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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의 아티스트 니콜라스 파티가 호암미술관을 거대한 색의 캔버스로 물들였다.

파스텔 고유의 일시성과 연약함을 통해 인간, 자연, 그리고 문명의 흥망을 담아낸 그의 작품 세계는 이번 전시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소프트 파스텔을 활용하여 직접 벽에 그려넣은 <나무 기둥> 벽화. 벽에 걸린 작품은 <버섯이 있는 초상>. © Nicolas Party

여인의 몸을 사슴이 휘감고 있는 듯한 작품 <사슴이 있는 초상>. © Nicolas Party

벽화 앞에선 니콜라스 파티. © Woojeong Lee

니콜라스 파티 Nicolas Party는 현대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한 시람이다. 호암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는 그의 가장 큰 규모의 전시로, 기존 회화와 조각은 물론 새롭게 선보이는 작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특히 미술관 벽에 직접 그려낸 다섯 점의 파스텔 벽화는 전시가 끝나면 ‘공기 속 먼지처럼’ 사라질 예정. 파스텔 특유의 일시성과 연약함을 바탕으로, 파티는 작품을 통해 자연과 문명의 흥망, 그리고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파티가 조선시대의 고미술 작품인 <십장생도>와 <군선도>를 샘플링해 재창조한 여덟 점의 초상화가 눈길을 끈다. 이 초상화들은 사슴, 학, 개, 당나귀 등의 동물과 인간이 기묘하게 결합된 모습으로, 고대 상징과 현대적 상상력이 뒤섞인 독특한 매력을 선사한다. 그뿐만 아니라 전시장 입구에 그려진 커다란 <폭포> 벽화는 구불구불한 붉은 돌산 사이를 시원하게 가로지르는 물줄기가 장대하고 기이한 풍경을 펼쳐내며 우리를 한순간에 신비로운 세계로 이끈다. 전시장 내부에도 깊고 푸른 <동굴>, 핏빛 <나무 기둥>, 잿빛 <구름> 벽화 등 마치 인공적으로 꾸며진 듯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관람객의 시선을 붙잡는다. 또한 파티는 동서고금의 문화적 상징과 재현을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엮어내며 우리의 상상을 자극한다. <주름>과 <곤충> 연작은 16세기 이탈리아 화가 브론치노의 해부학적 인체 표현과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얀 반 케셀 같은 옛 거장들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뒤틀리고 주름진 형태와 신체 표현은 초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이 작품들은 정선의 <노백도>와 함께 전시되며, 삶과 죽음의 경계가 뒤섞인 듯한 기이함을 느낄 수 있다. 이번 전시의 관람 포인트는 미술관 자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시장 내부는 미로처럼 구성했으며, 중세 건축의 아치형 문과 다양한 색의 방들이 이어져 있어 각 방에 들어설 때마다 마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고미술 작품과 파티의 작품이 나란히 전시된 부분에서는 동서양 미술의 대화도 감상할 수 있다. 그 무엇보다 전시 기간에만 존재하는 파스텔 벽화는 놓치지 말아야 할 관람 포인트다. 이번 호암미술관 전시 <니콜라스 파티: 더스트>는 작품 감상을 넘어, 하나의 시공간 속에서 펼쳐지는 거대한 예술적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호암미술관에 직접 그린 벽화 <구름>과 작품 <부엉이가 있는 초상>. © Nicolas Party

푸른 색감이 인상적인 <여름 풍경>. © Nicolas Pa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