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앙리 마르탱 스트리트의 1930년대 아르데코 아파트. 로돌프 파렌테는 두 개의 공간을 하나로 엮어, 절제와 장인정신이 공존하는 오늘의 파리지앵 주거를 완성했다.

모던 디자인 가구와 아르데코 빈티지가 어우러진 거실. 부채꼴 벽등은 유명 아르데코 디자이너 자크-에밀 룰맨의 작품이며, 갤러리 자크 라코스트에서 구입했다. 그 아래 암체어는 피에르 폴랑, 커피 테이블은 필리포 카란디니 디자인.

벽난로와 소파, 커피 테이블은 로돌프 파렌테가 직접 디자인해 제작한 것. 암체어는 미셸 뒤페 디자인으로 갤러리 자크 라코스트. 왼쪽의 커다란 화병은 하이메 아욘 디자인으로 갤러리 크레오.

1930년대 파리는 화려한 장식보다 비례와 구조, 기하학적 질서로 우아함을 정의하던 아르데코 건축이 도시 풍경을 바꾸던 시기다. 파리 중심부에 자리한 주거 공간 ‘앙리 마르탱 Henri Martin’은 바로 그 시대에 지어진 아르데코 건물 안에 자리한다. 파리 기반의 인테리어 디자이너 로돌프 파렌테 Rodolphe Parente에게 이 역사적 배경은 단순한 스타일의 레퍼런스가 아니라, 프로젝트 전체를 관통하는 시작이었다. “1930년대에 지어진 아파트라는 이 건물의 역사적 맥락은 제약이 아니라 출발점이었어요.” 총 430㎡ 규모의 이 프로젝트는 서로 분리되어 있던 두 아파트를 하나의 집으로 통합하는 작업에서 시작했다. 그는 처음 이 공간을 마주했을 때, 기존 볼륨이 지닌 힘과 유연한 동선 구성의 가능성을 직관적으로 느꼈다고 말한다.


1층은 현관을 중심으로 더블 리빙룸, 주방과 다이닝룸, 서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2층에는 마스터 베드룸과 욕실 및 드레스룸, 라이브러리, 그리고 각각 욕실을 갖춘 침실이 세 개 있다. 공적, 사적 영역은 명확히 나누면서 전체 공간은 하나의 흐름처럼 이어진다. 클라이언트의 요청은 분명했다. 자신의 삶의 방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집. 사람을 맞이하기에 열려 있으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함께 살아가며 점차 완성돼가는 집이기를 원했다. 이를 위해 파렌테는 각 요소가 마치 처음부터 이 건물의 일부였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지도록 했다. 기존 창호처럼 중요한 요소는 그대로 유지했고, 바닥과 벽난로, 목공 디테일은 단순한 복원이 아닌 현대적인 해석으로 접근했다. 맥락을 존중하되 과거를 모방하는 데 머물지 않는 것. 2년에 걸친 작업 과정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충분히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을 허락했고, 그 결과 차분하면서도 깊이 있는 주거 공간이 완성됐다.

파렌테에게 아르데코는 장식의 문제가 아니라 비례와 구조가 지닌 우아함에 관한 언어다. 그는 이를 절제된 방식으로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곡선은 부드러움과 움직임을 만들고, 기하학은 구조와 안정감을 부여합니다. 현대적인 선을 기본으로 하되, 곡선과 촉감이 살아 있는 소재로 부드러움을 더했어요.” 각 공간은 소재와 빛의 변화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하나의 ‘안무’처럼 구성되었다. 대칭은 고요한 균형감을 만들어주고, 특히 동선 공간에 사용된 곡선은 더욱 유연하고 감각적인 경험을 완성한다. 그 덕분에 공간은 경직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른다. 벽 패널링의 리듬과 기하학적 구성, 래커와 브론즈, 다크 오크의 조합 속에서 아르데코의 레퍼런스는 은은하게 드러나되, 과감한 절제를 통해 시대를 초월한 분위기로 정제됐다. 소재 선택 역시 아르데코 건축이 지닌 깊이를 현대적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모든 표면은 텍스처와 빛을 머금는 방식에 고려했고, 브라스와 브론즈, 대리석 등 시간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에이징되는 소재들을 사용했다. 목표는 럭셔리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깊이와 밀도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자연광은 톤과 마감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였고, 인공 조명은 거의 드러나지 않을 만큼 절제된 방식으로 배치됐다. 맞춤 가구는 건축과 가구 사이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핵심 요소였다. 마치 원래 이곳에 존재했던 것처럼 보이도록 동일한 규율 아래 디자인되었는데, 정확한 비례와 절제된 대칭, 그리고 넉넉한 곡선을 기준 삼았다. 목공, 래커, 석재 가공 등 장인의 손길은 가구를 하나의 오브제가 아니라 건축적 요소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이 프로젝트의 정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요소는 두 개 층을 연결하는 조형적인 계단이다. 커다랗게 흐르는 나무 리본처럼 공간을 관통하는 계단은 선박 제작자의 정교한 기술로 완성됐다. 기술적이면서도 시적인 이 계단은 파렌테가 이 집에서 구현하고자 한 태도를 응축해 보여준다.




대리석과 짙은 오크 우드로 마감한 욕실. 골드 수전과 조명이 우아한 분위기를 더한다.

대리석과 짙은 오크 우드로 마감한 욕실. 골드 수전과 조명이 우아한 분위기를 더한다.

오늘날 그가 생각하는 ‘파리지앵의 우아함’에 대해 묻자, 그는 ‘절제’라는 단어로 답했다.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균형의 미학. 로돌프 파렌테가 앙리 마르탱에서 완성한 것은 아르데코의 재현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 맞게 조율된 태도에 가깝다. 1930년대 건축이 지닌 비례와 구조적 우아함은 절제된 개입을 통해 현재의 언어로 다시 쓰였고, 그 결과 공간은 어떤 장면을 연출하기보다 일상의 흐름을 조용히 받아들인다. “이 집은 일상의 리듬을 위해 설계되었습니다. 하루 동안 변화하는 빛의 흐름, 손끝으로 느껴지는 재료의 질감, 방과 방 사이의 조용한 전환까지 모두 포함해서요.” 특별함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곁에 오래 머무는 집. 파렌테가 말하는 파리지앵의 우아함은 바로 이런 방식으로, 삶 속에 스며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