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깊이 파고드는 드립 커피의 향이 그리운 계절, 가을이다.
음악의 도시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는 비엔나에서
19세기에 만들어진 커피하우스에 닿는 일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향기로 가득 찬 타임머신을 타는 셈이다.
그렇게 우린, 지금 따뜻한 커피가 기다리고 있는 비엔나로 떠난다.








침대칸의 매트리스를 타고 바퀴 소리가 올라왔다. 가을에 떠나는 길이니 기차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종착역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소리는 어느새 잦아들고 이어폰의 볼륨이 자연스레 커지기 시작했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한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 3악장이 시작될 무렵 기차는 완전히 멈추었다. 유럽 사람들마저 부산을 떠는 걸 보니 비엔나에 도착한 게 분명했다. 두 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를 전부 만나지 못하고 내리는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어느새 차창을 넘어 코끝까지 밀려오는 비엔나의 커피내음에 그 아쉬움은 잊혀졌다. 플랫폼에 내리며 비엔나다운 음악이 흐르진 않을까 상상해보았다. 베토벤이든, 말러든 누구든 들려오길 바랐는데, 여느 유럽과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이다. 사람들을 헤치는 동안 역의 구조를 간단히 익히고 밖으로 나와 숙소로 향했다. 이번에는 숙소를 역에서 걸어서 당도할 수 있는 곳으로 예약을 했다. 떠날 때만이라도 교통수단의 속도감이 아닌 걷고 걸어 그것으로 도시의 끝을 기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생각은 많았지만, 숙소에 도착해서는 짐을 한쪽으로 던져둔 채 먼저 비엔나의 커피하우스로 향했다. 바흐의 작품에 ‘커피 칸타타’가 있다. 그 음악이 작곡되었던 1730년대부터 유럽 여러 도시에 커피하우스가 본격적으로 출현하기 시작했고 카페의 첫 손님은 늘 예술가들이었으며 그리고 극장의 관객들이 뒤를 이었다. 비엔나의 커피하우스도 마찬가지. 음악가들에 의해 뿌리를 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술가들의 놀이터 커피하우스, 카페 첸트랄
처음으로 도착한 카페 첸트랄(Cafe Central)은 1868년 처음 문을 열고 화려한 바로크풍의 건물로 미하엘 광장 인근의 헤렌세가 14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지켜온 세월만큼이나 높아 보이는 천장, 코린트 양식의 기둥, 오래된 두 장의 그림, 그리고 이곳을 밝히는 이국적인 샹들리에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문앞에는 이곳의 단골이었던 보헤미안 문인 알텐베르크가 밀랍인형으로 아직도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가 들고 있는 쟁반에는 메뉴판이나 알텐베르크를 위한 팁이 놓이기도 한다. 카페 첸트랄은 한마디로 예술가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과거 화가 클림트가 그의연인과 자주 이곳을 찾곤 했을 정도로 말이다. 카페 안에 들어서니 “담배 연기 자욱한 카페의 한복판에서도 그의 눈에는 산골의 일출과 빛나는 바다가 보였다”라는 동료 문인이 알텐베르크를 묘사하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얼마나 카페 첸트랄에 애착을 보였는지, 당시 예술인들에게 커피하우스가 어떤 의미였는지 추측해볼 수 있다. 이곳에서 ‘오트만의 음료’라 불리는 커피를 마셨다. 1684년 오스만 투르크의 공격이 끝나고 그들이 남겨놓은 커피원두로부터 비엔나의 커피가 시작됐기 때문에 오트만의 음료라 부르기도 한다.
‘고독의 자오선’이라고 불린 카페 첸트랄에는 문인 말고도 말러, 쇤베르크 등의 음악가, 건축가인 바그너와 로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도 단골이었다. 그중 한 명인 포르거는 카페 첸트랄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카페 첸트랄은 비엔나의 위도와 고독의 자오선이 교차하는 지점이다. 그곳을 찾는 사람은 대부분 혼자 있기를 바라면서도 동료를 필요로하고 인간에게 적의를 품으면서도 사람을 찾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거기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사람들만이 그 기묘한 카페의 가장 고유한 매력을 공유한다.” 어쩌면 커피하우스의 고유한 매력은 커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을 맺어야 하는 것이리라. 카페 첸트랄을 나오는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 그녀가 만나러 오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외롭다면 카페로 가자”라는 알텐베르크의 말이 생각났다.




소통을 가능케 하는 곳, 비엔나의 커피하우스
비엔나의 유명 커피하우스 중 하나인 카페 란트만(CafeLandmann), 이곳은 무려 1873년경부터 커피를 내리기 시작한 곳이다. 비엔나 시청 건너편에 위치한 카페 란트만은 가장 번화한 곳에 위해서인지 유명 인사의 인터뷰가 종종 진행되기도 한다. 힐러리, 비틀즈의 멤버였던 폴 매카트니 등 예나 지금이나 셀러브리티의 방문도 끊이지 않는다. 또 이곳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드의 단골 카페이기도 했다.설에 의하면 프로이드는 이곳에 앉아 있다가 불현듯 꿈의 의미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그 혼자서 이루어낸 일은 아니었다. 프로이드는 카페 란트만에서 자신과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 예를 들어 문화, 음악, 그림, 신화, 연극 등의 예술가들과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그의 이론을 다듬어갔다. 그리고 이 모든것이 모아지고, 발전하여 지금의 정신분석학이 되었다. 한마디로 카페 란트만은 프로이드의 생각을 전파할 수 있는 이상적인 광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카페 란트만의 핵심은 이야기, 즉 소통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사람과 사람의 소통이 없었다면 프로이드는 집착이 강한 궤변론자로 남아 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비엔나에는 비엔나 커피가 없다는 말이 있다. 몇몇 카페의 메뉴판에는 간혹 편의상 비엔나 커피라고 표기되기도 하지만 카페 란트만에서는 비엔나 커피와 가장 흡사한 ‘아인슈페너(Einspanner)’를 주문할 수 있다. 비엔나 커피의 원조격인 이 메뉴는 이곳 카페 란트만에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아인슈페너는 크림이 살짝 녹기를 기다렸다가 같이 음미하는 것이 정석. 그 모양새나 만드는 방식은 커피하우스마다 조금씩 다르니 비교하면서 마셔보는 것도 비엔나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듯하다. 식사 때가 아니라면, 이곳의 마블 케이크도 맛보길 추천한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엔나의 매력
하우스와 세련된 브랜드의 커피 체인점 말고도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커피하우스들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비엔나의 매력은 커피하우스에서만 끝나지 않는다. 음악의 도시라는 칭호가 부끄럽지 않게 귀로만 듣던 유명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오페라의 공연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벨베데레 궁전과 1997년에 새롭게 완공한 박물관 지구의 레오폴드 미술관과 현대미술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감상거리이다. 멋스러운 건축물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에곤 쉴레와 클림트의 컬렉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엔나의 대표적인 재래시장인 나슈막트(Naschmarkt)에서는 다양한 물건과 사람들의 표정으로 발걸음이 훨씬 가벼워진다. 토요일엔 벼룩시장도 열리니 오래된 빈티지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다. 비엔나는 수도로서는 이례적으로, ‘그린칭’이란 지역에서 와이너리를 방문할 수도 있다. 이곳 포도밭 사잇길로 오르면 바로 비엔나(빈숲) 전망대로 연결되는데 포도밭과 비엔나 시내 그리고 도나우 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질녘, 비엔나 전망대 카페에서 주문한 커피가 테이블에 놓였다. 깊이 있는 향을 풍겨오는 커피를 조용히 바라보고 있자니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라고 말했던 알텐베르크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