구조부터 다시 설계했다. 공간 디자이너로 일하는 친언니와 함께 도면 작업부터 현장 관리까지 직접 진행한 반셀프 인테리어였다. 스타일링을 넘어 공사 현장을 책임지는 역할은 처음이었지만, 그는 이를 하나의 실험이자 자신의 영역을 확장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5년간 머물던 성북동의 이전 집이 빈티지 가구와 원목 위주의 따뜻한 공간이었다면, 성수동에서는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블랙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중심으로 한 절제된 톤, 불필요한 장식을 덜어낸 구성. 생활 공간이지만 전시 공간처럼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그는 이를 ‘차갑다’고 말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미감은 곧 질서이며, 질서는 곧 안정으로 이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공간의 중심은 단연 주방이다. 테이블 스타일링, VMD, 키친 관련 프로젝트까지 그의 작업은 늘 ‘먹고, 놓고, 사용하는 장면’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마음에 꼭 드는 주방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프리미엄 브랜드는 과했고, 기성 제품은 미감과 비례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결국 주방을 직접 제작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완성된 올 스테인리스 주방은 그녀의 토털 키친 컨설팅 브랜드 ‘파이웍스 PhiWorks’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주방은 보여주기 위한 장치이자, 철저히 숨기기 위한 구조가 공존한다. 가전의 존재감은 최대한 지우고, 수납은 안쪽으로 감췄다. 손잡이와 로고 역시 최소화해 면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다. 문을 열어야 기능이 드러나는 구조는, 이 공간이 추구하는 태도를 명확히 보여준다.
주방 아일랜드 옆에는 별도의 수납실이 있다. 일명 ‘접시 방’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수년간 모아온 테이블웨어 컬렉션이 가득하다. 그녀가 특히 애정하는 덴마크 빈티지를 중심으로 프렌치 클래식, 아르데코 스타일의 오브제가 층층이 놓여 있다. 해외에서 직접 들여오거나 여행 중 발견한 물건, 오래 알고 지낸 셀러를 통해 구한 것들이다. 인상적인 점은 이 모든 기물이 장식이 아닌, 실제로 사용되는 물건이라는 것. 하나하나 집어 들며 일상 속에서의 쓰임을 설명할 때, 박 대표의 눈은 자연스럽게 빛난다. “지인들을 초대해 아름답게 플레이팅해 대접하는 걸 좋아해요.” 티포트와 와인 버킷이 유독 많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람을 초대하고, 음식을 내오고, 테이블을 완성하는 과정 자체가 그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영국 도예가 도허티 포슬린 Doherty Porcelain의 작품을 새로 들였다. 여기에 말차를 즐겨 마시는데, 함께 어우러진 찻자리의 도구들도 규칙보다는 감각에 따른다. 일본 다구와 프렌치 은식기, 빈티지 좌대처럼 서로 다른 문화권의 오브제가 한 테이블 위에서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거실 창가에는 천 년이 넘은 가야시대 토기와 자라 홈의 세라믹 오브제가 나란히 놓여있다. 시대와 맥락이 다른 사물들이 충돌하지 않고 하나의 풍경을 이루는 장면은, 박은우 대표의 취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 머문 지 1년이 조금 넘었지만, 공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오랫동안 사용한 원목 식탁 자리에는 유럽에서 곧 도착할 블랙 빈티지 테이블이 놓일 예정이다. 변화한 취향에 맞춰 적합한 가구를 찾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렸다. 계절과 취향의 변화에 따라 공간의 표정은 달라지고, 손이 가는 물건도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박은우 대표는 집을 완결된 결과로 남겨두기보다 사용하며 축적되는 과정으로 받아들인다. 완성을 서두르지 않는 태도는 이 공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취향은 그렇게 일상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