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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집단의 기억, 기술과 권력의 층위를 따라 무너진 이상은 또 다른 세계의 토대가 된다.
폐허와 유토피아, 실패와 가능성이 교차하는 풍경을 끊임없이
재배열해온 이불의 30여 년간의 여정이 리움미술관에서 펼쳐진다.

‘롱 테일 헤일로: CTCS #1’, 2024, 스테인리스 스틸, 에틸렌-비닐 아세테이트, 탄소 섬유, 페인트, 폴리우레탄, 275 ×127 ×162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더 제네시스 파사드 커미션 2024 커미션 작품. © Lee Bul,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예술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방식은 점점 더 다층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오늘날의 복합적인 현실과 감각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서는 경계 없는 상상력과 유연한 표현 방식이 필요하다. 이불은 그 지점에서 조각과 설치, 드로잉, 평면을 넘나드는 다매체적 접근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둘러싼 갈등과 권력 구조의 문제를 능동적으로 구성해낸다. 지난 30여 년 동안 신체와 사회, 인간과 기술, 문명과 자연의 경계를 끊임없이 넘나들며 동시대 미술의 궤적을 그려온 그의 전시가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불: 1998년 이후>는 그 긴 궤적을 한눈에 조망하는 대규모 서베이 전시로서 조각과 설치, 드로잉, 평면 등 150여 점의 작업을 거대한 풍경처럼 펼쳐낸다.

‘오바드 V’, 2019, 비무장지대(DMZ) 철거 초소에서 수집한 주조강, 옵티움 뮤지엄 아크릴, 전자 디스플레이 보드, LED 조명, CPU, DC-SMPS, 디머, 전기배선. 400 × 300cm. 작가 및 BB & M 제공. © 전병철
<이불: 1998년 이후> 전시 전경. © 전병철

전시 입구에는 거대한 은빛 비행선 <취약할 의향: 메탈라이즈드 벌룬>이 자리한다. 20세기 초 체펠린 비행선을 참조한 작품은 기술에 대한 낙관과 공포, 진보의 상징과 그 좌절 사이에 서 있다. 블랙박스 공간으로 들어서면 거울과 조명으로 이루어진 <태양의 도시 II>가 무한히 반사되는 붕괴한 세계의 파편 속에서 관람객을 혼란스럽고 몰입적인 감각 속으로 이끈다. 전시 중심을 이루는 <몽그랑레시> 연작은 물질을 통해 끊임없이 사유해온 작가의 작업관을 담았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가 말한 ‘거대 서사에 대한 불신’을 출발점으로 해, 그는 근대 표현주의 건축과 유토피아 문학, 낭만주의 풍경화, 한국 근현대사 등 다양한 참조를 교차시킨다. 이를 통해 단선적 시간성과 중심적 내러티브를 해체하고 기억과 이념, 환상과 역사, 개인과 국가의 교차점을 물질화한다. 이불의 작업에 있어 금속, 거울, 플라스틱, 유리, LED 조명 같은 재료는 이질적인 세계가 서로 충돌하고 뒤엉키는 플랫폼이 된다. 그 구조물은 도시의 폐허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패한 이상향의 유령처럼 비쳐지기도 한다. 2010년대 이후 전개된 <퍼듀>와 <무제(취약할 의향-벨벳)> 등 평면작업은 회화로 확장된 조각적 사유다. 자개, 벨벳, 아크릴 물감 등 이질적 재료의 결합은 ‘표면’이라는 조건을 통해 기억과 시간, 상처와 회복의 감각을 호출한다. 이러한 평면은 작가가 1990년대 말부터 작업한 <사이보그>나 <아나그램> 연작과도 연결되어, 작가가 일관되게 탐구해온 미래의 형상에 대한 사변적 구조로 기능한다. 그 안에는 파편화된 자아와 확장된 신체, 그리고 결코 실현되지 않을지도 모를 공동체적 이상이 희미하게 스며 있다.

<이불: 1998년 이후> 전시장에서 이불 작가. © 윤형문

전시는 곧 하나의 세계다. 기술, 권력, 기억, 상처, 욕망의 지층이 중첩된 이불의 세계는 조각 그 자체로서보다, 세계를 읽어내는 감각의 장치로 작동한다. 리움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통해 이불이라는 작가가 구축한 감각의 구조를 단순한 회고가 아닌 동시대적 제안으로 풀어낸다. 무너진 것들의 유산 속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의 미로를 걷는다. 전시는 2026년 1월 4일까지 리움미술관에서 열린다.