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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없는 사막을 마주하고 김우영은 비로소 다시 카메라를 들었다. 그 안에는 고독한 사막과
쓸모를 다한 채 서 있는 빌보드, 그리고 버려진 콘크리트 더미가 있다.

사막에 버려진 콘크리트 더미에 오색 색동을 입혀 생기를 더한 래핑 시리즈.

작업실 안 김우영 작가.

사진가 김우영이 서울 예화랑에서 개인전 〈THE VASTNESS 漠막〉을 연다. 8월 23일부터 9월 27일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작가가 10여 년간 촬영한 모하비 사막의 연작을 중심으로, 처음 공개하는 래핑 시리즈와 빌보드 시리즈를 선보인다. 모하비 사막은 김우영에게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에게 사막은 ‘내밀한 은신처이자 인내와 위로의 공간’이며, 머무름과 기다림의 미학 속에서 인간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장소다. 래핑 시리즈에서는 버려진 구조물을 야광 테이프로 감싸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고, 빌보드 시리즈에서는 기능을 잃은 광고판을 통해 빛과 흔적의 의미를 탐색한다.

사막 사진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공간의 한가운데로 들어간 것 같다.
표준 렌즈로 작업했기 때문에 관람객과 같은 눈높이에서 사막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사진 속의 사막은 가깝게 느껴 지지만 이만큼의 원근감을 담기 위해선 차를 세워두고 한 시간 넘게 걸어 들어가야 한다. 그렇게 한 곳을 촬영하고 나면 다시 5~7시간을 이동하곤 한다.

이 사막에 도달하기까지 어떤 시간을 지났는지 궁금하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광고 사진을 촬영하며 상업 사진가로서 바쁘게 지냈다. 그러던 중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한창 활발해지는 시기가 왔고, 비슷한 시기에 사진도 포토샵 같은 기술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그즈음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인 아트로서 사진을 처음 배우고 시작한 곳인 뉴욕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뉴욕으로 가려고 하자 이상하게 자신감이 부족했다. 아마 오랜 시간 상업사진을 한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 5년 정도 한국에서 방황하며 비상업적인 촬영을 하고, 엄홍길 산악인을 따라 후배 시신 수습을 위해 히말라야로 떠난 휴먼원정대의 기록을 사진으로 남기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7년에 이르러서야 떠나기로 결심을 굳혔다. 그렇게 캘리포니아로 떠나 또다시 3년을 울며 방황했다. 정처 없이 여행하며 카메라도 들지 않았다. 그러다 다다른 곳이 모하비 사막이다. 사막을 마주하자 내 과거와 인생에 있어서 비겁함, 미래에 대한 부족함 등 여러 감정이 교차했고, 그런 감정을 안고 울었다. 그제서야 홀가분해지고 사막을 대상으로 사진 작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사진을 시작할 때는 아방가르드하고 큰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사막에 도달했을 때의 나는 표준렌즈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막 근처에 작업실을 만들고 본격적인 작업을 시작했다.

DV4559506, 2024, 64 × 47cm, Archival Pigment Print, Ed. 1/25.

예화랑에 설치된 김우영 작가의 사막 연작.

BV4567886, 2016, 111 × 148cm, Archival Pigment Print, Ed. 2/7.

사막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정이 여전히 떠오르는가.
물론이다. 3년간 미국에서 방황하는 내내 우는 시간이었다. 항상 길 위에 있었고, 그 위에서 생각하고 사람이 없는 곳을 찾아다니다 마주한 곳이 데스밸리 사막이다. 그 사막을 봤을 때 어떤 기운에 압도되었다. 지금도 아무도 없는 사막에 가면 그 고독감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서히 적응되고 난 후 촬영을 시작한다.

수년에 걸쳐 지속된 작업이다. 어떤 식으로 진행되었는지 궁금하다.
다시 사진 작업을 시작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사막에서 두 시간 정도 떨어진 곳에 작업실을 만들었다. 광활한 곳이기 때문에 이웃 집이 있더라도 몇 에이커씩 뚝뚝 떨어져 있을 만큼 고립된 곳이었다. 눈만 뜨면 사막으로 갔다가 해가 지고 나면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생활을 오래 반복하다보니 내 안에 좋은 기운이 생기고 좋은 마음과 생각이 정리되면서 표현하고자 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모든 사진은 피사체를 담는 일이긴 하지만 그 안에 나 자신이 스스럼없이 담겨 있다. 어떤 사진에는 우는 나 자신까지도 들어가 있다.

사막 연작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채로운 색이 담겨 있다.
사진 한 장은 찰나이지만 그 찰나를 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막에 머물며 수백 번, 수천 번 보면 원하는 색이 나오는 시간을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과거에 광고 촬영을 많이 했기 때문에 색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고, 사막을 오래 보다보면 대략 원하는 색감이 도는 시간대를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원하는 빛깔이 나오는 시간대는 보통 해 뜨기 전이다. 자연은 늘 다이내믹하게 변하고, 어떤 해에는 기후 변화로 폭우가 쏟아진 날도 있다. 이번 전시를 위해서는 예화랑이라는 공간에 맞도록 구성했다.

갤러리에서 보는 사진은 한순간이지만, 이 순간이 사진으로 남겨지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했겠다.
매년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차로 대륙 횡단을 한다. 사막에서 캠핑하는 날도 많다. 한 번에 끝나는 경우는 없다. 빌보드 시리즈도 많이 훼손된 상태에서 계속 찍는다. 그 가운데 변화되는 것들이 있다. 작업의 연속성 안에 일어나는 변화이다. 나는 늘 길 위에 서 있다. 나는 아스팔트 도로 위 ‘점’ 같은 존재다. 큰 우주의 세계에서 보면 아스팔트 도로는 선이고 나는 점인 셈이다. 끝을 모르고 이어지는 선 안에서 나라는 점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렇게 흐름 안에 놓이며 나 자신이 ‘선’이 된다.

사진에는 길은 보이지 않고 대상만 드러나 있지만 그 사진을 완성하는 건 길 위에 서 있는 사진가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눈물을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서 사진에 대한 깨우침을 얻은 것 같다. 카메라 앞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내가 스며들고, 내가 느끼는 것들이 이입이 되어야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다. 사진에는 정작 길이 보이지 않지만 그 안에 길이 숨어 있다.

빌보드(Billboard) 시리즈의 빌보드도 시간에 따라 다른 모습이 담겨 있다. 낡은 글씨, 사라진 글씨, 그 위에 덧그려진 글씨처럼 계속 변한다. 반면에 래핑(Wrapping) 시리즈는 촬영 후에는 전혀 볼 수 없는 찰나가 되어버린다.
사막 작업을 시작하고 산업화 이후 버려진 공장을 주제로 작업했다. 버려진 콘크리트 건축물에 남겨진 컬러를 표현한 어반 오디세이(Urban Odyssey) 시리즈도 있다. 래핑 시리즈는 사막에 남겨진 콘크리트 더미에 색을 입혀 생명력을 불어넣고 싶었고, 이를 위해 색동을 더했다. 래핑 시리즈의 실물을 본 사람은 나 혼자다. 콘크리트 더미에 몇 시간 동안 래핑 작업, 촬영은 물론 원상 복구까지 모두 혼자 한다. 고생스럽지 않고 즐길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 싶다. 이제 이런 작업을 영상으로 좀 더 남겨 보고 싶다.

세운상가 안 은행이 있던 곳에 자리 잡은 김우영 작가의 작업실.

때론 음악이 작업의 영감이 되어줄 때도 있다.

자신을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은 작업이라 말하는 김우영 작가.

라이트 박스 위 슬라이드를 들여다보고 있다.

래핑 시리즈와 빌보드 시리즈는 사막에 남겨진, 혹은 버려진 것을 주인공으로 한다. 쓰임새를 다한 사물에 주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며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도시가 어떻게 황폐화되어가는지 공부했다. 물론 산업화는 사회에 필요한 것이지만 그로 인해 남겨진 것들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경제 논리로만 도시와 발전을 이해하지 않고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아티스트 역시 그런 목소리를 능동적으로 내야 한다.

산업화 이후의 도시에서 무엇을 읽어내고 있는가?
‘발전’이라는 단어가 가진 아이러니를 담고 싶다.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많은 것이 무비판적으로 용인된다. 하지만 그 결과는 종종 기후나 지구 차원의 담론에서 보면 추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시골에 가도 노래방과 모텔이 난립하고, 도시가 상상 못 할 정도로 잘못된 방향으로 확장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물론 발전을 멈출 수는 없지만, 그 속도를 늦추거나 방향을 고민하는 일은 필요하다. 문제는 한국 사회가 콘크리트 안에 갇혀 살다 보니 이런 거대한 담론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거다. 작업 속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스스로 계속 탐구하고 있다.

화려함 뒤의 시간 안에서 개인적으로 공감하는 것이 있는가?
사막에 한참 머문 후 물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물 시리즈가 시작되었다. 이동하다 보니 버려진 타운이 눈에 들어왔다. 애리조나나 유타 지역 같은 경우엔 굉장히 건조한 지역이어서 고스트 타운이어도 색이 잘 남겨져 있다. 타운은 버려졌지만 화려한 컬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굉장히 이중적이면서 신기한 장면이었다. 한창 한국에서 광고 사진 작업을 하며 화려한 시간을 보냈지만 모든 것을 비워내고 작업하는 내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과거에 상업 사진 촬영한 걸 드러내고 싶지 않아, 미국에서 작업하며 한국에 들어올 때 예전에 알고 지내던 업계 사람들과는 만남을 이어가지도 않았다. 그런데 사실 오래 전 광고 촬영을 하며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감각을 익히고 배운 시간이었다. 이제는 과거의 나를 대하는 나 자신이 많이 달라졌고, 더 많은 사람과 교감하고 때론 젊은 아티스트와 교류하며 기회가 된다면 관련한 협업도 해보려고 한다.

김우영의 1년은 어떻게 흐르나?
늘 작업으로 채워진다. 1년에 두 번은 뉴욕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차로 여행하며 사막을 찾는다. 이제는 다른 일정이 많아져서 1년에 한 번으로 줄일 참이다. 한국에 있을 때는 비가 오면 다리 밑으로 간다. 한강 다리는 산업화 시기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서 요즘은 그에 주목해 작업하고 있다. 겨울에는 한옥을 촬영하러 전국을 다닌다. 눈이 온 후의 한옥은 주변 풍광의 화려함이 지워지고 오롯이 한옥만의 아름다움이 남겨 있기 때문이다. 마치 화선지에 붓칠한 것처럼 기와의 선 같은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다. 티벳과 일본에도 가게 될 것 같다. ‘어반 오딧세이(Urban Oddyssey)’의 맥락에서 중국이 산업화를 통해 티베트를 어떻게 황폐화시켰는지 담아보고 싶다. 점점 어반 오딧세이의 영역을 확장해갈 것이다.

이번 전시를 통해 관람객들과 나누고 싶은 감정이 있다면?
어떤 특정한 감정을 강요하고 싶지 않다. 다만, 작품을 보고 소수라도 살아온 시간을 반추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사진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을 담은 것이 아니라 인생이 투영된 결과물이다. 어떤 사진 중에는 눈물 흘리면서 찍은 것도 있다. 누군가는 그걸 보면서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그것이 ‘교감(Connection)’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교감을 더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앞으로도 남은 시간을 능동적으로 활용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가?
작가로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민하고 작업하는 삶을 살고 있다. 작업은 삶의 형태 그 자체이자 살아 숨 쉬는 이유다. 또 한편으로는 젊은 작가들의 무대가 되어주고, 그들과 교류하며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려 한다. 기회가 주어지면 쓴소리도 하고 싸우기도 하면서, 오지랖 넓은 작가로 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