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홍콩에서 열린 아시아 최대 규모 라이프스타일 페어 ‘홈 인스타일’에 다녀왔다. 지속 가능한 소재와 문화적 로컬리티, 그리고 실버 세대를 위한 기술 등. 올해 전시가 보여준 미래 라이프스타일의 세 가지 키워드와 가장 인상적인 브랜드들.

Theme 1
Cultural & Creative
올해 홈 인스타일 Home InStyle에서 목격한 신선한 에너지는 단연 로컬 디자인의 귀환을 보여준 ‘컬처럴 앤 크리에이티브 애비뉴’였다. 이들은 전통 문화를 장식적으로 차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 지역의 조형 언어를 동시대적 라이프스타일 스펙트럼 안으로 영리하게 끌어들였다.
브루탈리즘 커피머신

샌프란시스코 기반의 안자 스튜디오 Anza Studios는 도시 특유의 깊은 커피 문화에서 출발해, 늘 비슷한 형태로 소비되던 에스프레소 머신의 디자인 언어에 새로운 변화를 시도했다. ‘R2 콘크리트’는 핸드 캐스트 콘크리트의 거친 질감과 건축적인 조형미를 강조한 커피 머신으로, 기능적 가전을 마치 브루탈리즘 건축을 축소해놓은 오브제처럼 풀어냈다. 나무 몰드에서 수작업으로 제작해 표면마다 미세하게 다른 질감이 드러나는 점도 흥미롭다. WEB www.anzacoffee.com
홍콩 전통 모티프의 재해석




홈 인스타일에서 가장 눈에 띈 프로젝트는 홍콩 디자인 연구소 Hong Kong Design Institute가 선보인 특별전시 <2nd MOTIFX>였다. 중국 전통 모티프와 한자의 조형 언어를 현대적인 패턴과 리빙 디자인으로 재해석하는 프로젝트로, 올해는 한자 부수 ‘풀 초(艹 )’와 자연에서 출발한 초현실적 정원을 테마로 선보였다. 홍콩 도자 브랜드 바이레오나 ByLeona는 그래픽 패턴을 적용한 홈 컬렉션을 공개했고, 한국의 곽철안 작가 역시 특유의 조형 언어를 담은 작업으로 참여해 반가움을 더했다. 그중 가장 눈길을 끈 인물은 홍콩 기반 아티스트 신시아 막이었다. 그래픽적인 패턴과 대담한 색채를 기반으로 작업해온 그녀는 에르메스 홍콩 윈도 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다양한 브랜드 협업으로 주목받아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차 문화에서 영감을 받은 조명 디자인을 처음 선보였다. INSTAGRAM @motifxhk
INTERVIEW
신시아 막 Cynthia MAK

‘티 램프 Tea Lamp’는 어떻게 시작된 작업인가요? 어릴 때 차는 그저 자연스럽게 마시는 일상의 일부였어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가 가진 복합적인 향과 문화, 그리고 그 안의 의식 같은 순간에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닌 감정과 사유를 담아내는 매개체처럼 다뤄보고 싶었어요.
‘인생은 차와 같다. 처음엔 쓰지만 결국 달콤해진다’는 메시지는 어떻게 시각화했나요? 저에게 인생의 ‘쓴맛’과 ‘단맛’은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연결됩니다. 힘든 시간은 어둠으로, 희망은 밝은 빛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램프라는 오브제를 선택했습니다. 빛 하나만으로도 공간의 분위기와 감정이 달라질 수 있으니까요.
회화 중심 작업에서 입체 오브제로 확장한 점도 흥미롭습니다. 캔버스에서 3차원 형태로 옮겨가는 과정은 굉장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특히 홍콩의 목공 장인과 협업하며 LED 구조나 케이블을 보이지 않게 숨기는 방식 같은 기술적인 부분을 많이 배웠습니다. 산업 디자인과 전통 공예, 그리고 제 시각 언어를 하나로 결합하는 과정 자체가 무척 흥미로운 도전이었어요.
홍콩이라는 도시는 작업에 어떤 영향을 주나요? 홍콩은 동서양 문화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도시예요. 그래서 제 작업에도 서구적 그래픽 감각과 중국 전통 모티프가 함께 존재하는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섞으려 했다기보다, 제 정체성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에 가까워요.
올해 한국에서 여는 첫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죠. 6월에 파라다이스시티 아트 스페이스에서 개인전을 선보입니다. 인간의 감정이 현실과 상상의 공간 속에 어떻게 머무는지 탐구하는 전시예요. 회화와 조각은 물론 타이 핑 카펫, 홍콩 크리에이티브 듀오 스티키라인과 협업한 대형 설치작도 공개할 것이라 저 역시 무척 기대하고 있습니다. INSTAGRAM @cynthiamakstudio
Theme 2
Gerontech
고령사회로의 진입과 함께, 노년층의 삶의 질과 돌봄을 개선하기 위해 노년학(Gerontolog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제론테크’ 역시 리빙 산업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페어에서 포착한 변화는 집이 단순히 휴식처를 넘어 신체 변화를 감지하고 일상을 보조하는 플랫폼으로 확장되는 현상이다. 홍콩 혁신기술위원회 지원 아래 마련된 제론테크 파빌리온에서는 노인공학이 더 이상 병원이나 요양원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첨단 기술은 투박하고 차가운 의료기기가 아닌, 공간의 미학을 해치지 않는 리빙 오브제의 모습으로 구현되고 있었다.
좁은 계단에도 설치 가능한 리프트

갈라 골드 홍콩 Gala Gold Hong Kong이 소개한 핸디케어 Handicare의 휠체어 리프트. 폭이 좁은 계단에도 설치 가능하도록 설계된 제품으로서, 수동 회전 시트와 안전 센서를 탑재했다. 3D 스캐닝 기반 맞춤 설계를 통해 공간에 맞춰 정밀하게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하다는 것 역시 특징이다. WEB www.galagold.hk
시니어를 위한 스마트 워치

홍콩 기반 라이브스마트 테크 LiveSmart Tech가 선보인 ‘Robo-e’ 스마트 워치는 시니어 케어에 특화된 스마트 헬스 디바이스다. 24시간 심박수와 혈중 산소포화도(SpO₂), 걸음수, 수면 상태 등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며, GPS 위치 추적과 원터치 SOS 기능을 통해 응급 상황 발생 시 즉시 보호자 및 24시간 지원 센터와 연결된다. 특히 낙상 위험이나 이상 징후를 빠르게 감지해 대응할 수 있도록 설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복잡한 조작 대신 직관적인 인터페이스와 큰 디스플레이를 적용해 고령 사용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점 역시 흥미로웠다. WEB robo-e.com
돌봄 인력을 위한 스마트 모빌리티

링난대학교와 유엔 허브가 공동 개발한 ‘크루 휠체어 CREW Wheelchair’ 역시 눈길을 끌었다. 휠체어 이동 시 돌봄 인력의 부담을 줄여주는 AI 기반 스마트 보조 시스템으로, 사용자의 밀고 당기는 움직임을 실시간 감지해 자동으로 동력을 보조한다. 별도의 조작 장치 없이 자연스럽게 작동하며, 경사나 지면 상태에 따라 움직임이 조정 가능했다. 기존 수동 휠체어를 스마트 모빌리티 기기로 확장한 사례다. WEB www.ln.edu.hk
모듈형 운동 시스템

홍콩 기반 테크 기업인 스캔 인피니티 Scan Infinity의 ‘테크핏X TechFit X’는 운동과 게임 시스템을 결합한 홈 트레이닝 솔루션이다. 하나의 유닛 안에서 다양한 운동 모듈을 교체해 사용할 수 있으며, AI 기반 데이터 분석을 통해 사용자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특히 시니어 세대가 좀 더 쉽고 직관적으로 운동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WEB www.techfitx.com
Theme 3
Innovative Material
균사체, 파인애플 레더, 종이 펄프 등. 지속 가능한 소재를 대하는 디자이너들의 태도가 한 단계 성숙해졌다. 이번 페어에 등장한 혁신 소재들은 기존 플라스틱이나 가죽의 ‘대체재’ 역할에 머물지 않고, 고유의 질감과 형태를 무기 삼아 그 자체로 완벽한 조형 언어가 되었다.
균사체로 만든 미래의 표면

태국의 머시 컴포지트 Mush Composites는 농업 부산물과 균사체(Mycelium)를 활용한 바이오 기반 타일과 조명을 선보였다. 균사체가 스스로 성장하며 만들어내는 유기적인 패턴과 질감을 그대로 살린 것이 특징. 같은 형태라도 미세하게 다른 표면을 만들어지며 자연 소재 특유의 생동감을 드러낸다. 기존 콘크리트나 석재보다 훨씬 가볍고 에너지 사용량 역시 적어 지속 가능한 건축 소재로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 WEB www.mushcomposites.com
재활용 플라스틱의 새로운 형태

홍콩 기반의 에디텍처 Editecture는 재활용 플라스틱 병과 병뚜껑 조각을 활용한 업사이클 체어 ‘reEDIT’와 모듈 조명을 공개했다. 모듈 구조 덕분에 다양한 형태로 조합과 확장이 가능하며, 가볍고 내구성이 뛰어나 대형 설치 작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올해 밀란 디자인 위크에서는 홍콩의 대나무 비계와 밀크티 폐기물을 활용한 체스 테이블을 선보이며 주목받기도 했다. 재활용 소재를 단순한 친환경 재료가 아닌 하나의 조형 언어로 확장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INSTAGRAM @re_edit_lab
재활용 가능한 페이퍼 트로피

세계 각국의 바이어들이 홍콩 기반 디자인 스튜디오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도록 마련된 ‘스마트 디자인 어워즈 2026’ 섹션. 그중 ‘워크시트 스튜디오 Worksheet Studio’는 지속 가능한 소재 연구를 이어오고 있는 디자인 스튜디오로, 재활용 종이로 만든 펄프 타일, 찻잎을 활용한 리사이클 가구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선보여왔다. 이번 전시에서는 모듈형 트로피 ‘RE:WARD’를 공개했다. 재활용이 어려운 플라스틱 트로피의 무분별한 생산에 질문을 던지는 프로젝트다. 레고처럼 자유롭게 조합 가능한 구조와 종이 펄프 특유의 질감이 묘하게 인상에 남았다. WEB www.worksheet.hk
Home InStyle 2026

홍콩에서 지난 4월 27일부터 30일까지 열린 홈 인스타일은 지금 아시아 라이프스타일 산업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현장이었다. 지속 가능한 소재와 로컬 문화의 재해석, 그리고 초고령사회를 대비한 제론테크까지. 올해 전시는 ‘다음 세대의 집’을 둘러싼 다양한 가능성을 입체적으로 펼쳐냈다. 홍콩무역발전국(HKTDC)이 주최한 이번 행사는 홈 인스타일, 기프트 & 프리미엄 페어, 패션 인스타일 등 총 7개 박람회가 동시에 개최됐다. 30개 이상의 국가 및 지역에서 약 5600개 기업, 134개국에서 약 9만5000명의 바이어가 방문했다. 글로벌 브랜드와 디자이너, 제조사와 바이어들이 한자리에 모여 새로운 비즈니스 흐름과 소비 트렌드를 공유하는 장면은 홍콩이 여전히 아시아 디자인과 글로벌 시장을 연결하는 허브임을 실감하게 했다. 빠르게 변화하는 라이프스타일 산업 속에서, 다음해 홈 인스타일이 또 어떤 새로운 ‘집의 미래’를 제안하게 될지 기대를 남긴다.
WEB www.hktdc.com/event/homeinstyle/e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