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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신 작가의 그림은 주말 오전의 순간을 포착한 듯 여유롭고 넉넉하다. 작품 속 배경을 닮은 동화적인 작업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작업실 곳곳에 진열된 오브제는 작가의 의식 속에 입력되어 작품으로 탄생한다.

 

선명한 노란색 에너지가 완연하게 느껴지는 작품의 첫인상이 봄의 기운을 응축한 듯합니다. 어떤 작품인지 소개해주세요.

제 작품을 ‘목탄으로 선을 긋는 작업’이라고 표현해요. 눈에 보이는 것과 떠오르는 것을 함께 그려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꽃과 식물, 사람과 동물, 풍광과 별빛 등 멈춰 있거나 운동하는 모든 것이에요. 반면 떠오르는 것은 저의 감정과 감각, 호흡과 떨림, 개념으로 떠도는 모든 것입니다. 개인적인 경험과 삶의 흐름 위에 부유하는 ‘모든 것’을 캔버스에 담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노란색 꽃과 레몬, 검은색의 부드러운 선이 자유롭고 평화로워요. 작품의 소재도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한 대상인가요?

맞아요. 어렵게 그림을 그렸던 유년 시절, 어느 날 바나나 껍질을 우연히 봤어요. 그 처참한 모습이 저를 닮았다고 생각했죠. 제게 노랑과 검정은 검게 변한 바나나 껍질에서 시작했어요. 그 뒤로 오랫동안 바나나 껍질을 그렸습니다. 상처를 치유하고 불안을 해소하는 방법은 결국 작업에 있었어요. 그리는 행위를 통해 자유와 평화를 찾았고, 알맹이 없이 나뒹구는 바나나 껍질은 감각을 깨우는 레몬으로, 검게 멍든 상처는 거름이 되어 목탄이 지나는 길, 즉 인생의 궤도를 그리는 흔적이 되어주었습니다. 제 작품에서 느껴지는 자유로움과 평화는 그래서 더 소중해요.

 

다가오는 개인전에서 선보일 새로운 시리즈의 작품.

 

프린트 베이커리 전속 작가 청신.

 

많은 작품이 작가의 개인적인 기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이는데,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선을 긋는 것은 쓰는 것과 닮았어요. 처음 선을 그을 때는 그림을 그리듯 구불구불-쭉쭉 그어 나가요. 그러다 어느 순간 글을 쓰듯 써내리는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신기하고 조마조마한 시간이에요. 제가 궁금한 것들, 보고 싶은 형상들, 아는 것과 느끼는 것을 그려내고 쓰는 거죠. 저의 작업은 이러한 경험을 이미지로 드러내는 과정이니 기록과도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은 늘 긴장되고 흥미로워요.

 

작품명 ‘블랙 네온 Black Neon’에서도 알 수 있듯 목탄이란 재료가 작업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목탄을 사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목탄은 어두워요. 까맣죠. 그런데 이걸 손에 쥐고 쓱 그으면 반짝반짝 빛이 나요. 그리고 손으로 문지르면 화면에서 흩어지면서 먹처럼 다양한 색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인체를 그리면 살갗이 되고, 바다를 그리면 물결이 되고, 꽃을 그리면 생명이 되는 거예요. 목탄은 본래 살아 있는 나무가 불구덩이에 들어가 새롭게 태어난 재료예요. 그래서 살아 있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실 곳곳에 화병에 담긴 꽃과 레몬이 뒹굴고 있어요. 작업실이라는 공간이 작가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작업실은 작업하는 곳 이상의 의미가 있어요. 사는 곳이에요.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요. 그래서 정물과 사물을 곳곳에 놓아둡니다. 저를 자연스럽게 정물에 노출시키는 거죠. 그리고 지금은 다가오는 개인전 준비로 작업실에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오는 2월 25일부터 3월 12일까지 프린트 베이커리에서 개최하는 전시가 가나 부산에서 열립니다. 더욱 확장된 작업 세계를 여러 개의 시리즈로 나눠 선보일 예정이에요. 관람객을 맞이할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레네요(웃음).

 

다양한 이야기를 표현할 수 있는 목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