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은 경험을 확장하기도 한다. 케이터링 브랜드 플레이버 다이닝의 김도연 대표는 이야깃거리를 만들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요리를 한다.

경리단길 한적한 골목의 주택에 자리한 케이터링 브랜드 플레이버 다이닝에 들어서면 ‘주방’이라는 단어로는 다 담기 어려운 공간을 마주하게 된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파리에서 공들여 가져온 고가구를 그릇장 삼아 그 안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유럽의 빈티지 그릇과 소품, 그리고 프로젝트에 맞춰 제작을 의뢰한 그릇들이다. 마치 보석함을 열어둔 듯한 풍경 안에는 이곳이 음식을 만드는 공간일 뿐 아니라 이야기를 축적해온 작업실임을 보여준다. “제가 가장 아끼는 공간이에요. 유럽의 어느 그릇 가게를 상상하며 가구를 배치했어요. 마치 손님을 응대하듯이 그릇장을 배경으로 그 앞에 낮은 장식장을 두었죠. 언젠가 이런 모습의 가게를 열어보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김도연 대표는 일식 요리사이자 플레이버 다이닝의 셰프인 남편 안진석 셰프와 함께 케이터링 브랜드 플레이버 다이닝을 운영하고 있다. 케이터링은 레스토랑처럼 손님이 찾아와 음식을 먹는 구조가 아니라, 브랜드의 론칭 행사, 전시 오프닝, 패션 컬렉션 프레젠테이션, 갤러리 이벤트 등 특정한 순간과 공간을 위해 음식이 이동하는 일이다. 요리는 그 자체로 완결되기보다 하나의 경험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케이터링은 그날의 이벤트가 어떤 결을 가지고 있는지를 읽고, 그것을 음식으로 번역하는 작업이에요.” 그렇게 플레이버 다이닝의 음식은 늘 맥락 속에 놓인다. 그가 케이터링을 정의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는 ‘오감’이다. 얼마 전에는 이불 작가의 전시 <이불: 1998년 이후> 케이터링을 위해 전시를 충분히 보고 난 뒤, 작품에서 받은 인상을 디저트로 풀어냈고, 작가의 고향과 연관된 식재료를 메뉴에 반영했다. 전시를 보러 온 이들이 ‘초대받았으니 먹는 음식’이 아니라, 전시의 연장선에서 음식을 경험하기 바랐기 때문이다. “음식도 전시의 결로 이어졌으면 했어요. 시각적인 경험이 미각으로 확장되면서, 관객들이 더 많은 감정을 느끼기 바랐죠.”


김도연 대표의 시작은 음식이 아닌 금속공예다. 요리는 취미로 시작했지만, 점차 업으로 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당시만 해도 케이터링이라는 영역은 지금처럼 정착되지 않았고, 배울 수 있는 곳도 많지 않았다. 그는 공예 작업을 하듯 ‘키워드를 요리로 바꿔’ 스스로 실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플레이버 다이닝이 ‘보여주는 음식’에만 머물지 않는 이유는, 디자인만큼이나 ‘맛’을 중시하는 태도에 있다. 김 대표는 식재료를 구하는 데에도 각별히 공을 들인다. 올리브 오일에 대해서는 오랜 연구 끝에 워크숍을 열 정도로 깊이 파고들었다. 단순히 몸에 좋다는 이미지가 아니라 품종과 산지, 용도에 따라 달라지는 풍미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기적으로 일본에 건너가 핑거푸드 수업을 듣고, 스콘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런던으로 향했으며, 마카롱이 궁금해 프랑스까지 공부하러 갔다. 미식에 대해 궁금한 영역이 생기면 언제든 직접 눈으로 보고, 맛보고, 배운다.



맛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주는 데에는 남편 안진석 셰프의 역할이 크다. 일식 요리사로 오랜 시간 주방을 지켜온 그는 플레이버 다이닝에서 조리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김 대표가 음식의 디자인과 콘셉트를 구상한다면, 안 셰프는 그 아이디어가 현장에서 가장 맛있는 상태로 구현될 수 있도록 균형을 맞춘다. 두 사람의 협업은 역할을 나누는 데서 끝나지 않고, 기획 단계부터 테이스팅과 수정까지 끊임없이 교차하며 완성도를 높인다. 플레이버 다이닝이라는 이름에는 그 확신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 대표는 “향신료와 허브를 좋아해 ‘플레이버’라는 단어를 떠올렸지만, 동시에 사람들이 모였을 때 생기는 따뜻한 분위기, 사람 냄새 나는 순간을 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음식은 혼자 먹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만들고 나누며 완성된다는 생각, 그 믿음이 브랜드의 중심에 있다.


이 주방에서 또 하나 중요한 장면은 ‘스텝밀’이다. 김 대표와 남편 안 셰프, 그리고 팀원들은 매일 식사를 함께 한다. 남은 재료를 처리하는 식사가 아니라, 스텝밀을 위해 따로 재료를 주문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그는 이 시간을 “나를 위한 요리이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태어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매일 다른 음식을 해 먹고, 새로운 식재료를 먼저 경험해보는 일은 그에게 큰 즐거움이자 공부다. 제철 재료를 요리하고 언제라도 좋아하는 사람들을 불러 함께 나눌 수 있는 삶. 그래서 이들은 먹고 싶은 재료가 생기면 친구를 초대하고, 둘이서는 감당할 수 없는 양과 다양성을 ‘모임’으로 해결한다. 요리가 있어서 모이고, 모이기 때문에 또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경리단길 주택가의 이 조용한 주방에서, 김도연 대표와 안진석 셰프는 오늘도 음식으로 사람과 공간, 경험을 연결하고 있다. 플레이버 다이닝의 케이터링은 그렇게 기억에 남는 순간을 완성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