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 위크 기간에 통역가로서 현장을 누비며 작가, 큐레이터, 컬렉터들을 만났다.
서로 다른 언어와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마다 한국 미술 시장의 뜨거운 에너지가 실감됐다.
올해 프리즈와 키아프가 남긴 울림, 그리고 그 곁에서 펼쳐진 이야기들을 전한다.

아트 위크 중반부의 ‘삼청나잇’ 열기 속 갤러리 현대 앞마당에서 펼쳐진 만신 김혜경의 〈대동굿: 비수거리(작두굿)〉을 기다리며, 동료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백남준 혼령이 나타나서 흥청망청 파티 중인 우리를 꾸짖기라도 하면 어떡하죠?” 키아프도 프리즈도 없었던 1990년, 그가 같은 장소에서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굿판을 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의 영혼이 소환되진 않았다. 그 대신 영험한 기운이 담긴 쌀알과 떡이 든 쇼핑백을 받으려고 한 시간 정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올해 아트 위크는 지난해에 비해 차분했다는 평이 많다. 여전히 떠들썩했지만, 모두가 모른 채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모습이 정돈되었기 때문일터. 그럼에도 평일 밤 삼청동이나 한남동 갤러리, 파티장의 엄청난 인파가 거리까지 넘쳐나는 모습은 여전했다. 숨가쁜 오프닝과 파티 순례 후 마침내 집으로 돌아가는 조용한 평일 밤 거리에서, 흥겨운 아트 위크는 딴 세상 일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정말 그랬다. 아트 페어 참여 갤러리뿐 아니라 다양한 미술계 주체들이 지난해보다 명확한 노선을 정한 듯해 보였다. 예컨대 지난해 프리즈에는 참여했지만 올해는 불참한 18개 갤러리. 그중엔 아트 페어 참여 대신 독자적으로 프라이빗 뷰잉을 조직한 갤러리도 있었다. 화이트큐브와 타데우스 로팍처럼 오프닝 파티에 덧붙여 대대적인 애프터 파티를 마련한 곳도 있었고, 국제갤러리나 갤러리 현대처럼 모든 사람에게 문을 여는 기조를 이어간 경우도 있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음악 공연과 마켓을 열었고, 서울시립미술관 미디어시티서울 비엔날레는 ‘프리즈 필름’과 협업한 상영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시장 불황으로 활기가 줄어들지 않을까 걱정하던 목소리는 반만 맞았다. 키아프 VIP 프리뷰에는 지난해 대비 30% 늘어난 9600명이 몰렸다. 지난해엔 가수 RM과 로제만 볼 수 있었던 BTS와 블랙핑크는 더 많은 멤버들이 등장했고, 김혜경 영부인이 키아프와 프리즈 공동 개막식에서 연설을 했다. 그 덕분이었을까? 갤러리들이 발표한 세일즈 리포트에 따르면 전체적인 실적이 나쁘지 않았다. 해외 주요 매체들도 이 부분에 꽤 놀란 듯한 모습이다. 하지만 아트 페어와 파티만이 아트 위크의 전부는 아니다. 최고가 판매 작품의 주인공과 그 가격에 이목이 집중되던 그 순간, 마크 브래드포드의 아티스트 토크에선 완전히 다른 방향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개념만으로 예술이 된다면, 그 작업은 누가 만드나?”라는 그의 말은 예술이 여전히 ‘손의 노동’과 ‘과정의 물리성’을 기반으로 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아트 위크 마지막 토요일엔 기록적 폭우 속에서 열린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의 아티스트 토크에서 ‘통제할 수 없는 것’과 ‘예측 불가능’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


9월 첫 주는 이제 ‘미술계 명절’로 자리 잡았다. 누구에게는 시장의 성적표이고, 또 다른 이에게는 인맥과 네트워킹의 장이며, 작가와 기획자에게는 끝없는 체력전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몇몇 장면은 유독 선명하게 남는다. 올해의 차분한 리듬과 동시에 터져나온 예술적 순간이 그랬다. 프리즈와 키아프가 남긴 울림은 결국 이런 것이다. 예술은 시장과 사회의 관심 속에서 점점 더 크게 호흡하고, 불가해한 예측 불가능성 속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올해의 아트 위크는 역동적인 그 현장을 압축한 밀도 높은 한 점의 설치 작품과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