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후 산책을 한다. 공원길을 따라 짧게는 30분, 길게는 한 시간 이상 걷는다. 그러다 종종 이상한 순간을 마주할 때가 있다. 매일 보던 풍경이 유난히 아름답게 보이고, 태어나서 행복하다는 낯간지러운 감정마저 드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때마다 공원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BGM이 있었다. 흐르는 물과 새, 사람들의 나긋나긋한 소리와 어우러지는 음악은 그 순간을 곱절은 아름답게 해주었다. 얼마 전 ‘사운드 디자인’이라는 재미있는 용어를 알게 되었다. 영상 편집에서 쓰이는 말인데, 전체 신에서 BGM과 효과음이 어떻게 나올지 디자인한다는 말이었다. 소리도 디자인의 범주에 머무를 수 있구나. 공원에서 느꼈던 이상한 경험을 떠올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더랬다. 뭣 모르던 꼬맹이 시절, 디자인은 단순히 예쁜 물건을 만들 때 쓰는 용어로만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무언가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기에, 디자인은 물건뿐 아니라 소리, 공간, 경험까지 아우를 수 있는 어마어마한 단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결국 모두 디자이너다. 각자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매일 고군분투하고 있으니까. 디자인의 방식에 정해진 것은 없다. 그냥 아름답게 만들겠다는 본질을 놓지 않고, 자신의 방향대로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면 되는 것이라고 본다. <메종>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디자인의 세계를 접했다. 푸드 영역에서만 머무르며 외골수 같았던 나에게, 뛰어난 감각의 선후배들은 보다 넓은 세계를 보여주었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차, 가방, 빵, 암살 방식 같은 것을 매칭하며 떠들던 순간, 최종 마감을 기다리며 탁자에서 빙고를 했던 순간, 좋아하는 영화 이야기를 하며 소리 지르던 순간, 속내를 터놓으며 울고 웃고 술잔을 기울이던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은 아름다운 인생을 디자인함에 있어 꼭 붙들어야 할 소중한 시간이었음을 밝히며, 그동안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