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세나 멋을 좇는 대신 대상의 본질에 집중하기.
이정규 대표가 빈티지 오디오와 릴데크로 채워진 자신만의 공간을 꾸민 방법이다.

프리앰프 겸 믹서로 활용하는 스튜더 169와 962. 듣는 음악의 장르에 따라 두 가지 기기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이정규 대표가 조명부터 카펫, 음향 장비 등 모두 발품을 팔아 직접 구매한 빈티지 제품들.
“그 디자인이 좋아요. 60~80년대 옛날 것들의 그 투박한 디테일에 동물적으로 끌려요.” 포토그래퍼이자 식당 두 곳을 운영하는 이정규 대표에게 빈티지가 끌리는 이유를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자동차, 오토바이, 가구, 시계, 오디오, 릴데크까지. 그가 고심해서 고른 컬렉션 중 빈티지가 아닌 제품은 찾기 어렵다. 아니, 컬렉션이라기보다는 일상품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매일 일상에서 사용하는 것이죠. 이 기기들로 음악 틀고, 일 보러 갈 때 이 자동차나 오토바이들을 타고. 제가 모은 것들이 삶이랑 동떨어져 있지는 않아요. 그냥 생활 자체에 묻어 있는 거지.” 그러니까, 그의 성수동 자택의 거실을 빼곡히 장식한 오디오와 릴데크도 ‘컬렉션’이라는 장엄한 단어보다는 그저 취향을 반영한 일상품이란 수식어가 더 잘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정규 대표가 대중에겐 조금은 생소한 릴데크에 관심을 갖게된 것은 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초등학생 때부터 음악 듣는 걸 워낙 좋아해서. 음악을 듣다 보면 가장 본래의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되거든요. 이 소스의 근원이 뭘까 생각해보니 릴이더라고요. 그래서 스튜디오 레코딩 당시의 컨디션을 재현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레코딩 스튜디오를 생각하며 장비들을 세팅했다는 그는 ‘객관적인 소리’를 듣고 싶다는 이유로 방송국용 기기들로 집 안을 채웠다. 70년대 BBC에서 모니터링용으로 사용하던 로저스 Rogers 3/5A 스피커와 80년대에 제작된 린Linn의 아이소바릭 Isobarik PMS 스피커는 그중 일부. 스튜더 Studer의 보급형 릴데크 A807과 고급 모델 A812까지 두루 갖춘 그는 믹싱 콘솔 또한 두 가지를 구비해 노래의 장르와 취향에 따라 번갈아가며 사용한다. 국내 빈티지 음향 장비의 풀이 작은 만큼 때로는 베트남까지 발품을 팔아야 했지만,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적인 소리를 위해서라면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20여 대에 달한다는 빈티지 오토바이와 7대가량의 빈티지 자동차도 마찬가지. 뉴욕, 일본 등 세계 각지에 수소문한 뒤 한국으로 들여오는 수고를 감수함은 물론, 기존 소유자를 1년 넘게 설득해가며 원하던 물품을 구한 경우도 있다.

릴 데크 사용법을 보여주고 있는 이정규 대표.

거실의 소파 또한 덴마크의 70년대 빈티지 소파다.
“오디오도, 차도, 오토바이도 모두 정점에 있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품마다 제일 고가의 브랜드와 모델이 있을 거 아니에요? 저는 결국 제일 좋은 것, 제일 상위 클래스의 것으로 귀결하는 것 같아요.” 물건 고르는 기준을 묻자 이정규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오랜 기간 공들여 고가의 제품을 구매할수록 소비가 실패했을 때 오는 허탈함이 더 크지 않을지 문득 궁금해졌지만, 더 잘 맞는 기기를 만나기 위한 과정일 뿐이라 답한 그다. “그것도 경험이죠. 미국 차가 좋아서 말도 안 되게 망가진 차를 들여와 혼자 수리하기도 했어요. 이론적으로 공부하고, 누군가에게 들어서 ‘뭐가 좋다 나쁘다’를 머릿속으로 되새기는 건 아무 의미 없고 몸으로 직접 겪어봐야 돼요. 음식도 먹어봐야 맛이 있는지 없는지 알게 되듯이, 직접 다 겪어봐야 이 기기가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 수 있는 거예요.” 사진을 전공한 그가 음식점을 운영하는 것도 많은 경험을 거친 뒤, 자신만의 취향을 정립해서 가능한 일이었다. “다양한 곳에서 음식을 맛보며 ‘왜 맛을 이렇게밖에 못 뽑을까?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는 생각으로 시 작해서 만든 거거든요.” 필리 치즈 스테이크와 부대찌개라는 장르가 전혀 다른 두 음식이지만, 녹사평과 성수동에 위치한 두 식당은 매일 ‘진짜 맛’을 찾는 손님으로 문정성시를 이룬다. 진짜에 대해 말하는 이정규 대표의 기준은 확고하다. 유명세나 멋을 좇는 대신 본질에 집중하는 것, 두루뭉술하게 결론 내리는 대신 정확한 취향을 정립하는 것. “진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몇 안 되는 것 같아요. 기계에 빠지는 거죠. 좋아하는 음악을 더 잘 듣기 위해 기계를 사용하는 게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정작 좋아하는 뮤지션이나 장르가 없는 경우도 허다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를 설명할 때는 오디오 기기보다는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말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정규 대표가 추천하는 음반.

집 안 곳곳에 놓인 소품을 통해 그의 취향과 취미를 엿볼 수 있다.

이정규 대표가 운영하는 ‘성수 부대찌개’ 매장의 뒤편에는 빈티지 바이크들을 보관한 개러지가 마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