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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노력으로 물건에 영혼을 불어넣는 장인의 이야기.
이번 달은 열일곱 번째 이야기로 비단처럼 섬세한 왕실 공예, 마미체를 만드는 백경현 장인을 소개한다.

↑ 표주박 모양의 차 거름망.

경남 사천, <별주부전>이 유래되었다는 비토섬으로 들어가는 길은 그랜드 캐니언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만난 하늘 풍경만큼이나 아름다웠다. 평범할 것이라 여겼던 곳에서 만난 의외의 아름다움이 마치 우리네 부엌에 늘 자리하고 있던 둥근 마미체와 같았다.
백경현 장인은 “기록상 마미체는 말총으로 만드는 갓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세계적인 통신회사에서 상무이사로 재직했다. 회사에서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했지만 1998년 우연히 신문에서 본 마미체에 이끌려 입문하게 된 흔치 않은 경우다.

↑ 체크무늬를 입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마미체.

회계 전공자다운 꼼꼼하면서도 계산적인 성격이 촘촘한 마미체를 독학으로 익히는 데 밑거름이 되어주었고, 매듭 장인 김원형(서울무형문화재)에게 1년 동안 기술을 전수받았다. 이후 독학하면서 예전 장인들이 쓰던 기계들을 참고해 직접 제작해 쓰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최성철 장인(서울무형문화재 19호 체메우기)과 함께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무형문화재 교육 전시관에서 함께 시연을 하기도 했다. 최성철 장인이 전통 마미체 제작 기법을 그대로 전승했다면 백경현 장인은 원형에 충실하면서 마미체가 생활 속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능적, 미적 부분을 강화하는 데 주력했다.

↑ 말총으로 만든 마미체의 섬세한 조직감.

마미체는 조선 법전(경국대전) ‘공전’ 편에 기록된 대한민국 전통 공예의 하나로 마미(馬尾), 즉 말총을 이용해 만든 체를 말한다. 그는 검은색과 흰색, 갈색 3가지 색의 말총을 직접 짜서 문양을 만들어 염색이나 화학 처리 없이도 개성 있는 망을 완성했다. 그리고 소나무와 솔 뿌리, 대나무 못으로 만든 체에 옻칠을 해서 체의 수명은 늘리고 방충과 방수 효과를 높였다. 온도나 습도에 따라 수축하는 망은 물이나 세제로 세척할 수 있고 먼지가 쌓이면 마른 수건으로 나뭇결을 따라 닦는다. 섣달그믐, 인간의 세계로 내려온 야광 귀신이 자기 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가면 신발의 주인은 1년 내내 병마에 시달린다는 미신이 있다. 다행히 야광 귀신은 구멍을 세는 취미가 있어 마미체를 보면 그 구멍의 숫자가 궁금해 구멍을 세기 시작하는데 중간 중간 헷갈려서 밤새도록 구멍을 다 못 세고 날이 새면 그냥 돌아간다는 믿음에서 처마 밑에 걸어두었다고 한다. 마미체는 악귀를 쫓고 행운을 가져다주는 생활 도구인 셈이다.

↑ 마미체를 만드는 백경현 장인.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대한민국 전통 공예이자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승되고 있는 보편적인 공예 중 하나입니다”라며 백경현 장인은 덧붙였다. 세계 각국의 마미체와 비교해봐도 우리의 마미체가 단연 으뜸이라는 것. 최근에는 대한민국전승공예대전, 대한민국디자인박람회, 서울리빙디자인페어 등 각종 공예 전시에 참여하며 마미체를 널리 알리고 있는 그는 2013년부터는 고향 사천에 내려와 말총으로 만든 커피 필터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다. 직접 커피를 내려보니 그 맛이 일품이다. 사라져가는 전통 체의 맥을 이어나가야 할 의무와 책임을 느끼며 한파에도 마미체와 말총 커피 필터를 들고 서울로 상경하는 백경현 장인. “체는 손바닥으로 만지면 안 되고 손등으로 부드럽게 만져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섬세한 손길과 마음이 비단 한복처럼 고왔다.

↑ 장인이 직접 만든 ‘바디’라는 이름의 기계.

글과 사진 이정민(물나무스튜디오) | 에디터 박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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