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하자면 나는 사람보다는 반려견이 우선인 사람이다. 그 말은 다섯 시간정도 떨어진 고향에 내려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고향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기보다 우리 집 반려견 깜지(편집부에서는 근육공주로 통한다)와 시간을 보낸다. 작년 연말에 꽤 길게 휴가가 주어졌던 터라 늘 그랬듯 깜지와 함께 시간을 보냈는데, 우연찮게 SNS로 접한 전시 소식에 마음이 동해 잠시지만 눈물의 이별을 하고서 전시가 열리는 경남도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는 <각인–한국근현대목판화 100년>. 우리나라 목판인쇄 문화와 목판화 전통의 흐름을 개괄하는 전시로, 목판 인쇄물과 목판화 근대의 인쇄술로 만든 <한성순보> 등의 신문에 이르기까지 다채롭게 변모한 모습을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김억, 김준권, 안정민, 서상환 작가 등 몇분이고 머무르게 하는 인상 깊은 작품이 많았지만 가장 오래, 몇 번이고 다시 걸음하게 만든 작품은 바로 강경구 작가의 ‘다섯 개의 문’이었다. 실제 문짝으로 사용되던 나무 판자를 도화지 삼아 정교하게 파내 하나의 문당 하나의 초상을 새기는 식의 작품이다. 공재 윤두서의 초상이나 표암 강세황의 초상 등은 물론, 추상적으로 풀어낸 초상과 형상까지 한눈에 담을 수 있었다. 크기 또한 내 키를 웃돌만큼 정교한 칼질로 파인 나뭇결과 각기 존재감을 발산하는 다섯 개의 작품은 실제 마주하는 순간 그 위용이 어마무시하게 느껴졌다. 오랜 시간 칼을 들고서 우직하게 파내려간 강경구 선생의 시간과 땀의 결실이 새겨진 문을 여는 순간 마주할 수 있으리란 착각이 일었던 것일까. 가까이서 그리고 멀찍이 서서 하염없이 선생의 손이 탄 작품을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미술관을 나서며 아름답게 지는 노을을 보면서도 예술로 승화된 다섯 개의 문을 미처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을 만큼 오래도록.
다섯 개의 문
고백하자면 나는 사람보다는 반려견이 우선인 사람이다. 그 말은 다섯 시간정도 떨어진 고향에 내려갈 수 있을 만큼의 시간이 주어지기만 하면 고향에 있는 지인들을 만나기보다 우리 집 반려견 깜지(편집부에서는 근육공주로 통한다)와 시간을 보낸다.
2022.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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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 이 호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