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의 지원을 받아 제작 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공예 · 디자인문화진흥원(KCDF)이 주관하는 ‘우수공예품 지정제도’에 선정된 올해의 작가 5인을 만났다. 전통 기술을 토대로 새로운 조형 언어를 구축해온 이들은 한국 공예의 깊이와 감각을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다.

“성실하게 시간을 들이면, 그만큼의 숙련도가 결국 눈에 보이는 결과로 나타나는 작업이라는 점이 좋아요.” 김수연, 천욱환 작가는 도자 작업의 매력을 이렇게 말한다. ‘시간이 고스란히 표면에 남는 일’. 두 작가는 빠른 변화나 즉각적인 성취보다는, 정교함을 축적해가는 속도를 택한다. 이 도예가 부부는 2023년부터 강원도 양구백자박물관에서 백자를 중심으로 한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대 도예과 대학원을 수료한 뒤, 학교와 MOU를 맺은 이 공간에서 작업을 시작한 지 2년. 같은 공간에서 나란히 작업하지만, 두 사람의 관심사는 분명히 다르다. 함께 작업하기도, 각자의 방향으로 깊어지기도 하는 구조다. 천욱환 작가는 백자 대호를 비롯해 부피감 있는 사물을 중심으로 작업해왔다. 그의 관심은 형태가 공간 안에서 차지하는 밀도에 있다. 단단한 백색 덩어리가 놓였을 때 주변에 생기는 여백, 사물이 스스로 돋보이기 위해 필요한 거리감에 주목한다. 하나의 백색이 아니라, 미세하게 다른 수많은 백색의 결을 살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수연 작가는 유약을 구성하는 재료의 변화가 만들어내는 표면에 집중한다. 성분의 비율, 소성 과정에서의 반응에 따라 달라지는 결정과 마감. 그는 재료가 가진 가능성을 끝까지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작업을 확장해왔다. 예술적 효과를 위한 실험이라기보다는, 생활 기물에 적용 가능한 조건 안에서 구현할 수 있는 유약을 연구하는 데 더 가까운 태도다.



두 작가가 공통으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쓰임’이다. 식기는 구매한 이의 일상에 가장 가깝게 닿는 기물이라는 점에서, 완성도에 대한 책임 역시 크다고 말한다. 장식적인 오브제보다 실제로 사용되고 그 위에 음식이 담기는 순간을 상상하는 일. 반복된 숙련이 결국 보답받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고 믿는다. 이번 우수공예품으로 선정된 <푸른 조약돌 시리즈>는 두 작가가 함께 작업한 결과물이다. 김수연 작가가 대학원 시절부터 오랜 시간 연구해온 시리즈인데, 가장 깊은 애착이 가는 기물이라는 판단 아래 출품했다. 찬기, 앞접시, 메인 디시로 구성된 세 가지 사이즈는 소규모 가족이나 1인 가구의 식탁을 염두에 둔 구성이다. 푸른 유약의 단정한 색감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이 시리즈의 핵심은 조건의 정밀함에 있다. 두껍게 입혀진 유약을 견디기 위해서는 재료의 팽창률과 수축률이 정확히 맞아야 하고, 안쪽 곡률 역시 이를 고려해 설계해야 한다. 유약이 고이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의 대비가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형태를 조율한 것도 같은 이유다. 조선시대 청백자의 푸른빛을 동시대의 식기로 풀어내고자 한 고민이, 절제된 표면 안에 축적되어 있다.




브랜드 여백사물은 KCDF 2025 우수공예품 지정제도 지원을 계기로 본격적인 출발선에 섰다. ‘여백’은 두 작가를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김수연 작가에게 여백은 그릇 안에서 내용물이 더 잘 드러나기 위한 조건이고, 천욱환에게 여백은 사물이 공간 안에서 숨을 쉴 수 있도록 만드는 거리다. 여백을 만드는 사물과, 여백을 채우는 사물. 이 서로 다른 관점은 브랜드 이름 안에서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지원금은 작업 외적인 영역, 즉 패키지와 홈페이지 등 브랜딩 전반에 집중적으로 사용했다. 빠르게 소비되기보다, 오래 소개되고 지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지금의 작업이 앞으로 더욱 다양한 채널과 기회로 이어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준 점이 무엇보다 의미 있다고 말한다. 이들이 말하는 목표는 단순하다. 성장. 처음에는 수평적으로 작업의 폭을 넓히는 데 집중했다면, 2025년은 그 폭을 수직으로 끌어올리는 시간이었다. 전시와 출품을 통해 작업을 꾸준히 선보이며, 좋은 사물과 좋은 전달력을 동시에 갖춘 결과물을 고민해왔다. 2026년에는 어떤 라인업을 만들어갈지,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다시 역량을 다지는 해가 될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내다본다. 잘 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면서도, 정교하고 꾸준하게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마음만은 분명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